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절대 안 된다

입력 2018-06-28 17:39  

전 국민의 노후자산을 책임지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중립성·전문성 확보 어려워
세계 최대 日 GPIF처럼 시장에 위임해야

황영기 < 법무법인 세종 고문 前 금융투자협회장 >



대한민국에 ‘의결권’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던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부터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엘리엇 간 공방에 이르기까지 의결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특히 정부는 1991년 도입한 섀도보팅 제도를 올해부터 폐지하고, 기관투자가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다소 준비가 부족한 면은 없지 않지만, 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적극 지지한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은 무엇인가? 국민연금법 1장 1조는 국민연금은 ‘연금 급여를 통해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리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중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민연금 하면 논란만 가득하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의결권 행사로부터 시작해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에 잡음이 이어지더니 최근에는 대한항공 ‘오너 리스크’와 관련한 주주권 행사까지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전임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은 철창행이고 신임 기금운용본부장 자리는 11개월째 공석으로 있다. 이 모든 문제와 논란은 결국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려는 데서 발생하고 있다. 삼성물산 합병 이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민감한 이슈를 소수 민간인(9인)으로 이뤄진 의결권전문위원회에 맡기고 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일 뿐 큰 줄기는 그대로다. 전문위는 급격히 커지는 역할과 세간의 관심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고, 이 구조로는 논란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에 130조원을 투자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약 7%에 달한다. 지분 5% 이상 보유한 종목도 299개다. 자산 규모가 계속 늘어나니 자연히 상장기업의 경영 판단을 국민연금이 주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국민연금 내 불과 일곱 명의 직원이 772개 상장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담당하고 있다. 인원을 좀 더 늘린다 한들 과연 최적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상태일까?

더 큰 문제는 정치적 중립성 훼손 우려다. 한국의 정치 문화는 아직 충분히 선진적이라고 볼 수 없으며, 국민연금 또한 이 영향에서 자유로운 정치적 진공 상태에 있지 못하다. 혹여 기업 가치 이외의 변수가 먼저 고려돼 의결권이 잘못 행사된다면 국민연금 수익률은 서서히 악화될 것이고, 이는 국민의 노후 대비 재산에 균열을 낼 것이다. 국민연금이 커질수록 의결권 직접 행사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이유다.

해법의 하나로 운용자산 145조엔(약 1475조원, 2016년 말 기준)인 세계 최대 연기금 일본 후생연금펀드(GPIF) 사례를 제시하고 싶다. GPIF는 법률상 주식을 직접 보유할 수 없다. 펀드 내 주식에 대한 의결권은 자산운용사가 행사하고, GPIF는 운용사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에 대한 모니터링 같은 관리 업무만 한다. 의결권 직접 행사에 따른 정치적 논란과 오해를 피하고 시장 참가자의 집단 지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한 탁월한 선택이다.

국민연금도 GPIF처럼 주주권 행사를 외부 위탁 운용사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투자의 절반가량을 위탁 운용하면서 펀드가 아니라 일임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다. 일임 방식으로는 국민연금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해 갈 수 없다. 의결권을 위임하면 운용사들이 ‘수익률과 기업 가치 제고’라는 원칙 아래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다. 수많은 시장 전문가들이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식견과 경험을 토대로 상장사에 대해 분석할 것이고 최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운영을 통해 국민연금의 기준에 맞는 운용사를 선정하고, 그 성과를 감독·통제하는 간접 운영 방식을 택해야 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기원전 460년께 만든 이 선서는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의학 윤리의 근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민의 노후 자산을 관리하는 자라면 “나는 국민의 자산과 수익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고 선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만일 국민연금이 정치적·사회적 목적에 이용돼 평판과 수익률이 나빠진다면 2200만 명에 달하는 연금 가입자들 분노를 감당할 수 있는 정부는 없다. 국민연금의 직접적인 의결권 행사는 국민을 위해서나, 당사자들을 위해서나, 정부를 위해서나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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