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거창한 비전·넘치는 시간…스타트업엔 毒이다

입력 2018-10-04 17:29   수정 2018-11-03 00:30

코끼리를 날게 하라

스티븐 호프먼 지음 / 이진원 옮김
마일스톤 / 416쪽│1만8000원

실리콘밸리의 창업기업 다수
큰 목표 감당 못해 무너져
아이디어는 작은 실험의 산물

조직 몰입 높이는 건 적은 시간
혁신팀엔 긴박감 조성 필요
"허황돼" 같은 비판은 발전 막아



[ 윤정현 기자 ]
2004년 미식축구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에서 가수 재닛 잭슨의 가슴 노출 사고가 발생했다. 자베드 카림은 소위 그 ‘의상 불량’ 장면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지만 찾지 못해 짜증이 났다. 비슷한 시기 채드 헐리와 스티브 첸은 이메일 첨부파일 용량 제한 때문에 저녁식사 파티 동영상을 공유할 수 없다는 점에 좌절했다. 세 사람은 유튜브 공동 창업자다. 유튜브의 시작은 튠인훅업이라는 동영상 데이트 사이트였다. 동영상 프로필을 올리고 성별과 나이를 선택하면 데이트 상대를 골라줬다. 하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더 간단한 방법에 있었다. 공유 메커니즘을 바꾸자 상황은 달라졌다. 몇 편의 동영상이 단시간 내 퍼졌고 트래픽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유튜브는 단숨에 동영상 콘텐츠들의 목적지이자 집결지로 떠올랐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비법을 담은 신간 《코끼리를 날게 하라》에서는 ‘작게 생각하라’의 사례로 유튜브를 들었다. 창업자들이 겪은 작은 불편이 발견의 씨앗이 됐다. 이들이 ‘세계 최대 온라인 방송 네트워크’를 목표로 방송 네트워크 구축에 몰두했다면 오늘날의 유튜브는 있었을까. 인터넷에 TV 스타일의 프로그래밍을 접목하려다 실패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도 있었다. 큰 비전만 좇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는 것은 많은 스타트업이 저지르는 실수다. ‘싱크 빅’이 아니라 ‘싱크 스몰’을 강조한 것이다.

저자인 스티븐 호프먼은 실리콘밸리의 유명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 회사)인 파운더스스페이스 최고경영자(CEO)다. 창업가이자 벤처투자자, 모바일 스튜디오 사장이자 컴퓨터 엔지니어인 그는 업계에서 손꼽히는 혁신가이기도 하다. 저자는 “위대한 아이디어는 큰 비전이 아니라 작은 실험과 우연한 발견의 산물”이라며 “작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과 구조를 창조해야 한다”고 서술했다.

작게 생각하는 것뿐 아니라 팀을 작게 꾸리고 소규모 예산을 짜며 작은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도 ‘성공하는 기업가의 역발상’에 포함된다. ‘적은 시간이 몰입도를 높인다’ 장에는 한국 사례가 등장한다. 책은 ‘불철주야 일만 하는 직원을 회사에 충성하고 헌신하는 직원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국을 소개한다. 어떤 나라보다 열심히 오래 일함에도 생산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 아닌 이유를 저자는 “같은 일을 더 오랫동안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밤 10시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한다면 굳이 오후 5시에 일을 끝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와 터무니없는 마감시간을 준 다음 몰아붙인 스티브 잡스를 언급하며 “혁신팀에는 긴박감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긴박감이 위축을 불러와서는 안 된다. ‘지금 농담하나’ ‘예산이 없다’ ‘허황된 생각이다’ ‘우리 책임이 아니다’ ‘이윤을 내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등 무심결에 뱉은 말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이처럼 ‘혁신팀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발전을 질식시킬 수 있는 표현’에는 회사 전체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책은 혁신팀을 구성하는 방법은 무엇이고 어떻게 혁신을 실천하는지, 어떤 혁신 방법이 지속적인 효과를 내는지, 똑똑한 기업이 혁신에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스타트업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자본을 조달하고, 기업을 키우는 과정을 저자가 함께 경험했기에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화려한 수식 없이 담백한 문장과 군더더기 없는 ‘경제적인 필체’도 몰입도를 높여준다.

‘스타트업의 세계 공장’인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신을 다룬 책이지만 스타트업뿐 아니라 가족 기업, 다국적 기업 등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기업들이 참고할 방법을 제시한다. ‘설득하지 말고 관찰하라’ ‘생태계 구축을 넘어 개발하라’ ‘승자는 돈보다 가치를 중시한다’ ‘실패가 아니라 두려움이 혁신을 망친다’ 등 통찰력이 담긴 목록의 문구들 자체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저자는 혁신을 ‘코끼리를 날게 하려는 시도’에 비유한다. 그만큼 어렵고 버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삶, 기업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기에 저자는 말한다. “혁신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다. 비즈니스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료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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