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봤니? 화이트 로즈…맛으로 기억되는 도시 호이안 셔터 누르면 바로 인생샷!

입력 2019-01-06 14:55   수정 2019-01-06 15:00

여행의 향기

채지형의 구석구석 아시아 (2) 베트남의 고도, 호이안



어둠이 내리고 등이 하나둘 켜진다. 잠들어 있던 마음도 눈을 뜨고, 색색으로 물든 등을 바라본다. 낮과는 다른 세상이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 알록달록한 세상이 펼쳐진다. 15세기로 시간을 돌려주는 타임머신, 여기는 베트남의 고도 호이안이다. 이탈리아에 베네치아가 있다면, 베트남에는 호이안이 있다. 강물이 흐르고 낭만이 출렁인다. 투본강이 보이는 카페 2층에서 내려다보면,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 있는 기분이 든다. 흔들리는 물결과 천천히 움직이는 배는 바싹 말라 있던 가슴을 촉촉하게 만든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강바람은 덤이다. 수백 년 전 중국과 일본에서 온 이방인을 맞았던 호이안. 지금은 무역상 대신 전 세계에서 날아든 여행자가 투본 강가를 가득 메우고 있다.

15세기 해상 실크로드의 거점, 호이안

호이안은 길쭉한 베트남 국토 중간에 자리한 예쁜 도시다. 다낭에서 남쪽으로 약 3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다낭여행 중 반나절 코스로 들르는 여행자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호이안에 가보면 반나절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네는 자그마하지만 아기자기한 매력이 구석구석 숨어 있다. 볼수록 새롭고, 머물수록 더 있고 싶은 마을이라고나 할까. 역사적으로 보면, 다낭보다 호이안이 형님이다. 호이안은 남중국해로 향하는 투본강을 끼고 있어,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황금 시절을 누렸다. 19세기 무역의 주도권을 다낭에 넘기기 전까지 중국과 일본, 인도, 프랑스, 네덜란드에서 무역상이 호이안으로 모여들었다.

호이안이 무역항으로 번성할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내륙에 있으면서 바다도 멀지 않아, 배를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이안을 이야기할 때 ‘해상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라는 설명이 빠지지 않는다. 실크와 도자기, 차를 비롯한 수많은 무역품이 이 아담한 마을을 통해 오고갔다.

호이안은 파이포라고도 불렸다. 옛날 베트남 사람들은 바닷가마을이라는 뜻으로 호이안을 하이포라고 발음했다. 하이포를 ‘파이포’라고 들은 유럽인들은 호이안을 파이포라고 불렀다. 길거리를 가다보면 ‘파이포’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와 기념품 가게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유다.

중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몰려든 무역상으로 호이안은 이미 수백 년 전 국제 감각을 갖춘 글로벌 도시로 성장했다. 베트남 대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회관, 일본인 다리 등 호이안의 랜드마크에는 다른 나라 이름이 붙어 있다. 집을 봐도 중국과 일본, 베트남 양식이 어우러져 있다. 여러 문화가 섞여 독특한 호이안만의 색을 만들어냈다.

전쟁 때문에 베트남의 수많은 문화유산이 사라졌지만, 호이안은 19세기 이후 중심에서 밀려나 집중포화를 피할 수 있었다.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덕분에 호이안에는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호이안은 베트남의 풍요로운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했고, 199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찬란한 노란색 거리를 한들한들 산책하기

호이안을 여행하는 방법은 좁은 거리를 찬찬히 걷는 것이다. 하루 종일 관광객으로 북적이기 때문에, ‘나만의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부지런히 시작해야 한다. 이른 아침 거리에 나서면, 새소리가 먼저 달려든다. 거리의 노란 벽과 나무에 걸린 초록 잎은 가슴을 뛰게 하고, 좁디좁은 골목은 호기심을 안겨준다. 이끼가 잔뜩 낀 지붕과 중국풍 등, 여러 조각으로 이뤄진 나무 창문, 진분홍색 부겐빌레아가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원숙미 넘치는 고혹적인 여인을 보는 기분이랄까. 노란색 위에 검버섯처럼 피어오른 까만색 얼룩은 세월의 흐름을 알려준다. 애써 덧칠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걷다보면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고색창연한 도시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현실감 없는 산책을 즐기던 내 앞에 과일을 어깨에 둘러멘 여인이 총총걸음으로 걸어간다.

호이안은 사람 구경하기도 좋다. 앙증맞은 카페가 한 집 걸러 이어져 있다. 유리창도 없다. 밖으로 시원하게 뚫린 자리에 앉아, 분주히 오가는 사람을 본다. 한자리에서 이렇게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행자를 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세계 각국에서 여행자들이 모인다. 귀 기울여 들으니 영어, 중국어, 일본어뿐만 아니라 독일어, 러시아어, 힌디어가 한꺼번에 날아온다. 보물창고 같은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리는 관광객, 2층에서 여행자를 내려다보는 베트남 여인, 서로가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중국과 일본, 베트남의 하모니

고색창연한 호이안에서 방향을 잡고 싶다면, 내원교(來遠橋)를 찾자. ‘일본인 다리’라고 불리는 내원교는 1593년 일본인이 건설한 다리로, 기와지붕이 독특하다. 호이안의 랜드마크로, 한때 다리 바로 앞까지 배가 드나들었다. 다리 중간에는 오가는 배의 안전을 기원하는 자그마한 사원이 있고, 다리 양쪽에는 개와 원숭이 조각상이 지키고 있다. 여행자가 북적이는 거리는 내원교와 호이안 시장을 잇는 쩐푸 거리다. 쩐푸 거리를 중심으로 향기로운 카페와 앙증맞은 기념품점이 모여 있다.

호이안의 찬란한 시절을 만나고 싶다면, 역사적인 건물들을 돌아보면 된다. 무역상들이 살던 고가와 화교들이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세운 향우회관, 호이안 역사를 소개하고 있는 박물관 등 챙겨볼 곳이 많다.

대표적인 건물은 떤끼 고가(進記古家)다. 18세기 건물로 좁고 길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앞뒤 공간이 이어져 있는 베트남 양식이지만, 육각형 천장과 세 겹의 서까래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자개로 한시를 새겨 놓은 기둥은 중국을 떠오르게 한다. 하나의 공간에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호이안 시장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푸젠회관(福建會館)은 푸젠성 상인들의 회합장소였다. 푸젠성 상인들은 화교 중 호이안에 가장 먼저 진출했다. 호이안이 중국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장소로, 베트남을 여행하고 있는지 중국을 여행하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다. 싸후인 문화 박물관과 역사문화박물관 등 호이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도 있다.

베트남 식도락 1번지 호이안

호이안의 오늘을 보고 싶다면, 시장으로 향하자.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현지인과 여행자를 끌어당긴다. 시장에 발을 딛는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새로움이 주는 재미와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가 기대감을 안겨준다. 과일 노점에는 우락부락한 과일 용과부터 싱싱한 망고, 털북숭이 람부탄까지 화려한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여행자를 겨냥한 라탄 가방과 어여쁜 꽃무늬 자수를 넣은 논(베트남 전통모자), 코코넛 껍질로 만든 그릇도 가득 쌓여 있다.

호이안의 특별 쇼핑 목록에는 맞춤옷도 있다. 기성복에 길들여져 있지만, 한번쯤 옷을 맞춰 입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베트남 사람들의 손재주 덕분에 만족도도 높다. 원하는 디자인을 가져가면 비슷하게 만들어준다. 가격은 원피스 한 벌에 2만~3만원 정도로, 맞춤옷치고 저렴하다. 하루 이틀이면 완성. 도착한 날 주문하고, 다음 날 받을 수 있다. 호이안의 매력을 이야기할 때 먹거리를 빠트리면 안 된다. 호이안의 대표음식은 껌가와 까오러우. 껌가는 중국 영향을 받은 닭고기덮밥으로, 닭고기 삶은 육수로 밥을 지어 밥 색이 노랗다. 까오러우는 우동과 비슷한 비빔국수로, 면이 두툼하다. 면발이 쫄깃하고 살짝 단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길거리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메뉴다. 이름도 낭만적인 화이트 로즈도 있다. 반바오반박이라고도 부르는 화이트 로즈는 물만두와 비슷하다. 다진 새우를 넣어 만드는데, 하얀색 만두피가 하얀 장미 같다고 해서 화이트 로즈라는 이름이 붙었다.

베트남 전역에서 사랑받는 음식이지만, 호이안에 가면 꼭 맛봐야 할 음식이 반미다. 바게트 샌드위치인 반미는 저렴하고 맛있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호이안에는 반미프엉, 마담칸 반미, 피반미 등 여행자들이 꼽는 3대 반미 맛집이 있다. 이 중에서도 반미프엉은 유명 셰프 앤서니 모데인이 ‘샌드위치의 심포니’라고 표현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집으로,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호이안=글·사진 채지형 여행작가 travelguru@naver.com

여행정보

베트남은 한국과 2시간 차이가 난다. 베트남동을 사용한다. 1만동은 약 480원(2019년 1월1일 환율 기준). 베트남항공, 티웨이항공, 제주항공, 비엣젯,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여러 항공사가 다낭까지 직항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인천에서 다낭까지 약 4시간40분 소요. 다낭에서 호이안까지는 약 30㎞ 떨어져 있으며, 차로 약 50분 걸린다.

호이안 구시가로 들어가는 통로 매표소에서 통합입장권을 판매한다. 입장권을 건물마다 별도로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18곳 중 5곳을 선택해서 둘러볼 수 있다. 가격은 12만동. 사진에 관심이 있다면, 프랑스 사진작가 레한의 갤러리(Rehahn Gallery)를 찾아보자.

노상 식당과 길거리 카페도 훌륭하다. 대부분 음식에 고수가 들어가기 때문에 고수를 싫어한다면 “콩 라우무이(khong rau mui)”라고 말하자. 시간이 부족해 음식과 분위기 모두 만족스러운 음식점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모닝글로리(Morning Glory)를 찾아보자. 오랜 노하우로 베트남 음식을 맛깔스럽게 낸다. 1층은 오픈 키친으로, 요리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카페를 고민 중이라면, 리칭 아웃 티하우스(Reaching Out Tea House)를 추천한다. 청각 장애인이 주문을 받기 때문에 테이블에 있는 나무 블록을 이용한다. 운치 있는 분위기와 맛있는 커피를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올드타운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호이안 로스터리 카페도 아픈 다리를 쉬게 하면서 여유를 만끽하기 좋다. 2층 베란다에 앉는다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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