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하락·경제지표 악화에…문재인 대통령 "산업계 애로 들었는지 반성해야"

입력 2018-12-18 17:46  

대통령이 달라졌다

경제부처 업무보고서 확 달라진 문재인 대통령, 왜?

장하성 실장 물러난 후 문재인 대통령 현실인식 부쩍 유연해져
탄력근로 확대·원격 진료 허용이 정책 변화 '바로미터'
'촛불 청구서' 내미는 노동계 등 압력에 변화 '미풍' 될 수도



[ 박재원 기자 ]
정부세종청사에서 18일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에는 역대 정부 통틀어 처음으로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정책 대상자의 의견을 듣자는 취지에서 부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가 산업계의 애로사항을 제대로 들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이 자리에 기업 관계자들이 함께한 것은 그런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 보고에서 사라진 ‘탈원전’

문 대통령은 이날 탈원전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제조업 부활을 수차례 강조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업체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전기차, 수소차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한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다”며 “믿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제 활력을 되찾기 위한 제조업 재도약에 대통령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CEO는 “그동안 ‘낙수효과는 없다’며 분배에 방점을 찍은 집권 초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라며 “특히 문 대통령이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겠다’고 언급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진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 업무 보고의 키워드도 ‘미래와 혁신’이었다. 농식품부 업무보고에선 “농정을 혁신하지 못해 미래 산업으로 키우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농업 혁신을 통한 미래 먹거리 창출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환경부에서는 “환경을 규제 대상으로 보는 과거의 관점을 뛰어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성장동력이라는 적극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의 ‘언어’가 달라진 것은 이날만이 아니다. 지난 17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투자’라는 단어를 여덟 번 언급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1차 경제장관회의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단어다. 작년 회의에서 세 차례 등장한 소득주도성장이란 표현은 올해 단 한 차례에 그쳤다. 취임 초기 “경제성장률 3%대를 회복하고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게 됐다”는 식의 ‘핑크빛 전망’도 사라졌다. 대신 “적어도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고,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드릴 수 있어야 한다” 등의 다짐이 자리잡았다.


靑 참모 바뀌니 유연해졌나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변화에는 집권 3년차를 앞두고 ‘이제는 경제, 특히 민생 문제 해결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악화된 경제지표와 지지율 하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중순 이후부터 매주 쏟아지는 각종 여론조사기관의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50%를 밑돌고 있다. 취임 후 최저 수준이다. 여론조사기관들은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꼽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을 떠받치던 ‘남북한 이슈’가 주춤하면서 지지율이 반등할 여지가 줄었다는 점도 변화를 촉진했다는 분석이다.

‘경제 참모’가 바뀐 것 역시 변화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현 정부는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했다. 경제학자들이 핵심 경제 참모로 자리잡으면서 문 대통령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인식을 보여줬다. 이 중심에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있었다. 하지만 장 전 실장이 물러나면서 변화의 싹도 돋아났다. 문 대통령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윤종원 경제수석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책 슬로건 대신 ‘포용 국가’라는 순화된 정책 틀을 마련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윤 수석이 차담회에서 각종 경제지표는 물론 자동차와 조선업계 현황까지 매일같이 보고했다”며 “이런 보고가 문 대통령의 현실적인 경제 인식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책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는 김수현 정책실장이 2기 경제팀에서 청와대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것도 한몫하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자신의 신념에 갇혀 정책을 밀어붙이던 분위기가 바뀐 것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문 대통령의 언어가 달라졌다고 경제정책이 많이 달라질 것으로 속단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서다. 정부와 여당은 야당과 탄력근로 확대에 합의해 놓고도 노동계의 반발로 포기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이 지시한 규제혁신이 무산된 사례도 많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원격진료는 의료 민영화로 가지 않고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물론 더불어민주당 일부의 반발에 가로막혀 어떤 변화도 없다.

이를 지켜본 산업계의 반응은 여전히 ‘반신반의’다. 당장은 탄력근로 확대와 원격진료가 실제 시행될지 지켜봐야 경제정책이 달라진다는 점을 인정하겠다는 분위기다. 정부의 핵심 지지층인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뿌리칠 수 있을지를 가름할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의 최근 변화는 지지율 하락과 경제지표 악화 등에 따른 전략적 변화이지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기업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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