[고두현의 문화살롱] 다산의 '3·3·3 공부법'과 목민심서

입력 2018-03-01 18:21  

고두현 논설위원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돼 처음 머무른 곳은 주막집 뒷방이었다. 서학을 신봉한 ‘대역죄인’을 모두가 꺼렸다. 다산은 그 누추한 방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생각(思)과 용모(貌), 말(言), 행동(動) 네 가지를 반듯하게 하는 집이라는 의미다. 그곳에서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쳤다.

어느 날 공놀이하던 동네 아이들 가운데 한 더벅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열다섯 살 황상(아명은 산석), 고을 아전의 아들이었다. 소년은 곧 주막집 ‘골방 교실’의 첫 제자가 됐다.

1주일 뒤 다산이 문학과 역사를 배우라고 하자 소년은 쭈뼛거리며 “저는 둔하고, 막혔고, 미련해서 안 됩니다”고 했다. 이에 다산이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외우는 데 빠르면 소홀하고, 글짓기에 날래면 부실하고,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칠다. 둔한데도 파고들면 구멍이 넓어지고, 막힌 것을 틔우면 소통이 커지고, 어리숙한 것을 연마하면 빛이 난다.”

삼근계·삼독법…세 번의 뼈 구멍

그리고 세 가지 방법을 알려줬다. “파고드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하면(勤) 된다. 틔우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하면(勤) 된다. 연마는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하면(勤) 된다.” 이것이 다산의 ‘삼근계(三勤戒)’다. 황상은 이 가르침을 기둥 삼아 평생 학문에 매진했다.

다산은 책을 읽을 때도 뜻을 새겨 가며 깊이 읽는 정독(精讀)을 중시했다. 꼼꼼하게 읽지 않으면 글의 의미와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옮겨 쓰는 초서(抄書)도 귀하게 생각했다. 이를 항아리에 담아뒀다 하나씩 꺼내 읽곤 했다.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낀 점, 깨달은 것들을 기록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정독하고, 초서하고, 메모하는’ 세 가지가 다산의 ‘삼독법’이었다. 500여 권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거처를 옮겨 다니던 다산은 지금의 다산초당에 자리 잡은 뒤에도 자신의 공부법을 그대로 실천했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느라 복사뼈(骨)에 구멍이 세 번이나 났다. ‘과골삼천(骨三穿)’의 명예로운 흉터였다. 앉을 수가 없자 선 채로 책을 읽었다. 공자가 책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독서에 매진했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의 고사보다 더했다.

제목을 '心書'라고 붙인 까닭은

그의 ‘삼근계’와 ‘삼독법’ ‘과골삼천’을 한 데 아울러 ‘다산의 3·3·3 공부법’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 그 경지에 도달하기는 어렵겠지만, 책 읽고 글 쓰는 공부의 등불로 삼기에는 제격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천천히 뜻을 새기고, 내용을 뽑아 옮기며, 생각을 메모하는 습관도 익힐 수 있다. 부지런함이야 ‘삼근계’를 따르지 못하고 진득하기는 ‘과골삼천’에 이르지 못하지만, 미욱함을 넘어서는 데는 큰 도움이 되겠다.

올해는 다산이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완성한 지 200년 되는 해다. 48권 분량의 이 책에서 그는 관리들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지방 수령에게 꼭 필요한 지침을 제시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임지를 따라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수령과 암행어사를 지내면서 민생의 궁핍상을 직접 보았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책 제목에 심서(心書)라는 말을 쓴 것은 ‘목민할 마음이 있으나 (유배 중이어서) 직접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붙인 것’이라고 했다. “군자의 학(學)은 절반이 수신(修身)이요, 나머지 반은 목민(牧民)인데 요즘 지방관들은 사익 추구에 정신이 없다”던 그의 질타가 지금도 생생하다. 오늘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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