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제학자 1140명 트럼프에 "1930년대 보호무역 실수 반복 말라" 경고 편지

입력 2018-05-04 18:21   수정 2018-05-05 05:52

"그때도 충고 무시해 대공황"

美 경제학자들, 트럼프에 경고
"트럼프 보호무역은 틀렸다…대공황 악화시켰던 악몽 잊지 말라"

경제학자 1140명의 충고
노벨상 수상자 15명도 서명
백악관·의회에 공개 서한
"무역협정 탈퇴·관세폭탄 등
확대된 보호무역은 실수"

1930년 서한과 '닮은꼴'
"보호무역으로 경제 위축"
당시에도 고율 관세 탓에
통상전쟁 부르며 대가 치러



[ 설지연 기자 ]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15명을 포함한 1140명의 미국 경제학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를 공개 경고하고 나섰다. 이들은 1930년대 대공황이 심해진 배경에 지금과 같은 미국발(發) 관세 인상 경쟁이 자리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 경제학자들은 3일(현지시간) 전국납세자조합재단(NTU)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에 전달한 공개 서한에서 “1930년 의회는 경제학자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결과 미국인들이 대가를 치렀다”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세계 각국과 통상 문제로 극심한 마찰을 빚고 있는 지금이 1930년대 대공황 시기와 비슷하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36년 만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앞세워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은 1930년 제정된 스무트·홀리관세법의 재판(再版)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관세 인상을 위해 제정한 스무트·홀리관세법은 각국의 관세 인상 경쟁을 초래했고 세계 교역이 급감하면서 대공황을 심화시켰다.

미 경제학자들은 “지금까지 일어났던 무역전쟁에서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 대공황 당시 보호무역 철회를 요청하는 편지를 받고도 묵살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1930년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대공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은 잊어서는 안 된다.’

1140명의 미국 경제학자가 보호무역주의 철회를 요구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학자도 대거 서명했다. 앨빈 로스(2012년), 리처드 세일러(2017년), 올리버 하트(2016년), 로저 마이어슨(2007년), 로버트 실러(2013년) 등 15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함께 과거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경제 참모를 지낸 인사들도 이름을 올렸다.

경제학자들은 전국납세자조합재단(NTU)을 통해 띄운 공개서한에서 “오늘날 미국은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잇따라 추가 관세 부과에 나서고 다자간 무역협정 탈퇴를 추진하는 등 보호무역주의로 가고 있다”며 “그러나 확대된 보호무역 기조는 명백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와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무역에서 사실상 모든 나라에 (미국이) 수십억달러를 잃고 있다면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도 쉽다”며 미국의 이익을 위해 통상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조치에 중국,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 등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중국과 EU 등은 미국의 관세 부과에 상응하는 보복관세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혔다. 더구나 미국과 중국은 베이징에서 통상 갈등을 풀기 위한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미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지금 상황이 1930년대 대공황 때와 닮았다는 점을 크게 우려했다. 1930년 5월3일 1028명의 경제학자가 뭉쳐 당시 허버트 후버 대통령에게 보호무역주의 철회를 요청하며 보냈던 서한 전문을 같이 실은 것은 과거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1929년 10월29일 뉴욕증시 대폭락으로 시작된 세계 대공황은 1920년대 미국 경제의 거품에 근본 원인이 있었다. 당시 후버 행정부가 취한 보호무역 조치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장기 공황을 부른 계기였다고 경제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후버 행정부는 증시 급락이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1930년 6월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했다. 2만여 개 수입품에 평균 59%, 최대 400%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평균 25.9%였던 미국의 수입관세율은 59.1%까지 치솟았다.

스무트·홀리법은 그러나 세계 각국의 관세 인상 경쟁을 촉발했고 이로 인해 무역 거래가 급감해 대공황은 악화됐다.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이 미국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일부 국가는 수입 제한 및 환율 통제로 맞선 결과다. 이 같은 통상전쟁 여파로 당시 세계 무역 규모는 66%(1929~1934년) 급감했고, 세계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5%(1929~1932년) 쪼그라들었다.

1930년대에도 경제학자들은 “보호무역을 위한 관세 인상은 잘못된 것”이며 “이는 상품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게 되기 때문에 다수의 미국 시민이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또 “관세가 국제무역 규정을 복잡하게 하고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들이 미국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관세 전쟁은 세계 평화와 성장을 위해 좋은 토양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 충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가와 소비자는 물론 건축, 교통, 소매유통, 은행, 호텔 등 모든 사업자가 관세전쟁의 패자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외면당했다. 대공황은 그 뒤 더 확대됐다.

2018년 미국 경제학자들은 다시 한목소리로 트럼프 대통령과 의회에 스무트·홀리관세법과 같은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즉각 철회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지난 88년간 무역의 중요성이 더 커진 것을 포함해 미국 경제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보호무역주의의 폐해와 같은 기본적인 경제원칙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스무트·홀리관세법

미국이 대공황 초기인 1930년 산업 보호를 위해 제정한 관세법. 공화당 소속 리드 스무트 의원과 윌리스 홀리 의원이 주도한 법안으로 2만여 개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한 법안이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에 보호무역이 번졌고 대공황을 더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