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대법원은 왜 전원합의체로 재판해야 하는가

입력 2018-08-20 19:00  

집단지성 이루면 다양성 포용에 효과적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재판을 하는 이유
小部 운영 전제한 대법관 증원은 안 돼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사실심 판사는 재판에서 다투고 있는 사실이 입증됐는지 아닌지에 관해 자신의 전인격적인 지식과 경험에 비춰 최선을 다해 심리하고 판단할 의무를 진다. 개인적 소신이나 이념 성향이 아니라 직업적 양심이 이 과정을 지배하며, 그밖의 외부적 요인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사실심을 합의제로 운영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합의부의 어느 구성원 판사가 자신의 전인격을 걸고 기소된 사실에 관해 여전히 합리적 의심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두 판사는 이 정도면 유죄가 충분히 입증됐다고 생각한다면, 그 재판부는 다수결로 유죄를 선고해야 하는가 아니면 한 사람이라도 입증 부족이라고 생각하므로 무죄를 선고해야 하는가.

사실심은 대체로 단독판사가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O J 심슨 사건이나 삼성-애플 사건처럼 세기의 사건으로 칭해지는 중요 사건도 단독판사가 사실심을 진행했다. 우리나라는 과거 연수원을 갓 수료하고 재판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판사로 임명되면서 이들에게 곧바로 단독재판을 맡길 수 없어 합의부를 운영했다. 배석판사가 단기간 지도과정을 거친 뒤 독립하는 경우에는 이 제도가 그런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배석판사 근무기간이 대폭 늘어나면서 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 문제는 국민이 신뢰하는 재판, 초임 판사에 대한 교육,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인사제도 등 정책 목표가 상충하는 난제다.

한편, 법률심은 법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이나 가치관이 충돌하는 곳이며 집단지성을 통해 더 좋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설득과 경청을 통해서도 통합되지 않는 견해는 해당 판사에게 침묵이나 승복을 강요함이 없이 소수의견으로 판결문에 남기면 된다. 이것이 합의부의 본래 모습이며 외국에서도 법률심은 대체로 합의부로 운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만이 온전한 법률심이다. 대법원의 심판권은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 이상 합의체에서 행사하도록 돼 있으며, 보통 13인으로 운용되고 있다. 예외적으로 부(部)를 두어 재판할 수 있고, 현재 대법관 4인으로 구성된 3개의 부가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의 대부분을 부에서 재판하며 전원합의체에서 재판이 이뤄지는 경우는 매우 적다.

전원합의체 재판은 대법원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은 극히 다양하며,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어떤 기준이 제시돼 갈등이 일시적으로 해소되더라도 사회는 늘 변화하고 있으므로 항상 새로운 문제가 출현한다. 성범죄, 간통, 존엄사, 낙태, 동성혼 등 수많은 문제에 관해 규범의식이 변화해 왔고 현재도 변화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동일한 지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것보다는 직업적 양심을 공유하되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함께 논의해서 집단지성을 이룬다면 그 전체적인 결론이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다. 제1심 법관의 인적 구성을 다양화하자는 주장은 별로 없으면서 오히려 대법관을 다양화하자는 주장이 더 강력한 이유는 이런 점에서 설명이 된다. 인적 구성의 다양화는 전원합의체를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과거 루스벨트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뉴딜 입법들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수차례 위헌 판결을 한 적이 있다. 루스벨트는 선거에서 압승한 뒤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그 핵심 내용은 대법관이 70세에 이르면 은퇴할 수 있게 하고 은퇴하지 않은 대법관 한 사람마다 추가로 대법관을 임명해서 열다섯 명까지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이다(court packing plan). 우여곡절 끝에 이 법안은 좌절됐지만 이것은 미국 대통령이 대법원을 무력화하겠다고 위협한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가 실질적으로 가능한 한계에 근접한 상태다. 여기서 대법관의 숫자를 더 늘린다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본회의가 불가능한 국회에 비교할 수 있겠다. 상임위가 활동한다는 이유로 본회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꿔서야 되겠는가.

대법원을 소부로 운영하는 것은 당초 법이 예정한 바와 같이 예외적으로 허용돼야지 그것이 오히려 원칙처럼 운영돼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모처럼 다양한 경력의 대법관들을 선발한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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