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 기소, 찻잔 속 태풍…'가상화폐 주변국' 전락한 한국

입력 2018-12-25 07:00   수정 2018-12-26 10:33

"한국 존재감 사라졌다"…코인 금지한 중국은 정작 '업계1위'



국내 주요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임원 3명이 지난 21일 기소됐다. 암호화폐 업계는 파장을 우려했다. 하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치는 모양새다.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암호화폐 주변국’으로 전락한 한국의 실정을 반증한 사건이 됐다.

업비트가 기소된 혐의는 규모가 꽤 크다. 검찰은 업비트가 지난해 약 254조원의 허수주문, 4조2000억원 상당의 가장매매를 했다고 적시했다. 회원들에게 비트코인을 팔아 1491억원을 챙겼다는 혐의도 추가했다. 이 정도면 자그마한 뉴스에도 출렁이는 암호화폐 시장에는 상당한 충격이 될 법했다.

현실은 달랐다. 기소 후 3일이 지난 24일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당시와 거의 동일한 462만원대를 기록 중이다. 외신들은 업비트에 대한 검찰 기소를 단신 보도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진위를 떠나 사건 자체가 별다른 이슈가 되지 않은 것이다.

◆ 암호화폐 영향력 잃어버린 한국 시장

시곗바늘을 돌려보자. 7~8개월 전 업비트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 소식만으로도 암호화폐 시세는 일제히 5~10% 급락했다. 거슬러 올라가 올 1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거래소 폐쇄 시사는 메가톤급 파급력을 가져왔다. 한국의 암호화폐 거래량이 글로벌 수위권이던 당시 박 장관의 발언으로 글로벌 시가총액 100조원 가량 증발했을 만큼 파장이 컸다.

이같은 ‘암호화폐 선도국’으로서의 입지가 1년 가까이 지나면서 완전히 사라졌단 해석이 가능하다. 정부의 암호화폐 관련 정책이 지지부진한 사이 뒤처졌다. 한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출렁이던 업계의 관심은 미국·중국·싱가포르 등으로 흩어졌다. 글로벌 시장이 더 이상 한국의 움직임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마저 해외로 빠져나가는 상황. 네이버, 카카오마저 싱가포르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블록체인·암호화폐 사업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고용과 세수 역시 유출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대로 가면 1년 안에 국내의 모든 블록체인 업체들이 사라질 것”이라 하소연했다.


◆ 중국 벤치마킹 대상? '내유외강' 행보

일각에선 암호화폐 공개(ICO)를 전면 금지한 ‘유이’한 주요국임을 들어 한국이 중국을 벤치마킹하거나 유사한 행보를 취하는 것 아니냐고 본다. 전문가들은 “엄연한 오해”라고 지적했다.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중국의 행보와 실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로벌 1위 암호화폐 거래소는 중국계인 바이낸스다. 2~5위도 중국계로 분류된다. 중국 정부가 자국 내에선 암호화폐 사업을 엄격히 통제하지만 자국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해 돈을 긁어모으는 것은 발목을 잡은 적 없다. 실제로 중국계 업체들은 싱가포르, 몰타 등으로 나가 각종 암호화폐 파생상품을 개발했다. 기술적으로도 중국은 블록체인 특허 최다 보유국이다.

미국 역시 블록체인 특허를 중국 다음으로 많이 갖고 있다. 증권거래위원회(SEC) 주도로 암호화폐 제도권화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다. 일본도 2년 전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암호화폐를 지급결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결과적으로 국내와 해외 모두에서 정책도 마련 않고 사업을 옥죄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국의 경우 암호화폐는커녕 정부가 진흥하겠다고 밝힌 블록체인 분야까지 은행의 법인계좌 발급마저 여의치 않다. 해외로 나가려 해도 국내법에 똑같이 발목 잡히는 ‘속인주의’ 원칙이 적용돼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몰타에서 가상 금융자산을 합법적으로 취급할 수 있는 ‘클래스4’ 자격을 취득한 체인파트너스의 표철민 대표는 “자격은 부여받았지만 한국 기업인 탓에 관련 사업을 시도하는 순간 불법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 1년여 허송세월한 정부, 내년도 암울

업비트 기소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정부다. 1년 넘게 손 놓고 있는 탓이다. 그 사이 자격미달 암호화폐 거래소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여전히 정부는 액션을 취할 생각이 없다.

업체들은 규제가 마련되지 않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있는 기준 자체가 없다고 호소했다. ‘눈치껏’ 정부의 눈에 나지 않도록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불확실성이 최대 리스크란 얘기다. 규제를 받아야 할 당사자 격인 암호화폐 거래소 대표들이 국회에 모여 “차라리 규제를 해달라”고 외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기획재정부가 펴낸 ‘2019 경제 정책 방향’ 관련 자료에는 미래산업 중 하나인 블록체인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청와대는 인사검증 과정에서 암호화폐 보유 여부 판별을 위해 민간인을 사찰한 의혹까지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비서실장 권한대행으로 믹 멀바니 하원의원(공화당)을 임명한 미국과는 대조적 상황이다. 멀바니 의원은 암호화폐 등 신기술 관련 법안 연구단체 ‘블록체인 코카서스’를 공동 설립한 비트코인 지지자로 알려졌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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