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무말 대잔치' 돼가는 혁신성장

입력 2018-09-03 19:23  

"당내 반대파도 설득 못하는 개혁
특정 산업의 작은 규제 풀기보다
경제 짓누르는 反시장 정책 손봐야"

이병태 < KAIST 교수·경영학 >



문재인 대통령이 혁신성장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여 혁신성장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대통령 규제개혁 1호 격인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가 여당 내 강경파의 반대로 일단 무산돼서다. 이런 자중지란의 결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데이터산업 활성화를 위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등 규제 개혁안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현 여당이 야당 시절 무산시킨 서비스산업발전법, 규제프리존법 같은 혁신성장 법안의 도입과 개정까지 국회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준비 안 된 확언이 무산되는 일들이 반복되면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실은 물론이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대통령으로 희화화되는 촌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 여당 내 반대파를 청와대로 불러 설득한 후에 규제 개혁안을 발표해도 늦지 않다.

문 대통령이 내놓는 개혁안은 여간해서는 추동력을 갖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그동안 발표된 거의 모든 규제 개혁안은 이전 정부에서 지금의 여권이 반대했던 사안들이란 점에서다. 야당 시절 반대한 것에 대한 한마디 설명 없이 그 반대했던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니 여당 내에서도 설득이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도 집권 후 확 달라진 정책적 접근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왜 과거 정부가 이런 개혁에 번번이 실패했는지에 대해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에 있다. 문 대통령은 데이터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를 꼽으며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공한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거론했다. 그런데 그런 산업을 키우겠다면서 공유차량이나 공유숙박업소의 허용을 약속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경쟁 환경을 초래하는 혁신의 도입이 어려운 것은 기존 이해 집단의 반발과 포퓰리즘에 빠진 정치권이 결탁해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창조적 파괴의 혁신들을 봉쇄해온 지대추구 체제가 공고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돌파하려면 공무원도, 국회의원도 아닌,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외에는 대안이 없다. 역대 정부는 이런 규제개혁을 이해집단 간 타협 아니면 공무원 집단에 위임해 왔기 때문에 언제나 목소리 큰 이해집단이 승리해 왔다.

성공적인 규제 개혁은 장기적이고 치밀한 준비와 단합된 정부를 전제로 한다. 문 대통령은 내부의 개혁 반대파를 제압할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가. 같은 당의 의원도 설득하지 못하는 태도로는 깨뜨릴 수 있는 규제 카르텔이 아니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도 이미 하락세를 타고 있다. 머지않아 총선이 다가오는 점도 시간이 별로 없음을 말해 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정부가 주장하는 상품시장의 규제 개혁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국가 경제를 되살리는 수단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상품시장의 규제 개혁은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 시장의 진입장벽을 허문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돈이 벌릴 가능성이 낮으면 투자하지 않는다. 소위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임금의 급격한 상승을 불러오는 노동시장의 규제 강화이며, 공정경제 정책은 시장이 ‘갑’들에 의해 왜곡되고 착취되는 구조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다 보니 무차별한 관치의 확대와 경영권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투자의 위험은 반(反)시장 정책들에 의해 크게 증가하고 있어서 상품시장의 규제 개혁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다.

노동시장 규제와 기업의 지배구조 위협, 그리고 증세정책이 모든 산업에 영향을 주는 ‘대들보 규제’라면 일부 산업에만 영향을 미치는 상품시장 규제 개혁은 그야말로 ‘티끌’ 수준이다. 경제 전반을 짓누르는 대들보 규제를 놔두면서 작은 규제 한두 개 제거한다고 경제가 반등할 수 없다. 기업인과 투자자들이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는 경제를 이루지 않으면 문 대통령이 설파하는 규제 개혁은 공무원들 서류상의 개혁으로 머물 것이다. 상충하는 반시장 정책들로 인해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줄 모르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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