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31) 사회계약설

입력 2018-03-05 09:02  

"홉스는 자연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봤죠
계약에 기반한 군주제 옹호했지만 왕권과는 달라요"




사회계약설은 민주주의에 기여

그런데 사회계약설의 선구적 역할을 한 홉스는 사회계약설을 주장하면서도 전제군주제를 강력하게 옹호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에는 모순적인 면이 있다. 왜냐하면 사회계약설과 군주제는 역사 발전 과정에서 상충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토머스 홉스의 사회계약 사상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전제군주제를 주장하게 된 이론적 배경과 논리적 추론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홉스가 보기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연권, 즉 자기 보존이라고 하는 생명 존중이다. 이를 위해 홉스는 자신의 명저인 《리바이어던》에서 투쟁이 없는 평화로운 정치 사회를 구현할 필요성과 방법을 제시한다. 《리바이어던》의 표지 그림은 철학사적으로 매우 유명하다.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거인과 같은 존재가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한 손에는 검과 다른 손에는 홀을 잡고 산 너머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거인의 이름이 바로 ‘리바이어던’이다. 이 리바이어던은 자연권을 내려놓고 모든 권리를 주권자에게 위임하는 사회계약을 통하여 탄생한 ‘국가’를 상징한다. 이제 자연 상태로부터 사회 계약을 통해 국가가 성립하는 과정을 추론한 홉스의 ‘사고 실험’을 따라가 보자.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은 위험

홉스는 먼저 국가가 없는 상황, 즉 자연상태를 가정하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시킨다. 그에 의하면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이기적으로 자기 보존만을 추구하는 존재다. 이기적인 개인들은 무제한의 힘을 추구하고 경쟁한다. 그리하여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자연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을 복종시킬 만한 공동 권력이 없을 때, 인간은 ‘투쟁’ 상태에 처하게 된다. 여기서는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적대하게 된다. 가장 나쁜 것은 계속되는 두려움, 갑작스런 죽음의 위험이다.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비천하고 그리고 짧다.”

이런 상황에서는 약자도 공포 속에 살아가지만, 강한 자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 가장 힘센 자도 누군가로부터 기습을 당하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려 무신정권 시대를 보면, 홉스가 말하는 자연 상태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20여 년 동안 최고 권력이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에게 차례로 넘어가는데, 이는 가장 강한 자들조차 기습을 통하여 죽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가장 강한 자도 이러한 공포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결국 모두가 평화를 위해 사회 계약을 맺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자신의 손에 있는 무기를 내려놓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즉, 인간은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지키기를 포기하고 자연권을 포기한다는 계약을 상호간에 맺어 ‘공동 권력’을 형성함으로써 만인의 투쟁 상태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주권자는 군주··· 왕과는 다르다

홉스에 의하면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공동 권력인 ‘주권’을 세움으로써 국가가 형성되는데, 국가의 대표자인 군주가 주권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 상태의 비관적인 상황을 종식시키고 평화로운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계약을 이행할 절대적인 권력을 군주가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홉스의 사회계약설이 군주의 절대 권력을 정당화하긴 했지만, 그의 사회계약설은 권력을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계약’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파악한 점에서 ‘왕권신수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이는 절대적 권력이던 왕권이 상대적인 것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홉스의 사회계약설은 그 안에 민주적인 의미를 가능성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권력의 존재 이유가 사람들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다면, 그러한 목표에 부합하지 못하는 권력은 그만큼 정당성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홉스를 권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철학자로 평가할 수 있다.

◆생각해봅시다

홉스의 사회계약설이 군주의 절대 권력을 정당화하긴 했지만, 그의 사회계약설은 권력을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계약’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파악한 점에서 ‘왕권신수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이는 절대적 권력 이던 왕권이 상대적인 것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홉스의 사회계약설은 그 안에 민주적인 의미를 가능성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홍일 < 서울과학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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