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징계·소송…내부고발자, 진실의 대가는 가혹했다

입력 2019-01-04 17:54   수정 2019-01-05 15:59

인사이드 - 양심선언 그후,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

공익신고 대다수는 '새드엔딩'
민간인 불법사찰 고발 윤석양 씨
탈영죄로 체포…2년간 복역

감사원 로비 폭로 이문옥 씨
공무원 비밀누설로 구속·파면
끝까지 소송해 복직 '이례적'

부패방지법·공익신고자법 있지만
불이익 안받게 法으로 보호해도 배신자 낙인…사회적 인식 부족
참여연대 "신재민 고발 철회해야"



[ 박종서/안대규/이인혁/신연수 기자 ] 내부고발자들은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파면과 구속의 위험에 노출되고, 조직을 배신했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내부고발자 보호를 위해 2001년 부패방지법과 2011년 공익신고자법이 제정된 이후 그나마 사정이 나아졌지만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청와대가 민간기업 인사에 개입하고 국채발행 과정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얼마전 폭로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도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 기재부는 그를 공무상 비밀누설죄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내부고발자 대부분 고초 겪어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 법률이 제정되기 전에는 이른바 ‘양심선언’을 시도한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혹독한 시련을 거쳐야 했다. 1990년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의 내부고발은 차라리 ‘해피엔딩’이었다. 이 전 감사관은 대기업들이 비업무용 토지를 과다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감사원이 감사를 벌이다 업계 로비로 중단됐다고 폭로했다. 공무상 비밀누설죄(형법 제127조)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직장에서는 파면 처분을 받았다.

법원은 그러나 이 전 감사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1996년 “비밀은 그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밀누설에 의해 위협받는 국가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부동산 투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 전 감사관의 행동은 국익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때 형법에서 규정한 공무상 비밀에 대한 정의도 명확히 했다. “공무원이었던 자가 누설할 수 없도록 한 직무상 비밀은 법령에 의해 비밀로 규정됐거나 비밀로 명시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치 군사 외교 경제 사회적 필요에 따라 비밀로 된 사항을 포함한다”면서도 “비밀이란 실질적으로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전 감사관은 마침내 복직에 성공해 3년 뒤 정년퇴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판결만으로는 내부고발자 보호의 한계가 뚜렷했다. 현준희 전 감사원 주사는 1996년 효산그룹의 콘도 사업 허가 과정에서 청와대 압력으로 감사가 중단됐다고 밝혔다가 결국 파면돼 감사원을 떠나야 했다. 현 전 주사는 감사 중단을 지시했다고 밝힌 간부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송사에 시달렸다. 내부고발자들은 무고죄나 허위사실 유포죄도 걱정해야 한다.

1990년 보안사령부가 당시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김영삼 민주자유당 최고위원, 고(故) 김수환 추기경 등 민간인 1300명을 불법사찰했다고 공개한 윤석양 이병은 탈영(군무이탈죄)으로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국방부는 윤 이병이 폭로한 뒤 2년간 도피 생활한 것을 문제삼았다.


내부고발 보호법 제정

내부고발과 공익신고로 고초를 당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여론이 들끓었다. 2001년 부패방지법이 제정돼 정부와 공공기관의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부패방지법에선 법에 따라 신고하면 소속 기관, 단체 등으로부터 징계조치 등 어떤 신분상의 불이익이나 근무조건상 차별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불이익을 당하면 원상 회복, 징계 보류 등의 조치도 요구할 수 있다. 2011년에는 공익신고자보호법도 마련됐다. 민간 영역에서도 공익 침해 행위를 고발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안전장치를 뒀다.

더디지만 변화의 기운도 감지된다. 검찰 내부의 성희롱 의혹을 공개해 한국에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는 폭로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에 외압이 있다고 폭로한 안미현 검사도 마찬가지다.

“신 전 사무관 유죄 선고 가능성 낮아”

그렇지만 내부고발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신 전 사무관을 비롯해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받고 있다. 전·현직 공무원에 적용되는 조항으로 직무상 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형을 받을 수 있다. 신 전 사무관은 ‘정부 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하거나 유출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공공기록물관리법 제51조를 위반한 혐의도 받는다.

물론 법조계에서는 신 전 사무관 등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낮게 본다. 대형 로펌의 형사 전문 변호사는 “법원이 내부고발자를 우호적인 시선으로 보는 추세인 데다 위법한 일은 공무상 비밀로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유죄가 선고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공기록물관리법은 국가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기록물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청와대 인사 개입 문건까지 공공기록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참여연대는 4일 기재부에 신 전 사무관에 대한 고발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기재부의 고발은 정부와 공공기관 내 부패 비리·권력 남용, 중대한 예산 낭비 및 정책 실패와 관련한 내부자 문제 제기를 가로막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종서/안대규/이인혁/신연수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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