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노스 주민들, 대화를 통해 오이디푸스의 고통을 이해하다

입력 2018-08-17 19:03  

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14) 대화(對話)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눈물로 가득한 연못’이란 장면이 등장한다. 앨리스는 잠시 잠이 들어 깊은 구덩이에 빠졌는데 출구를 찾지 못해 한참 운다. 앨리스는 몸 크기가 작아져, 자신이 흘린 눈물이 만든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그때 생쥐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나타난다. 앨리스가 말을 건다. “오, 마우스(생쥐)여. 이 연못을 나가는 길을 아니? 여기서 헤엄치는 것이 너무 피곤해. 오, 마우스여!” 앨리스는 생쥐를 부를 때 ‘마우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쥐에게 말해 본 적이 없었지만 오빠의 라틴어 문법책에서 ‘마우스’에 대한 격(格)변화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우스, 마우스의, 마우스에게, 마우스를, 오 마우스여!’

앨리스와 생쥐의 대화

생쥐는 앨리스를 한참 쳐다본 후, 조그만 눈으로 윙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생쥐가 영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엔 프랑스어로 말을 건넸다. 윌리엄 1세가 11세기 영국을 정복하러 이주했을 때, 그 생쥐도 함께 왔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윌리엄 1세가 거의 1000년 전 사람이란 사실을 몰랐다. 앨리스는 프랑스어를 배울 때 외운 첫 문장을 생쥐에게 말했다. “우 에 마 샤트(Ou est ma chatte)?” “고양이가 어디 있지?”라는 뜻이다. 그러자 생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에서 나와 공포에 질려 온몸을 떨었다. 앨리스는 말한다. “미안해. 나는 네가 고양이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어.”

생쥐는 앨리스에게 묻는다. “네가 나라면 고양이를 좋아하겠어?” 앨리스는 자신이 키우는 ‘디나’라는 고양이를 만나면, 생쥐가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생쥐는 이번엔 꼬리까지 부들부들 떨며 다시는 고양이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앨리스가 자신이 키우는 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생쥐는 멀리 헤엄쳐 간다. 정신을 차린 앨리스는 다시는 고양이나 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생쥐는 다시 서서히 앨리스에게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물에서 나가자. 내가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러면 너는 내가 왜 고양이와 개를 싫어하는지 알게 될 거야.”

경청(傾聽)

대화는 경청의 선물이다. 인간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생각했던 과거의 입장과 관습을 버릴 수 있다. 대화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표정을 관찰하고, 그들의 입장을 숙고하는 훈련이다. 인간은 대화를 통해 상대방 주장이 더 이성적이며 감동적이라면 언제든지 자신의 주장을 버리고 상대방 주장을 수용한다. 대화는 편견과 무식으로 무장한 자화자찬이 아니다. 대화는 경청을 통해 상대방 의견을 상대방 처지에서 듣고,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려는 준비다.

콜로노스 시민들은 비극 작품에서 ‘합창대’로 등장한다. 그들은 비극의 사건을 촉발하거나 유발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입장에서 오이디푸스와 그 주변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숙고한다. 관찰과 숙고는 유연하다. 그들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들이 생각했던 과거의 입장과 관습을 버릴 수 있다.

콜로노스 시민들은 오이디푸스를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얻은 상식에서 판단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아무리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일지라도, 타인이 보기에는 억지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오이디푸스를 그에 대한 소문 및 사회적인 관습과 편견에 근거해 판단한다. 우리는 얼마나 상대방을 우리가 지닌 편견과 무식으로 판단하는가.

고향에서 쫓겨난 오이디푸스는 낯선 땅에서 자신의 비참한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한다. 그곳은 아테네라는 도시 근처에 있는 콜로노스다. 콜로노스에는 ‘분노의 여신들’이 거주하는 거룩한 숲이 있다. 도시문명을 저해하는 해악들을 제거하는 장소다. 그래야 아테네가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실천하는 유일무이한 도시가 되기 때문이다. ‘분노의 여신들’ 혹은 ‘자비로운 여신들’은 도시문명의 근간이며 최소 단위인 가족이란 자연스럽고 신성한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들을 심판한다. 오이디푸스는 이 근간을 파괴한 ‘괴물(怪物)’이다. 그는 자신이 왕으로 있던 테베라는 공동체에서 스스로 자신을 추방해 콜로노스의 숲에 도착했다. 콜로노스 거주자들은 오이디푸스라는 ‘오염’이 자신들 거주지에 침입한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콜로노스의 숲은 오이디푸스에게 특별하다. 그는 아폴로 신으로부터 신탁을 받았다. 오이디푸스가 마침내 정착해 생을 마감할 장소가 콜로노스라는 내용이다. 이 신탁은 오이디푸스나 콜로노스 주민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수께끼다. 가족이라는 문명의 최소 단위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인류의 도덕과 관습을 파괴한 오이디푸스가 왜 콜로노스 외곽에 있는 ‘자비로운 여신들’의 숲에서 삶을 마쳐야 하는가?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역병을 일으킨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신탁의 비밀을 다시 풀려고 한다. 오이디푸스 자신이 이젠 테베가 아니라 인류의 문화와 문명을 말살시킬 위험을 지닌 ‘오염’이 돼 자신을 치유할 방도를 찾기 시작한다.

이스메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과거와 자신의 운명적인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간극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그는 악인가, 선인가. 그는 저주인가, 축복인가. 그는 아버지인가, 아들인가. 그는 남편인가, 아들인가. 그는 오빠인가, 아버지인가. 오이디푸스는 그가 지닌 이중적인 정체성과 그 간극으로 혼미하다. 오이디푸스의 둘째 딸 이스메네가 등장해 이 혼동을 가중시킨다. 오이디푸스는 첫째 딸 안티고네로부터 이스메네가 망아지를 타고 햇빛을 가리는 모자를 쓰고 도착했다는 사실을 듣는다. 그는 이스메네에게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라고 말한다. 그런 후 그는 두 딸에게 “아아, 내 딸들이자 내 누이들이여!”(329행)라고 외친다.

이스메네는 오이디푸스의 아들이자 자신의 오빠들인 폴리니케스와 에테오클레스 사이에 벌어지는 권력투쟁에 관해 자세히 알려준다. 그들은 삼촌인 크레온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테베를 짓누르고 있는 부정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다가 지금은 사악한 경쟁심에 사로잡혀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전한다. 동생 에테오클레스에게 밀려 테베에서 쫓겨난 폴리니케스는 이웃 도시 아르고스로 망명했고, 그곳에 있는 친척 일곱 장수들을 규합해 테베를 공격할 참이다.

이스메네는 아폴로의 또 다른 신탁을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폴로는 오이디푸스가 죽은 장소가 주변국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는 표식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누구든지 오이디푸스를 손에 넣되 그를 그들의 국경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이런 말을 전하는 이스메네에게 오이디푸스는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어려울 때 네 젊은 오라버니들은 어디 있느냐?(…)그 녀석들은 둘 다 마음가짐도 생활 태도도 매사에 이집트 방식을 따르는구나. 그곳 남자들은 집안 베틀가에 앉아 일하고, 아낙네들은 밖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러 나간다.”(335~340행) 안티고네는 사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장님이 된 아버지의 길잡이가 돼 굶어가면서 맨발로 험한 숲을 헤맸다. 이스메네는 안락한 궁궐을 떠나 목숨을 걸고 테베에서 탈출해 오이디푸스에 대한 신탁을 알려줬다. 두 딸의 행위는 당시 그리스의 사회규범에 반한다. 오이디푸스는 딸들의 낯선 행위들을 ‘이집트적’이라고 말한다. 집안에 앉아 권력만을 잡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려고 하는 아들들과는 달리, 딸들은 콜로노스와 아테네의 미래를 결정한 신탁을 받고 오이디푸스와 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미래 사회를 위해 개인이 취해야 할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의 행위는 소포클레스의 다른 작품 《안티고네》에 자세하게 등장한다.

감동(感動)

오이디푸스와 두 딸의 대화를 곁에서 듣고 있던 콜로노스 주민들은 감동을 받는다. 주민 대표가 말한다. “오이디푸스여, 당신도 당신의 따님들도 진실로 동정을 받을 만합니다. 당신이 우리나라를 구할 힘이 있다니, 나도 당신을 위해 조언하겠습니다.” 주민들은 오이디푸스 가족에게 그들의 신성한 숲 무단 출입으로 ‘자비로운 여신들’이 화가 났으니 정결의식을 치르라고 조언한다. 콜로노스 주민들은 이제 진정으로 오이디푸스 말을 듣고 싶었다. “치료할 길 없이 당신을 엄습했던, 그래서 당신이 씨름해야 했던 저 처참한 고통을 들려주십시오.”(515~516행)

이제야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마치 생쥐가 물에서 나와 앨리스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낯선 곳에서 죽자 사자 자신에게 달려오는 사람을 정당방위로 살해했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의 장난으로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이뤘다. 그는 말한다. “영문도 모르는 나를 도시(테베)가 사악한 결혼으로 내 재앙이었던 신부에게 묶었습니다.”(525~526행)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어머니와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작가 소포클레스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리스어 감탄사를 하나 만들어 냈다. ‘이오!’ 풀어 번역하자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슬프다!”란 뜻이다. 콜로노스 주민들은 오이디푸스를 그에 대한 소문에 의지해 평가하지 않았다. 오이디푸스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고통에 동참했다. 오이디푸스의 불행을 자신들의 불행으로 여기는 동정심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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