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장화진 대표, 하드웨어서 소프트웨어 전문가 변신…非IBM 출신으로 첫 한국 총괄 맡아

입력 2018-12-14 17:57  

장화진 한국 IBM 대표
"新기술 나올 때마다 남보다 먼저 배워…호기심 발동 걸리면 못 참아요"

외교관 부친 따라 세계 누벼
7세부터 美·동남아 돌며 해외생활…말 배우고 친구 사귀느라 고생했지만
새로운 곳에 대한 '희열' 느껴져…대학 땐 경비행기 조종 자격증도 취득

한국IBM 첫 '외부수혈' 인사…20년 넘게 국내외 IT기업 몸담아
낯선 한국 와선 직원들과 벽 없애려 1년간 1200명과 점심 먹으며 소통

한국 AI·클라우드 산업은…한국 규제 많고 풀리는 속도 늦어
경쟁 안 생기는데 성장할 수 있나…외국계나 국내기업이나 답답한 마음



[ 배태웅 기자 ]
장화진 한국IBM 대표(51)는 뼛속부터 ‘엔지니어’다. 최신 기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눈빛이 반짝였다. 매일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나오는데 어떻게 흥미를 잃을 수 있느냐고 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한국IBM 대표로 부임했다. 역대 한국IBM 대표 중 최초로 IBM 출신이 아닌 인물이 수장이 됐다. 20년 넘게 미국 홍콩 중동 등을 오가며 정보기술(IT)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결과다. 모두 호기심 덕분으로 돌렸다. “일하는 게 즐겁다”고 말할 정도니.

영하 7도로 기온이 뚝 떨어진 14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대방골에서 장 대표를 만났다. 보리굴비가 주특기인 남도음식 전문점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정갈한 맛으로 식객들을 사로잡는 곳이다.

외교관 아버지 따라 세계 돌아다녀

보리굴비는 여름철 음식으로 통한다. 대개 밥을 차가운 녹찻물에 말아 짭조름한 보리굴비 한 점을 얹어 먹는다. 추운 날 굳이 보리굴비집을 택한 장 대표의 설명이다. 아랫목처럼 정겹고 따뜻한.

“저는 서울 출신이지만 부모님이 모두 호남 출신이에요. 어릴 적부터 호남음식을 자주 먹었죠. 어머니가 차려주셨던 보리굴비가 참 좋았습니다. 해외 생활하면서 한식이 그리워질 때면 어린 시절의 보리굴비 맛이 혀끝에서 되살아났어요.”

장 대표는 1967년 서울에서 1남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7세 때부터 이곳저곳 외국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밟은 낯선 땅은 미국 시카고였다. 3년 뒤엔 지구 반대편 말레이시아로 갔다. 중학생이 돼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또래 아이들보다 우리말 구사가 서툴렀다. 성적도 떨어지고 선생님에게 혼나기까지 했다.

겨우 우리말이 입에 붙었던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이번엔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스트레스를 받을 법도 했지만 나라와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오히려 신이 났다고 했다.

“매번 그 나라 말을 새로 배우고, 새 친구를 사귀느라 고생했습니다. 어느 시점 이후부턴 옮겨다니는 게 기다려졌어요. 마라톤 42.195㎞를 달리다 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희열(runner’s high)’이 느껴진다는 그 변곡점 말이에요. 여동생은 전학 다니는 데 질려서 한국에 눌러앉아버렸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가시는 곳마다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손을 들었고요.”

엔지니어 인생 원동력은 ‘호기심’

드디어 보리굴비가 나왔다. 쌀뜨물에 네 시간 담갔다가 건져낸 굴비를 솔잎 레몬 생강 무 다시마 등을 넣고 쪄낸 뒤 살만 발라냈다. 장 대표는 게 눈 감추듯 두세 술 뜨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는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항공우주·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기계를 직접 만지고 연구하는 게 좋아 선택한 공부였다. 이론에만 열중하다가 호기심이 발동했다. ‘실전’이 궁금했다. 자격증을 따서 항공기를 직접 조종해보고 싶었다.

“부모님을 설득하기로 했죠. 학부 전공과목을 공부하려면 필요하다는 명분이 통했습니다.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따서는 틈만 나면 친구들을 태우고 뉴저지주 하늘을 비행했어요. 후에 알았는데 같은 학부에서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 학생은 저 말고 딱 한 명뿐이었습니다.”

장 대표는 1998년 미국 반도체장비 회사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2001년엔 생산관리 소프트웨어 회사인 애자일소프트웨어로 직장을 옮겼다. 하드웨어만 파던 엔지니어가 생소한 소프트웨어 분야로 발을 돌렸다.

그곳에서 컨설팅업무로 출발했다. 나중엔 기술을 배워 소프트웨어 개발팀을 이끌었다. 그가 주도해 개발한 제품수명관리(PLM) 소프트웨어는 지금도 애플에서 쓰이고 있다. 능력을 인정받아 애자일소프트웨어의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 홍콩에서 머물기도 했다.

오랜 타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온 건 2007년. 삼성SDS에 합류하면서다. 한번도 일해보지 않았던 고향 ‘한국’이다. 한국의 기업문화는 낯설었다. 소통이 문제였다. 임원급인 그와 직원들 사이에는 수많은 벽이 느껴졌다.

‘한국식’으로 그 벽을 깨뜨리는 데 성공했다. 직접 사원들을 찾아가거나 약속을 잡아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 소통’은 한국IBM에서도 주효했다. 부임한 후 1년 새 전 직원 1600명 중 4분의 3과 점심 자리를 같이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으로 직원들과 댓글도 주고받는다.

지난달엔 미국 IBM 본사에서 양자컴퓨팅 기술교육을 받고 왔다고 했다. 양자컴퓨팅이란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해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연산하는 첨단기술이다. 주요국이 차세대 기술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본래 IBM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이었으나 그는 자진해서 수강신청했다.

“IBM에서는 1년에 40시간의 온라인 교육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합니다. 저는 듣고 싶은 게 많아 보통 60시간을 들어요. 양자컴퓨팅 교육만큼은 본사 연구센터에서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회를 놓치기 싫어 바로 비행기표를 예약해 본사로 날아갔어요. 참석자 대부분이 개발자나 물리학 전공자였죠. 해외 지사장급은 저 혼자였습니다.”


“IBM은 공룡 아닙니다”

장 대표는 보리굴비와 함께 나온 미역국으로 잠시 목을 축였다. 양자컴퓨팅 얘기는 관련 사업 얘기로 꼬리를 물었다.

양자컴퓨팅은 IBM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공유 방식으로 하고 있다. IBM이 개발한 양자컴퓨터의 초고속 연산능력을 기업 고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에 올려놓고 서비스한다. 독일의 자동차업체 다임러AG가 재료공학 분야에서, 글로벌 금융업체 JP모간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설계할 때 이 서비스를 활용한다. 삼성전자도 반도체를 설계할 때 양자컴퓨팅을 시범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블록체인도 IBM이 중점적으로 키우는 분야다. IBM이 주도한 블록체인 플랫폼 ‘하이퍼레저’는 기업용 블록체인 서비스에 주로 쓰이고 있다. 글로벌 해운업체인 머스크, 월마트 등이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금융업체들과 협력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눈에 띄는 성과물이 없다고 말합니다. 아니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블록체인 기술이 녹아들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소비자는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고 택배를 받지만 보이지 않는 물류·결제 시스템이 블록체인으로 바뀌고 있죠. 한국에서는 블록체인 개발자가 부족해 일손이 모자랍니다.”

최근 IBM의 한국 실적은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기존 데이터센터사업 분야가 쇠퇴하면서 시장을 클라우드 업체들에 내준 게 뼈아팠다. 장 대표는 클라우드 분야에서는 한 발 뒤처졌지만 양자컴퓨팅,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신사업이 기존 사업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클라우드 분야는 본사가 서버용 소프트웨어업체 레드햇을 인수한 것을 계기로 절치부심하고 있다고 했다.

“다들 IBM이 공룡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5년간 38만 명에 달하는 직원 중 절반의 직무가 바뀌었습니다. AI, 클라우드 등 신사업 동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말이죠.”

식사가 끝나갈 무렵 장 대표는 한국의 AI, 클라우드산업에 대해서도 솔직한 의견을 내놨다. 여전히 규제가 많고, 규제가 풀리는 속도도 늦다고 지적했다. 규제에 막혀 개발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데 신산업이 어떻게 제대로 성장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였다.

“규제가 심하다는 다른 국가 금융권에서도 글로벌 업체들은 하나둘씩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어요. 한국에선 하고 싶어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장 대표는 “새해엔 정부도 달라지길 빌어야죠”라며 말을 맺었다.

■한국IBM은…

한국IBM은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 IBM의 한국 내 자회사다. 1967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이 인구조사용 컴퓨터 ‘IBM1401’을 도입하면서 한국IBM도 함께 설립됐다. 1974년 대한항공에 국내 최초의 국제항공 예약 시스템을, 1977년 국민은행(현재 KB국민은행)에 국내 최초의 온라인 뱅킹 시스템을 구축했다. 현재 주력 사업은 인공지능(AI) 플랫폼 ‘왓슨’, 블록체인 플랫폼 ‘하이퍼레저’, 클라우드 서비스, 데이터센터 운영·관리 등이다. 2016년 가천대 길병원에 왓슨을 도입한 뒤 AI 분야 사업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약력

△1967년 서울 출생
△1990년 미국 프린스턴대
항공우주·기계공학 학사
△1991년 스탠퍼드대 기계공학 석사
△1991~1998년 스탠퍼드대
고온가스 역학 실험실 엔지니어
△1998~2001년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글로벌 제품 관리 책임자
△2001~2007년 애자일소프트웨어
북미·유럽 컨설팅 책임
아시아태평양 총괄 부사장
△2007~2017년
삼성SDS 글로벌사업본부장
유럽·중동·아프리카·인도 총괄 전무
분석IoT사업팀장 등
△2017년 1월~ 한국IBM 대표이사


■장화진 대표의 단골집 대방골

녹찻물에 밥 말아 보리굴비 한점 '별미'

서울 여의도 서강대교남단 사거리 인근에 있는 대방골은 남도음식 전문점이다. 전남 영광에서 공수해온 보리굴비가 유명하다. 보리굴비는 손님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1년3개월이 걸린다. 조기를 잡아 냉동 보관했다가 해풍에 말리고 다시 냉동 보관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보리굴비는 이름처럼 보리 빛을 띤다. 거센 바람에 조기의 내장이 터지면서 색이 변한다. 잘 말려진 보리굴비를 쌀뜨물에 네 시간 담갔다가 건져내 솔잎 레몬 생강 무 다시마 등을 넣고 세 시간을 쪄낸다. 이후 살만 발라내 상에 올린다. 녹찻물에 만 밥과 함께 먹으면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대방골은 29년 전 서울 대방동에서 문을 연 뒤 2008년 지금 위치로 옮겨왔다. 여야 국회의원은 물론 여의도 증권맨도 많이 찾는다. 보리굴비 외에 매생이 낙지 전복 홍어 등을 재료로 한 다양한 음식을 선보인다. 가장 잘나가는 음식인 보리굴비 정식과 매생이 보리굴비 정식의 가격은 각각 3만8000원과 4만5000원이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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