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부 지원금이 창업생태계 발전 막는다

입력 2018-03-14 17:47   수정 2018-03-15 06:07

"벤처캐피털은 정책자금 대부 기능
민간 M&A시장도 미미한 상황
성공한 벤처가 새 창업 이끌어야"

하태형 < 수원대 특임교수,법무법인 율촌 연구소장 >



지난달 하순, 학회 관련 일정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스탠퍼드대, 버클리대 등에서 육성된 인재들이 각종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매일 밤 수십 군데에서 열리는 ‘미트업(meetup)’이란 이름의 모임을 통해 소통하고 경쟁하기도 하는 등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성공한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쟁쟁한 선배기업들이 필요한 스타트업을 천문학적인 가격에 사들이고, 이렇게 돈을 번 스타트업은 자신의 성공을 가능케 해준 학교에 큰 금액을 희사하는 등 산학연(産學硏)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이들 스타트업의 탄생에서부터 매각에 이르기까지는 벤처캐피털(VC)의 도움이 필수적인데,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은 수동적인 투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보기술(IT)이나 바이오 등 각자 전문지식 및 투자경험을 토대로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해 투자한 스타트업의 성공을 돕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벤처가 매년 창업되고 있으며 똑같은 형태의 벤처캐피털이 이들 벤처에 투자하고 있다. 이에 더해, 정부도 매년 수조원의 자금으로 창업을 지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실리콘밸리에서와 같은 창업의 선순환 구조를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방문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니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그것은 바로 ‘정부 지원금’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 돈은 국민의 세금이므로 손실이 나면 곤란하다. 따라서 정부의 창업지원금을 교부받아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또한 순수한 지분투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담보를 요구하게 된다.

무늬만 투자이지 수익률 등을 약속받는 사실상의 ‘대부업’인 경우가 많고, 따라서 창업한 청년들이 실패하면 일순간에 큰 빚을 지게 돼 재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실패를 값진 교훈으로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고, 벤처캐피털의 투자도 순수한 지분투자에 그치고 있다. 그 때문에 좀 심한 경우는 창업에 실패한 바로 그날 오후에 또 다른 회사를 창업해 재기에 나서기도 하는 등 우리나라와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우리나라에서 선순환 창업생태계를 가로막는 걸림돌 중 하나는 이런 신생 벤처를 사고파는 인수합병(M&A) 시장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신생 벤처가 일정기간 성장하고 나서도 이를 사줄 수 있는 시장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신생 벤처는 자력으로 코스닥에 상장해야 비로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데, 벤처 탄생 후 코스닥 상장까지는 소위 ‘죽음의 계곡’을 건너야 하므로 대부분 벤처는 이 과정에서 탈락의 비운을 맞는다.

우리나라는 왜 M&A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것일까. 미국의 경우 M&A 시장의 큰손은 자신들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 성장한 대기업들, 예컨대 구글 애플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이다. 이들 대기업은 창업정신이 살아 있는 창업자 자신이 M&A를 신속하게 결정한다. 반면 우리나라 대기업은 정부의 정책자금을 지원받아 제조업으로 커 온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미 관료조직화돼 있다. 이 때문에 작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의 자금이 들어가는 신생 벤처의 M&A에 대한 결정을 쉽사리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도 벤처에서 출발, 성공신화를 쓴 네이버나 카카오가 최근 M&A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미국과 같은 선순환 창업생태계 구축의 작은 출발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요컨대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에만 의존하는 창업생태계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도 하루빨리 성공한 벤처가 새로운 창업을 이끄는 진정한 창업생태계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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