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의료文化' 바꿨다…의사들 권위 내려놓자 신뢰 더 커져"

입력 2018-12-26 17:41  

AI의료 국내 도입 2년

길병원, 왓슨 첫 도입 후 'AI붐'…국내 의료기관 11곳에서 사용
의사들 환자치료 '특급 도우미'…환자·의사 소통 '마중물' 역할도
치료 활용한 뒤 진료비 못받아…AI개발·사용에 한계 지적도



[ 이지현 기자 ]
“의료 인공지능(AI) 도입 이후 의사들이 권위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나이 많은 시니어 의사의 지시만 따르던 젊은 의사들이 AI에 기대어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게 됐다. 의료계 특유의 경직된 문화가 깨지자 환자들도 입을 열었다. 의사와 환자 간 신뢰를 높인 것이 AI 도입으로 인한 가장 큰 성과다.”

2016년 12월 국내 처음 의료 AI인 왓슨 포 온콜로지를 도입한 길병원 의료진은 지난 2년을 이렇게 평가했다. AI가 의사와 환자 간 원활한 소통을 트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길병원에서 AI를 도입한 뒤 보건의료계에 AI 붐이 일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갈길은 멀다. 전문가들은 “의료 현장에서 AI 활용을 늘릴 방법을 모색할 때”라고 지적했다.

환자-의사 관계 개선에 도움

의료 AI인 왓슨 헬스를 도입한 국내 의료기관은 11곳이다. 부산대병원, 건양대병원은 물론 공공병원인 보훈병원도 지난해 11월 왓슨 포 온콜로지를 도입했다. 한림대병원은 지난달 왓슨 포 지노믹스를 도입했다. 왓슨 포 온콜로지는 AI를 활용해 암 환자 치료 방향을 제시한다. 왓슨 포 지노믹스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는다. 길병원에서 2년간 이들 AI로 진료한 환자는 900여 명이다. 11개 병원에서 AI를 활용해 치료받은 암 환자는 1000명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AI는 국내에서 병원 문화를 바꿨다. 길병원은 AI와 함께 여러 의사가 한자리에 모여 암 환자를 진료하는 다학제 진료를 도입했다. AI 도입 전 10건에 불과했던 다학제 진료는 1만 건으로 늘었다. 환자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9.34점에 달한다. 믿음도 커졌다. 환자와 보호자 91%가 진료 후 의사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고 답했다. 백정흠 길병원 인공지능센터장은 “소화제만 먹어도 병이 낫는다는 말처럼 의사와 환자 간 믿음은 치료 효과에도 영향을 준다”며 “AI로 약물 부작용, 입원치료 가능 여부 등을 세세하게 확인하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환자가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을 고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가 지시하면 환자가 따르던 시대에서 의사와 환자가 치료법을 함께 상의하는 시대로 바뀌었다는 의미다. 이언 길병원 인공지능병원추진단장은 “의사소통이 민주화되면서 병원 내 권력이 환자 쪽으로 이동했다”며 “진정한 환자 중심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진료비 못 받아 활용에 한계

왓슨은 국내 의료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줬다. 정부는 AI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정하고 한국산 의료 AI 개발에 나섰다.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부처는 AI 개발의 기반이 되는 병원 내 빅데이터 구축에 나섰다. 서울아산병원이 주축이 돼 한국산 AI 개발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뷰노, 루닛, JLK인스펙션 등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은 올해 나란히 국산 AI 의료기기를 개발해 허가를 받았다. 추가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도 5건이 이뤄지고 있다. 의료기관과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간의 협업도 활발하다. 부천세종병원을 운영하는 혜원의료재단은 스타트업 뷰노와 함께 AI로 심정지 환자 위험징후를 찾아내는 이지스를 개발했다. 병원 내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즉각 대응팀에 경고를 해 환자 생명을 구하고 있다. 고대의료원은 왓슨의 한국어 버전 판권을 보유한 SK C&C와 함께 맞춤형 항생제 추천 AI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러나 AI를 환자 치료에 활용해도 추가 진료비를 받을 수는 없다. 의료수가 산정을 위해 거쳐야 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한 제품이 없기 때문이다. AI 개발 및 사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단장은 “유전자 검사로 환자 맞춤형 치료제를 찾게 되면서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해졌다”며 “AI를 활용해 환자에게 맞는 약을 선택했다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를 생략해주는 방안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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