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정부지배구조도 올바르고 투명해야

입력 2018-06-21 17:37  

긍정적 기대효과만 바라보는 정책은 下策
우려되는 부작용은 시행 속도 조절해 줄이고
'시장 활성화'에 초점 맞춰 경제 활력 돋워야

노대래 < 법무법인 세종 고문·前 공정거래위원장 >



우리는 기업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정부지배구조(government governance)는 항상 적법하고 합리적이며 투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최근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인상, 재벌개혁 등 핵심 정책의 추진 과정을 보면 정부가 당위성을 내세워 밀어붙이는 것 같다. 또 법에 없는 모범규준을 따르라거나 순환출자를 자발적으로 해소하라고 강요(?)하고, 국민연금을 활용한 경영 압박이 버젓이 행해진다. 이런 정책 이슈들은 경제시스템과 직결돼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신중한 처리가 요구된다.

지난달 통계청은 하위 20%의 소득이 8% 감소했다는 1분기 가계소득동향을 발표했다. 1주일 후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근로소득이 전반적으로 증가했다”며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인 효과가 90%”라고 못 박았다. 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정책적 중요성이 있는 자영업자와 실업자 그룹은 제외된 것이다. 경제 컨트롤타워 문제도 시끄러웠는데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은 청와대 정책실장이, 경제민주화는 공정거래위원장이, 규제개혁과 혁신성장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총대를 메도록 정리됐다. 정책 불신이 커질 수 있는 사안이었는데 빨리 정리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구도에서 정책이 책임 있게 수행될지 의문이다. 정부 각 부처는 고유의 임무와 권한에 맞게 조직, 인력, 예산이 편성돼 있다. 어느 부처가 타 부처 업무를 끌어다 하면 법치행정에 반하고 부처 간 협조도 안 된다. 자기 부처 업무를 타 부처가 건드리는데 가만히 있을 공무원은 없기 때문이다. 또 정부 조직은 부처 간 위계가 확실하기 때문에 하위 부처가 상위 부처에 왈가왈부하기 어렵다. 청와대처럼 상위 기관이 나서면 조정은 쉽게 되지만 책임 소재는 불분명해진다.

정부 정책에는 보이지 않는 지배원칙이 있다. 정책이 핵심 성과를 거두려면 메인(main)을 건드려야 한다는 점이다. 소득의 대부분은 시장에서 창출되는데, 주눅 든 시장에서 소득을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은 없다. 시장이 활성화돼도 소득이 증가하지 않는 하위계층에 대해서는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책의 메인은 시장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책에는 항상 정(正)의 효과와 부(負)의 영향이 공존하며, 정이 부보다 커야 성공한 정책이 된다. 정의 효과만 고려하면 하책(下策)이 된다. 최저임금 인상이 부담이 되면 시장은 해고를 택한다. 최근에 겪은 일이다. 동네 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평소와 달리 경황이 없어 보였다. “최저임금 때문에 음식값을 올리고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줄였는데, 나만 바빠지고 수입은 더 줄었다”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장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며칠 전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요즘은 한강 둔치 진입로가 정체구역인데 깜빡 잊고 길을 잘못 들었다”고 미안해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못 구한 젊은이들이 소주와 통닭을 사서 둔치를 많이 찾기 때문이란다.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 택시요금을 올리면 버스 타는 사람이 늘어 택시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기는 요금 인상에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한 중소기업 사장 얘기다. 그는 30년 이상 사업하면서도 해외 이전은 생각해 본 일이 없는데,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해외 이전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혁신성장과 벤처 육성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근로복지를 높인다는 정책 방향은 옳다. 하지만 그런 제도 개선은 일자리를 유지시키면서 할 때만 의미가 있다. 신설된 벤처기업이 몇 백 개 남짓한데 공장을 해외로 옮기려는 기업이 더 늘어난다면 어떻게 되나.

노동생산성과 업무집중도를 높여 제도 개선을 마찰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한다. 고락을 함께한 근로자를 해고하고 싶어 하는 사용자는 없을 것이다. 이런 마음을 최대한 견지하도록 속도를 조절해 줘야 일자리가 유지된다. 눈은 멀리 높게 보더라도 발은 땅에 붙이고 걸어야 하는 법이다. 상충관계(trade-off)가 있는 정책은 속도 조절을 통해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 이것도 정부지배구조의 중요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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