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은 한국만 있다

입력 2018-10-12 17:48  

최종석의 뉴스 view

美·日 "형사처벌 실효성 떨어져"
임금 소급 등 경제 제재로 해결

최종석 노동전문위원



[ 최종석 기자 ] “정부는 그간 부당노동행위 수사관행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라.” “노동 규제의 방향성을 전면 재검토하고, 기업에 대한 강제수사를 철저히 하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지난 8월 초 고용노동부에 권고한 내용이다. 언뜻 보면 노동단체가 내놓은 성명서다. 개혁위원회는 현대·기아자동차, 이마트같이 개별 기업도 거론한다. 재판 계류 중인데도 정부가 직접 개입해 노사문제를 해결하라는 주문이다.

노동계는 그간 정부가 파업 등 노조의 집단행동에 업무방해죄를 과도하게 적용했다고 주장한다. 사용자들이 노조 설립·운영을 방해하는 부당노동행위는 봐주기로 일관하거나 솜방망이만 휘둘렀다고 비판한다. 기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라는 목소리다.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였다. 고용부, 검찰 등 법 집행기관들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 방침을 내세웠다. 지난해 MBC 경영진의 사법처리와 올해 삼성 경영진 30여 명 무더기 기소가 그 사례다.

부당노동행위(Unfair Labor Practices)는 미국 노동법에서 비롯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도입됐다. 법률에 명문 규정을 둔 나라는 미국, 일본, 한국뿐이다.

부당노동행위는 집단적 노사 관계에서 사용자 및 노조가 힘을 배경으로 상대방 또는 다른 근로자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법으로 명문화됐다. 사용자의 노조 설립 방해가 대표적이다. 특정 노동조합에 혜택을 줘 다른 노조에 불이익을 주거나 노조원을 매수하는 것은 금지된다.

이 제도의 원조인 미국은 사용자는 물론 노조에 의한 부당노동행위도 금지한다. 노조가 집단적 위력을 동원해 사용자에게 부당한 행위를 강요하거나 파업 참가를 거부하는 근로자를 제재하는 것도 금지된다. 한국도 대기업 노조의 이기적 행태에 대한 문제 제기와 더불어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도 처벌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다.

부당노동행위로 인한 피해 구제는 원상회복이 원칙이다. 미국, 일본 모두 노동위원회가 임금의 소급지급 등 구제명령을 내리는 방식이다. 형사 처벌은 한국만 있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노사문제에 대한 형사벌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노사 자치주의에 어긋나며 실효성도 낮기 때문이다. 현실을 따져보면 금방 이해된다. 사업주가 징역형을 받고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기업은 분쟁 이전으로 노사 관계가 돌아가기란 불가능하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벌 폐지 의견은 노무현 정부 시절 나왔다. 당시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정책보고서 내용이다.

노조의 불법파업 시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하는 대신 손해배상 등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 인권 측면에서도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당노동행위로 기업인을 형사처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 입장에서 노동권 보장과 법질서 확립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노사 자치주의를 확립하고, 이를 통한 노사협력과 생산성 향상이 더 중요한 국가의 책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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