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PR+, 안전·수출·일자리 위해 필요하다

입력 2018-07-09 19:26  

천지·대진 원전 건설 백지화로
APR+ 기술·시장신뢰 잃을 판
수출길 막는 脫원전 역주행 안돼

정동욱 < 중앙대 교수·원자력공학 >



석유 부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자력발전소 도입을 추진한다. 첫 번째 단계로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를 협상대상으로 발표했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같은 시기에 한국수력원자력은 경북 영덕 인근의 천지 원전과 강원 삼척 인근의 대진 원전 계획을 취소했다. 이에 따른 손실이 수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사우디 원전 수주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우려된다.

신규 원전 백지화로 잃는 것은 또 있다. 한국형 원자로 ‘APR1400’ 후속으로 개발한 ‘APR+’다. APR+는 전원이 완전히 끊겨도 적어도 3일간 아무런 조치 없이 버틸 수 있다. 세계 최초로 대형 원전에 적용한 기술이다. 핵연료가 녹는 상황이 와도 원자로를 침수시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지 않도록 설계했다. 이렇게 안전하게 만든 APR+는 천지·대진 원전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천지·대진 원전 백지화로 APR+ 개발비뿐만 아니라 기술 자체가 사장될 판이다.

탈(脫)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는 이유로 안전을 얘기한다. 그렇다면 신형 원전으로 구형 원전을 대체해 해결하는 것이 순리다. 천지 1, 2호기는 2027년에 준공될 예정이었다. 2027년이면 천지 인근의 고리 2, 3, 4호기, 월성 2호기 운전이 만료된다. 준공시기를 2029년으로 잡으면 월성 3, 4호기까지 총 6기가 사라진다. 지역의 원전 밀집도는 경감될 뿐 커지지 않는다. 안전성이 한층 강화된 신형 원전 건설은 수출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원전 기술과 산업의 유지뿐 아니라 시장의 신뢰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맞추려면 매년 10기가와트(GW) 규모의 원전 증설이 필요하다는 게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설명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전망하는 세계 원전시장 규모는 작게 잡아도 2050년까지 320GW, 즉 APR+급으로 213기가 필요하다. 미국 상무부가 작년에 발표한 원자력시장 분석에 따르면 5~10년 내에 25개국이 총 170기의 원전을 도입할 계획이다. 25년 내에는 36개국이 372기를 지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향후 10년간 원자력시장 규모가 550조~8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56기의 원전이 건설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원전 도입국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물론 이집트, 요르단이 원전 도입에 적극적이다. 터키와 방글라데시는 최초 원전을 이미 짓고 있다. 유럽에선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서고 있다. IAEA와 미국 상무부 역시 세계 원자력시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로 확산되고 있다는 데에 주목하고 있다. 원전 수출국은 원전 건설뿐만 아니라 운영, 엔지니어링 서비스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 설계부터 폐로까지 100년간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세계 원전 건설 이력을 보면 어느 순간 수요가 폭증하는 밴드왜건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에 건설이 추진됐던 원전은 234기였다. 그중 165기가 완공돼 지금까지 운전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특이한 머리 모양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앞머리가 무성했지만 뒷머리는 대머리다. 준비한 사람은 그를 잡을 수 있었으나, 지나친 사람은 잡을 수 없었다. 사우디 원전 시장에 글로벌 5대 공급국이 모두 참여했다.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사우디 이후의 시장 경쟁에서도 이들과 또다시 맞붙을 것이다. APR+는 이를 위해서도 꼭 준비해둬야 하는 회심의 기술이다. 2000억원 넘게 들여 개발했고 안전 심사까지 모두 마친 원전 기술을 포기해선 안 된다. 안에선 안전한 원전을 유지하고, 밖에선 수출 기회를 잡기 위해 APR+ 건설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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