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의 데스크 시각] '과거 프레임'에 갇힌 청와대

입력 2018-11-25 17:53  

이심기 정치부장


[ 이심기 기자 ] 청와대와 친정부 인사들에게는 그들만의 대화법이 있다. 직급이 높든 낮든, 사석이든 공적인 자리든 비슷한 화법을 쓴다. 맡고 있는 분야와 상관없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천편일률적이다. 바로 ‘과거 프레임’ 반문(反問)법이다.

정책·경제수석실에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라고 얘기하면 “과거의 저임금, 착취 구조로 돌아가자는 얘긴가요?”라고 반문한다. 또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에 기업이 힘들어 한다”고 하면 “과거의 장시간 근로와 비효율로 돌아가자는 건가요?”라고 되묻는다.

정무·민정수석실 관계자를 만나 “임기 3년차에도 적폐청산에 매달릴 건가요?”라고 말하면 “과거의 불합리한 관행과 권위주의로 복귀하자는 뜻인가요?”라고 받아친다. 안보실도 예외는 아니다. 남북한 관계 개선의 ‘과속’을 우려하면 “과거의 군사 대치와 냉전 체제로 돌아가자는 말입니까?”라고 한다.

피아(彼我)를 가르는 반어법

정부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관료를 만나 “지배구조는 기업 스스로 선택하도록 두는 게 맞지 않나요?”라고 하면 “과거 재벌들의 황제경영 시대를 옹호하는 겁니까?”라고 받아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법인세율이 다른 국가에 비해 높다”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대기업의 낙수효과에 기댄 과거가 옳았다는 건가요?”라고 되묻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달 초 국회에서 한 시정연설의 핵심 문장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였다. 이런 식의 반어법은 상대를 움츠리게 한다.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잣대로도 활용된다. 상대를 반(反)‘촛불 세력’으로 낙인 찍듯이 몰아간다.

정치적 반대자들을 다루는 방식으로는 효과적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스스로도 고립을 초래한다. 현실과 정책 목표를 구분하는 대화를 차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과 현 정부의 태도 및 능력을 구분해서 생각한다. 소득주도성장이 대표적이다. 김현철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경제지표들은 그 길이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가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를 반어적 프레임으로 힐난할 때마다 그 위험은 역설적으로 더욱 증폭된다.

과거 청산이 정권 성공 보장 못해

이런 불안감은 여권에서도 감지된다.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지금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가 이재명 경기지사 거취 문제나 판사 탄핵이 돼 버린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과거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시급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일자리와 민생, 즉 경제라고 했다. 민주당의 한 3선 의원은 “국정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위기감이 없다. 누구도 쓴소리를 입 밖에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문 대통령 앞에서 “우리는 뛰고 있지만 선진국과 글로벌 기업들은 날고 있다”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속도에서 밀리면 결국 과거로 밀려난다는 경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새 시대의 맏이가 되고 싶어 했지만 구시대의 막내로 설거지를 해야 했다”고 돌아봤다. 노 전 대통령이 과거의 잔재를 치우는 데 임기 5년을 소진했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지금 정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을까.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정부 비판을 수구로 몰아붙인다고 지금 정부의 성공이 보장됩니까.”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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