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 JB금융 회장 "만석꾼 집안서 태어난 행운아… 지역경제 되살리는 게 내 소명"

입력 2018-08-24 17:35   수정 2018-08-25 10:24

한경과 맛있는 만남

"직업이 인생 보장하던 시절 지나…청춘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길"

온화한 성품 빼닮은 父子
꾸짖음보다 대화로 문제 해결하던 아버지
"상식에 맞는 삶 살아라" 자식들에게 강조
어릴때 마을에 기근 들면 재산 털어 구제도

美 유학 이후 금융계 첫 발
적성 안맞는 전공 바꿔 대신증권 입사
'인생 멘토'들로부터 사업 감각·용인술 배워
전북은행장 취임 후 8년새 자산 6배 급증

서민금융 대표주자로 '앞장'
뿌리기업 성공 돕는 게 지역금융의 역할
수도권 진출 등 활동영역 넓혀 수익개선
"은행은 공공성 강해…리스크관리 최우선"



[ 김순신 기자 ]
김한 JB금융그룹 회장(사진)은 자신을 행운아라고 했다. 여유 있는 집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고, 남들과 비교하면 크게 우여곡절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했다. 김 회장은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기계공학과)를 거쳐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30대에 대형 증권사 임원에 오르는 등 경력도 화려하다.

지난 17일 전북 전주시 호림이네에 들어설 때도 ‘금수저’ 회장님에 대한 선입견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편견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소탈하게 양복 상의를 입지 않고 식당에 들어섰다. “더워서 그냥 와이셔츠만 걸치고 왔어요. 여기는 제집 다니듯 자주 와요. 편하게 식사도 하고 반주도 기울이고 합시다.”

김 회장은 자신이 이 식당을 2층 기와집의 번듯한 식당으로 키웠다고 했다. “2010년 전북은행장에 취임하고 여길 처음 왔어요. 원래 자리는 여기가 아니었어요. 산속에 재래식 화장실밖에 없는 그런 건물에 있었죠. 자주 오게 됐죠. 주인들이 대출을 해달라고 해서 망설이지 않고 해줬어요. 제가 주위 사람들에게 맛있다고 입소문도 많이 냈죠.”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상식에 맞게 살라는 가르침

김 회장은 검붉은 색의 하수오 술을 권하며 집안 이야기를 풀어갔다. 하수오 술을 마시면 머리가 검어진다는데 장복해 보니 거짓말 같다는 김 회장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운이 좋았죠. 전라도를 대표하는 만석꾼집 자손으로 태어났으니까요. 전남에서 서울로 가려면 고창 등에 있던 울산 김씨 땅을 밟지 않으면 못 간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검소한 집안이었어요. 집에서 할머니와 어머니는 늘 해진 옷을 꿰매고 계셨고요. 식사 때 찬도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기근이 들면 창고를 열어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했던 장면이 선합니다. 그런 면에서 집안에 자부심을 느끼죠.”

그는 잔이 비면 금방 따라줬다. 닭다리도 손으로 뜯어 권했다. “울산 김씨들이 술을 좋아해요. 아버지도 약주를 즐겨하셨죠. 저도 그 핏줄인데 어련하겠습니까. 중·고등학교 때도 몰래 마셨죠.”

아버지가 김 회장에게 물려준 것은 주량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집에 오시면 책을 계속 읽으셨어요. 온화하셨고요. ‘으이그’ 할 때가 최고로 화가 나신 상태였죠. 아버지는 상식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김 회장은 경기고 졸업을 앞두고 사회학과 진학을 꿈꿨다. 유고슬라비아 초대 대통령 요시프 티토의 정책을 뜻하는 티토이즘에 빠져 당시 유행하던 종속이론을 배워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버지께서 사회학과도 좋지만 어릴 때 아니면 이과를 해볼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기계공학과로 진로를 틀었죠.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몇 시간 공을 들여 그린 도면이 잘못 그린 줄 하나 때문에 찢길 때면 괜히 들어왔나 싶었습니다. 대학시절 야학에 심취했습니다. 아침이슬을 부른 가수 김민기(서울대 회화학과)와 함께 신정동에서 야학을 했어요. 지주 출신이라는 게 싫어 검정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공부만 가르치자는 제 생각과 이념교육을 해야 한다는 지도부의 생각이 달라 다투다가 관뒀지요.”

격려와 칭찬의 리더십

김 회장이 미국 얘기를 꺼낼 때쯤 다슬기 밥이 들어왔다. 고슬고슬한 밥을 비비면서 김 회장은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고 주인이 내놓은 것 같다. 7~8년 다녔지만 백숙에 다슬기 밥이 나온 적은 처음”이라며 밥 한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제너럴모터스(GM)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 예일대에 갔습니다. 경영학을 공부하기로 했어요. 7년 연애한 아내와 결혼을 했는데 호구지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제가 엄청 쫓아다녀 결혼을 한 아내를 고생시킬 수 없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엔 GM과 동부그룹 미국 지사에서 일했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계기는 1988년 열린 서울올림픽 덕분이죠. 올림픽 뒤 한국에서 국제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한국 증권회사들이 외국에서 근무한 인재 선점에 나섰어요. 1989년 대신증권과 연을 맺으면서 금융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김 회장은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주와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을 멘토로 꼽았다. “양 창업주는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성과 배포를 가르쳐주신 분입니다. 그분 덕분에 30대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됐지요. 사업은 손 크게 한다는 원칙과 배포를 배웠어요. 양 창업주가 전산교체를 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는데 담당이던 제가 200억원짜리 시스템을 샀어요. 지금 가치로 따지면 5000억원도 넘을 겁니다. 평소에 밥을 먹는 건 1만원 가지고도 뭐라 하던 분이 무엇을 사는지 왜 사는지 한마디도 묻지 않으시더군요. 양 창업주는 회사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믿었습니다.”

김 회장이 전북은행장으로 취임한 2010년 7조2500억원이던 JB금융지주의 자산은 지난 6월 47조6700억원으로 6배 넘게 늘어났다. 자산이 불어난 비결로 김 회장은 칭찬을 꼽는다. 격려와 칭찬이 조직의 사기를 북돋운다고 확신한다. “은행은 정해진 패턴과 순서에 따라 일하는 조직이고 직원들이 잘 훈련돼 있어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 변화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요. 최고경영자(CEO)가 큰 그림을 생각하면 현실로 만드는 건 직원입니다. 기회와 믿음을 주고 기다려야 해요.”

이런 리더로서의 덕목과 용인술은 동부그룹에서 같이 근무했던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에게서 배웠다. “황 전 회장은 당시 부하들에게 권한을 주며 간섭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가 대부분 좋았어요. 자신이 업무를 더 많이 아는데도 각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열정 있는 인재가 회사 성장 이끌어

술잔이 오가며 얼굴이 붉어질 때 밤꿀을 곁들인 산더덕주스가 후식으로 나왔다. 주스를 들이켠 뒤 김 회장은 경영철학을 풀어냈다. “집안 사람 가운데 우리 세대에 고향으로 내려 온 사람은 제가 유일합니다. 전북은행장으로 올 때 회사를 키우지 못하면 집안 전체가 고향에서 오명을 쓴다는 각오로 절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데 보탬이 된다면 여한이 없을 겁니다. 은행은 KB금융 사외이사를 하면서 처음 경험했습니다. 은행은 공공성이 강해요. 증권회사가 수익 추구를 앞세운다면 은행은 리스크관리가 우선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행장이 되고 나서 지역 인구조사부터 했습니다. 그 결과를 가지고 직원들과 토론을 계속했어요. 인구가 줄고, 경기가 침체일로를 겪고 있는 지역에 머무를 것인가 외부로 적극적으로 진출할 것인가를 정해야 했습니다.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 진출해 지역을 발전시키자는 데 중지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열정이 있는 직원들 덕분에 빠르게 성장한 것 같습니다. 머리가 좋거나 학벌이 좋은 게 아니라 열정이 인재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입니다.”

김 회장은 청년들이 좀 더 긴 호흡을 갖고 진짜 원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좋겠다는 충고를 남겼다. “취업난이 심해 여유가 당연히 없겠지만,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시대가 바뀌고 있어요. 특정 직업이 인생을 보장해주는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삼성전자의 평균 근속 연수는 10.2년 정도입니다. 앞으로 직업이 4~5번 바뀌는 시대에는 스펙 쌓기보다는 자신을 먼저 정확하게 파악하는 작업에 힘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광주·전북銀 품은 호남권 대표 금융그룹

1969년 설립된 전북은행을 모태로 2013년 출범한 서남권 최초의 금융그룹이다. 지주 출범 이후 더커자산운용(현 JB자산운용), 광주은행, 캄보디아 프놈펜상업은행(PPCB)을 잇따라 인수했다. 전북은행, 광주은행, JB우리캐피탈, JB자산운용, PPCB 등 5개의 자회사를 둔 총자산 47조6700억원(6월 말 기준)의 중견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JB금융지주는 핀테크(금융기술)에 특화된 지주사다. 2015년 금융계 최초로 핀테크 경진대회인 ‘飛上(비상)’을 개최했고,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JB금융지주의 전산 시스템을 도입했다. JB금융지주는 전북은행, 광주은행 투 뱅크 체제를 가동해 자회사 간 연계 영업과 공동 상품 개발, 서민·중견기업 특화 상품 출시 등 그룹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1954년 서울 출생
△1972년 경기고 졸업
△1977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1982년 미국 예일대 경영학 석사
△1984년 동부그룹 미국법인 사장
△1993년 대신증권 국제본부장(이사)
△1997년 와이즈디베이스 대표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 기업구조조정 위원
△2004년 메리츠증권 부회장
△2008년 KB금융지주 사외이사
△2010~2014년 전북은행장
△2014~2017년 광주은행장
△2013년~ JB금융지주 회장


■김한 회장 단골집 전주 호림이네

직접 채취한 산나물·약재로 요리… 담백한 백숙 일품

전주 시내에서 남원으로 향하는 춘향로에 접어들어 자동차로 5분가량 가면 나타난다. ‘다슬기 돌솥밥’과 ‘약재백숙’ 전문점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심마니 이호림 씨(53)가 전북지역을 돌며 직접 채취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내놓는다. 송하진 전북지사, 김승수 전주시장 등 지역 명사들이 단골로 찾는다.

호림이네는 자연산 재료로 조리한 음식을 내놓는다. 다슬기는 섬진강, 순창 쌍치 등에서 직접 잡아다 쓴다. 해감한 다슬기를 삶아 속살을 빼낸 뒤 돌솥에 한 움큼 집어넣고 쌀, 옥수수, 당근과 함께 은근한 불로 35분 정도 밥을 짓는다.

식사에 밑반찬으로 내놓는 10여 가지 산나물은 물론 백숙에 들어가는 장뇌삼, 하수오 등 약재들은 주인 이씨가 산에 올라가 채취한다. 자연산 재료로 맛을 내는 것은 국가공인 다슬기 명장인 부인 김영순 씨 몫이다.

식당에 들어가면 산삼, 하수오 등 약재로 빚은 약주들이 선반은 물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가득하다. 음식에 들어가는 장류는 주인이 직접 담근다. 점심 시간엔 다슬기 돌솥밥 정식(1만5000원)이 인기고, 저녁 회식이나 가족 단위 손님들은 약재백숙(8만원)을 주로 찾는다.

전주=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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