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후지와라 효과

입력 2018-08-23 18:54  

오형규 논설위원


일본은 한 세기 전 이미 기상학 선진국이었다. 잦은 태풍, 지진해일 등에 시달리고 어업 종사자가 많아 기상예보 수요도 컸다. 일본은 1967년부터 세계 기상관측을 위한 지구대기연구계획(GARP·현재 세계기상연구계획)에 참여했고, 1977년에는 미국 소련에 이어 세 번째로 정지 기상위성 ‘히마와리’를 쏴 올리기도 했다.

요즘 기상용어도 일본에서 한자로 번역했거나, 없는 것을 만든 게 대부분이다. 기온, 기상, 저기압, 태풍, 불쾌지수, 고온다습, 삼한사온, 난동(暖冬), 결빙, 우천, 국지성 호우, 연무, 대기 불안정 …. 쓰나미(津波, tsunami)처럼 아예 국제용어가 된 것도 있다. 열대야·초열대야라는 표현도 일본에서 나왔다. 영어로 ‘tropical night’라고 하면 원어민들은 ‘열대의 밤’으로 오해한다. 서양에는 밤에도 푹푹 찌는 날씨가 거의 없다.

일본이 기상학 선진국이 된 데는 ‘기상예보의 아버지’로 불리는 후지와라 사쿠헤이(1884~1950)의 공로가 크다. 도쿄대를 나온 그는 1909년 중앙기상대(현 기상청)를 거쳐 노르웨이 유학을 마친 뒤 도쿄대 교수와 중앙기상대장 등을 지냈다. 20권의 저서를 내면서 기상용어의 기초를 닦은 기상학자다.

후지와라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히는 건 1921년 태풍 예보의 진보를 가져온 ‘후지와라 효과’의 발견이다. 후지와라 효과는 근접한 두 개의 열대 저기압(태풍)이 1000㎞ 이내로 근접할 때 서로의 진로와 세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간섭현상을 일컫는다. 강한 태풍이 약한 쪽을 흡수하거나, 서로 동행 또는 한쪽이 뒤따르는 등 여섯 가지 유형이 있다. 두 개의 당구공이 어떤 강도와 두께로 부딪히느냐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미국에선 두 태풍이 춤추는 것 같다고 해서 ‘폭풍의 왈츠(stormy waltz)’ ‘후지와라 댄스’로도 불린다.

태풍은 발생부터 구조, 이동 요인 등이 워낙 복잡해 진로를 정확히 예상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물며 후지와라 효과가 발생하면 두 태풍의 속도, 진로, 세력은 예측 불허가 된다. 오락가락하거나 일시 멈추는 ‘지그재그 태풍’도 있다.

오늘 한반도를 지날 19호 태풍 솔릭이 일본을 거쳐 동해로 올라올 20호 태풍 시마론과 만나 후지와라 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예측이 일본에서 나왔다. 어제 낮 솔릭의 속도가 시속 4㎞까지 떨어진 반면 시마론은 30㎞로 높아져 따라잡을 것이란 시나리오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가 두 태풍 사이에 끼는 모양새가 된다.

그러나 한국 기상청은 두 태풍 간의 거리가 상당히 멀어 후지와라 효과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부디 큰 피해 없이 태풍이 폭염만 날려 버리면 좋겠다. 한국 기상청이 맞기 바란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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