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연애편지

입력 2018-03-15 17:50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슬이 꽃을 사랑하는 것과 같고, 새들이 햇살을 사랑하는 것과 같고, 물결이 바람을 사랑하는 것과 같고, 천사들이 마음속의 순결을 사랑하는 것과 같소. 나의 키스와 축복의 기도를 받아주오. 내가 영원히 당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주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친구 여동생에게 보낸 구애편지다. 어느 날 만찬에 초대된 그는 돌아가기 싫어 마차에서 일부러 굴러떨어졌다. 그렇게 2주를 머물며 17차례 프러포즈 끝에 승낙을 얻었다.

연애편지를 읽을 때 우리는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한다. 철학자 모티머 아들러의 말처럼 행간과 여백, 숨결까지 읽는다. 암시와 함축에 예민해지고 말의 색깔, 문장의 냄새, 구두점에도 집중한다. 그 속에는 둘만의 상징과 은유가 담겨 있다.

영국 시인 존 던은 아내 앤에게 기발한 방법으로 사랑을 전했다. 그는 당대 권력자인 토머스 에거턴 경의 부하로 일하던 중 에거턴의 조카 앤과 사랑에 빠져 비밀결혼식을 올렸다. 이 일이 발각돼 직위를 잃고 감옥에 갔을 때 ‘존 던, 앤 던, 안 끝났어요(John Donne, Anne Donne, Un-done)!’라는 말로 아내를 안심시켰다.

실수로 백지를 봉투에 넣어 보낸 사연도 있다. 청나라 문인 곽희원의 백지 편지를 받은 부인이 보낸 답시가 압권이다. ‘벽사창에 기대서서 봉투를 뜯어보니/ 조그만 종이 한 장 텅텅 비어 있습디다/ 옳거니 낭군님이 이별 한을 달래려고/ 날 그리는 온갖 사연 침묵 속에 담았네요.’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는 일은 옛날에도 흔했다. 정몽주는 아홉 살 때부터 그랬다. 변방의 남편에게 부칠 글을 써 달라는 여종의 부탁에 ‘구름은 모였다가 흩어지고 달은 찼다가 이지러지나/ 제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라는 두 줄을 써 줬다. 너무 짧다고 하자 ‘봉함했다가 도로 열어 한 마디 덧붙이니/ 세간에서 병 많은 것이 상사병이라 하더이다’라고 추가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가장 길고도 간단한 러브레터는 프랑스 화가 마르셀 레쿠루르가 연인에게 보낸 것으로 ‘사랑해요(Je t’aime)’만 180만5000번 쓰여 있었다. 사랑의 편지는 이성적인 로고스(논리)보다 감성적인 파토스(정서)를 징검다리로 삼는다.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당신 발치에서 이틀 내내 자고 앉아 있던 제가 선의의 기념품을 드립니다’라고 썼다.

키르케고르는 가장 뜨거운 사랑의 편지로 성경의 ‘아가(雅歌)’를 꼽았다. ‘아, 제발 그이가 내게 입 맞춰 줬으면!’이라는 격정적인 문구가 무수히 나오니 그럴 만하다. 연인의 목소리는 벼랑 속에 숨은 비둘기도 나오게 한다고 했다. 신성한 몸과 정결한 영혼의 경계에서 피는 꽃이 곧 최상의 사랑편지가 아닐까 싶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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