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통일 독일경제의 교훈

입력 2018-05-20 18:02  

"18년간 경제통합 준비한 독일도
자료 부실·정책 실수로 큰 어려움
통일 대비 꾸준한 經協 연구 절실"

홍석우 < 前 지식경제부 장관 >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는 1989년 6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독일 통일이 되는 것을 보고 죽었으면 좋겠지만 주변국의 반대로 빨리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한국이 먼저 통일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과 5개월 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이듬해 10월 독일은 통일을 이뤘다. 이렇게 독일 통일은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그렇다고 독일이 통일 준비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다.

서독은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된 이후 동독과의 경제교류를 지속했다. 경제협력 초기부터 도로, 철도 등 기반시설 확충과 통신 협정 체결 등을 통해 경제통합과정에서 기업의 거래비용을 낮추기 위한 조치를 차근차근 해왔다. 이런 노력을 한 지 18년 만에 통일이 됐음에도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동독의 경제 상황에 대해 사전에 상세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 푼도 없다던 동독의 외채는 200억달러에 달했고 서독의 절반 수준은 될 것이라던 동독의 생산성은 실제로 4분의 1에 불과했다. 동·서독 화폐 교환비율을 적정비율(4.4 대 1)을 무시하고 1 대 1로 책정하는 등의 실수도 나오면서 어려움은 가중됐다.

그 결과 통일 비용은 급증했고 이로 인한 물가상승, 고금리정책 추진, 투자 지연의 악순환은 독일경제의 화근으로 작용했다. 통일 후 2005년까지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불릴 정도로 장기 침체를 겪었다. 그러나 통일은 궁극적으로 독일의 경제체질이 개선되는 계기가 됐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던 성장세가 멈추고 노쇠하는 조짐을 보였다. 동시에 분배와 복지의 선진국병에 걸려 헤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의 저렴한 땅값,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 경제 규모 확대는 성장을 위한 기반으로 작용했다. 2004년 시행된 슈뢰더 총리의 ‘아젠다 2010’을 계기로 선진국병마저 치유하게 됐다.

통일 전 독일처럼 우리 경제도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의하면 잠재성장률은 2010년대 3.6%에서 2030년대 1.9%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 3763만 명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고,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훗날 우리도 통일이 되거나 긴밀한 형태의 경제통합이 이뤄진다면 독일처럼 통일의 강점이 발휘될 가능성이 크다. 통일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 일본, 독일에 이은 인구 4위의 거대 내수시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남북한 해빙무드를 보며 언제 올지 모를 상황에 대비한 우리의 준비가 소홀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18년이나 긴밀한 경협을 지속했지만 우리는 제한적인 경협마저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당시 동·서독 격차에 비해 지금의 남북한 경제력 차이가 큰 것도 불리한 여건이다. 2016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북한의 45배, 1인당 GDP는 22배에 달한다. 1991년 동독 대비 서독의 GDP와 1인당 GDP는 각각 13.7배와 3.1배였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대비한 연구도 많이 부족하다. 남북한 해빙기에는 많은 기관이 북한 연구에 임했지만, 부족한 자료로 인해 연구결과는 턱없이 초보적인 것이 많았다. 그나마 냉각기에 접어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연구 열기도 급격히 식었다. 북한·통일연구는 범위의 확장과 연구의 연속성이 단절돼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수준으로 진일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다시 해빙기가 시작되자 너도나도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위한 연구 준비에 나서고 있다. 매년 10명의 북한학 석사를 배출하던 어느 대학에 최근 석사과정 신청자가 60여 명에 달하고, 5명에 불과했던 박사과정 신청자는 30명을 넘었다고 한다. 남북한 관계가 해빙기이든 냉각기이든 꾸준히 연구하는 풍토를 만들어 주는 것이 훗날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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