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곳곳에 사원·요가원 즐비, 명상·채식…'마음의 풍요' 얻어볼까

입력 2019-01-13 15:06  

여행의 향기

류진의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 태국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

고요하고 평화로운 지방 소도시
속세와 차단된 듯한 착각 속으로

팽팽한 바지에 봇짐과 물통
거리엔 요가 수행 이국인 넘쳐

태국 북부 요리인 '린나 푸드'
한식과 비슷해 한국인에 인기

동물성 식품·香 강한 채소 금하는
축제 형식의 '채식 주간'도




한 해가 시작될 때 평소 안 하던 일을 한다. 누군가는 교회나 성당, 절을 찾고 어떤 이는 지난 눈이 채 녹지 않은 산을 (목숨 걸고) 오르거나, 이른 아침 목욕탕을 찾아 첫물에 몸을 담그는, 무척 새삼스러운 행위들. 매년 습관처럼 거행되는 이 의식이 어떤 변화나 성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지만(대개 작심삼일로 끝나서) 숨 고를 새 없이 달리는 삶에서 꼭 필요한 빈 시간이다. 그래서 다들 ‘연말 성수기 요금’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남은 연차 탈탈 털어 여행을 떠나는 것 아닐까?

치앙마이는 그 새삼스러운 일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목적지다. 대단히 이름 높은 랜드마크, 휴양의 필수 요소 옥빛 바다, 그 밖에 여정을 가득 채울 보고 먹고 즐길 거리가 즐비한 곳이 아니라서.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백과사전식 정보로 묘사된 전형적 관광지였다. 태국 북부에 있는 제2의 도시, 해발고도 300m에 걸친 고산 지대, 13~18세기까지 북부를 거점으로 번성했던 란나왕국의 수도…. 방문한 이의 과반이 불교 성지순례, 고산족 마을 관광과 코끼리 트레킹 등을 목적으로 이 도시를 찾았다.

지금 치앙마이 앞에 붙는 수식은 달라졌다. 원하는 곳에서 일하며 사는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 ‘한 달 살기’라는 여행의 최신 흐름을 좇는 이들이 사랑하는 도시. 삶의 의무에 책임을 다하면서 자유분방한 인생도 놓치지 않는 21세기의 히피들은 왜 치앙마이를 선택했을까? 치앙마이에서 한 달 지낼 집을 얻고, 그 까닭을 몸과 시간으로 탐구했다.

치앙마이(글·사진)=류진 여행작가 flyryu@naver.com

종교와 관계없이 기도하는 이들의 도시

방콕엔 많은데 치앙마이에선 잘 안 보이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몸에 붙거나 몸을 드러내는 옷을 입은 여성, 분을 잔뜩 칠하고 거리에 선 여성이 된 남성, 왁자지껄한 호객 행위, 거리에 즐비한 술집과 취한 얼굴들. 외국인 여행자와 치앙마이대 학생들이 몰려드는 번화가의 일부를 제외하고, 이 도시에서 쾌락 중추를 자극하는 풍경을 마주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짜내도 떠오르는 건 대체로 고요하고 잔잔한 장면이다.

치앙마이의 이 고유한 공기-평화롭고, 느리고, 조용하다-는 이곳이 단지 지방 소도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도시 전체에 퍼진 1160여 개의 사원이 분위기를 만드는 공신이다. 시내를 걷다 보면 시선이 닿는 곳마다 절과 탑, 승려와 부처, 기도하러 가는 사람을 끝없이 만난다. 예배당에서 흘러나오는 향 내음,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꽃 향기는 자동차와 바이크가 내뿜는 매연을 이긴다. 현세에 죄를 지으면 다음 세상에 대가를 치른다고 믿는 북부 사람들은 수행자처럼 초연하다. 값싼 미소는 없지만 서두르는 이, 그러다가 짜증내는 이, 남에게 부덕한 이도 못 봤다. 이런 분위기에서 혼자 미간을 구기고 다니기란 어렵다.


굳이 찾지 않아도 나타나는 사원들은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종교와 관계없이 가볼 만하다. 구시가지에 있는 180여 개의 사원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왕실 사원, ‘왓 프라싱’엔 무려 1500여 년 된 불상이 산다. 시간의 더께를 고스란히 품은 이 불상은 새해 축제인 송끄란 기간에만 공개하지만, 14세기 멩라이 왕가의 유골을 안치한 황금빛 탑 ‘체디’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 불상 ‘프라 차오텅티’만으로도 들를 가치가 있다.

치앙마이가 발리의 우붓만큼 ‘영’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이는 ‘도이수텝’을 제대로 못 본 것이다. 수텝 산 꼭대기에 있는 이 사원은 불자들에게 신성한 성지다. 부처의 유골을 안치한 황금탑이 있기 때문이다. 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에 찾으면 속세와 완벽히 분리된 듯한 착각도 든다.

나를 멈추고 내면에 말을 거는 요가 명상 시간

치앙마이에 머무는 여행자라면 종종 마주치는 차림새가 있다. 군살을 옥죄는 팽팽한 바지에 매트를 돌돌 말아 봇짐처럼 둘러매고 한 손에 물통을 든 채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어떤 족속인지 눈치챘는가? 그렇다. 치앙마이엔 요가, 명상하러 먼 길 날아온 이가 많다. 대개 그런 목적을 가진 이들이 찾는 나라는 인도다. 인생의 큰 고비, 번아웃 같은 걸 겪고, 사는 방식과 사고방식을 바꿀 목적으로 힌두교도의 수행사원 아쉬람을 찾는다. 발리 우붓은 그보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이들의 요가 휴양지였다. 아궁 화산의 폭발 조짐이 종종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전까진. 그 사이 치앙마이는 발리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우선 날씨와 환경, 가벼운 수강료가 여행자를 유혹한다. 연평균 기온 25도의 따뜻한 볕, 11~3월 이어지는 긴 건기, 요가 수업을 한 달이라도 들어본 적 있는 이라면 꿈꾸는 요가 환경의 3요소, ‘푸른 숲, 나무 그늘, 맑은 공기’를 전부 갖췄다. 강남구만 한 면적, 인구 17만 명에 불과한 이 작은 도시에 구글 지도에 등록된 요가원만 오십 곳 남짓 들어선 이유. 그중 절반 이상은 현지인보단 외지인이 들고 나는 요가원이다. 대부분의 강좌를 영어로 수업하고 1회, 5회, 10회 등 횟수 단위로 나눈 수강권을 판매한다.

명상은 치앙마이의 주 전공이다. 사찰 도시답게 많은 절에서 외지인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도이수텝, 왓람퐁, 왓우몽 등이 대표적인 명상센터. 수행 과정을 안내하는 웹페이지엔 다음과 같은 안내 문구가 있다. “정신 수양은 더 나은 삶을 갈망하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경험이다. 당신이 불자든, 기독교, 천주교인이든, 혹은 무슬림, 유대인이든 종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피부색과 국적도.” 명상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운 이도 있겠지만 사실 거창한 과제는 없다. 그저 잡념으로부터 탈피해 생각 멈추기,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머물기, 내면의 자신에게 말 거는 방법을 익히는 연습을 할 뿐. 이 성취는 말하기를 멈추고, 천천히 걷고, 길게 호흡하는 법을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이룰 수 있다. 그 전에 당신이 365일, 24시간 내내 붙들고 있는 디지털 기기의 전원을 먼저 꺼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그게 바로 세계의 무수한 일 중독자들이 치앙마이를 찾는 이유다.

영혼까지 살찌우는 북쪽 밥상

낯선 곳에서 십수일 이상 먹고 살기로 결단했을 때 무엇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까? 돈과 먹을 것이라는 답에 반기 들 이는 없을 것이다. 특히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은 매일의 삶의 질과 정신의 안녕을 좌우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치앙마이엔 고유한 음식 문화가 있다. 13세기부터 500여 년간 지속된 란나왕국은 이 지역에서만 나는 독특한 식재료로 타이 북부 요리, ‘란나 푸드’라는 독자적인 장르를 만들었다. 산에서 채취한 야생 식물, 맵고 짜고 진한 풍미의 소스는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한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란나 푸드의 정수는 ‘칸톡’에 다 모여 있다. 돼지고기, 소고기에 코코넛 밀크, 생강, 타마린, 커리를 섞은 양념장을 버무려 갈비찜처럼 삶아내는 ‘깽항레’,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를 샬롯, 마늘, 생선 젓갈 등으로 만든 소스에 버무려 내는 ‘남똑무’ 등에 치앙마이산 쌀로 지은 찰밥, 쌈장, 채소 등을 곁들여 내는 란나식 반상 요리다. 밥과 나물, 고기와 장을 내는 한정식 밥상의 구성과 비슷해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다.

치앙마이 3대 비건 도시 채소로 독을 빼다.

몸의 독소를 빼는 데엔 풀 만한 게 없다. 치앙마이가 채식 친화 도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동물권리보호단체 PETA는 싱가포르, 타이베이와 함께 치앙마이를 ‘아시아 3대 비건(채식) 도시’로 꼽았다. 치앙마이뿐 아니라 태국의 채식 문화가 발달한 이유. 종교적 의미를 지닌 연례 의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국 사람들은 매년 음력 9월, ‘낀쩨’라는 이름의 채식 주간을 갖는다. 고기, 계란 등의 동물성 식품과 마늘, 파 등 향이 강한 채소를 섭취하지 않고 금주하면서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중국계 태국인이 많은 남부에선 엄격한 의식으로 지키지만 방콕, 치앙마이 등에선 축제처럼 즐긴다. 북부식 채식 요리는 사원과 시장, 길거리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찹쌀 가루를 반죽해 땅콩, 참깨 등으로 만든 소를 채워 넣고 바나나 잎에 싸서 찐 ‘카놈촉’, 찹쌀을 소금물에 불려 간을 맞춘 후 죽통 속에 채워 직화로 굽는 ‘카오람’, 익힌 쌀을 동그랗게 빚어 말린 후 깨, 땅콩, 건과일 등과 함께 강정처럼 튀겨내는 카오탠 등이 대표적이다.

전통 요리만이 의무는 아니다. 우아한 채식 브런치로 기분 내고 싶다면 치앙마이의 강남, 님만해민에 새로 연 근사한 채식 카페와 레스토랑들로 향할 것. 순박한 고산족 농부들이 여는 주말 파머스 마켓에서 직접 장을 봐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도 치앙마이 한 달 살기의 큰 낙이다. 이곳에선 세계적으로 저명한 요리사들이 고집하는 철칙, ‘농장에서 식탁까지’를 손쉽게 실현할 수 있다. 태국에서 가장 질 좋은 유기농 식재료로 꼽히는 ‘로열 힐 트라이브 프로젝트(Royal Hill Tribe Project)’의 농장들도 치앙마이 근교에 위치했다. 부족한 요리 솜씨를 메워주는 싱싱한 식재료는 디톡스 여정의 끝을 장식한다.

분노와 독기를 연료 삼아 연명하는 도시인에게 잘 먹고, 기도하고, 꾸준히 운동하며 마음을 챙기는 삶은 환영에 가깝다. 치앙마이에서 보낸 한 달 동안 그 환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바다가 없어서, 비행기를 두 번 타야 해서 치앙마이행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인생의 방향을 ‘균형’에 맞추고 싶은가? 그렇다면 북쪽으로 튀어라!

류진 여행작가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트래블러, 패션 매거진 코스모폴리탄 등에서 일하며 42개국 200여 개 도시를 여행했다. 유행의 흐름을 붙잡아 소개하는 일을 하다가 지치면 야생의 대자연으로 도망친다. 자연과 도시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며 사는 삶을 글로 쓴다.

여행정보

치앙마이는 몸과 마음을 닦기에 더없이 좋은 도시지만 꼭 깨달음을 구하는 승려처럼 지낼 필요는 없다. 젊은 취향을 만족시키는 세련된 공간이 넘친다. 2018년 4월 정식으로 문 연 복합문화공간 ‘원 님만’은 태국의 재벌기업, 이치탄그룹의 탄파사콘나티 회장의 야심작이다. 태국의 감각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실, 로컬 패션, 생활 소품 브랜드 매장, 지역 맛집과 카페, 여행자를 위한 쇼핑몰 등이 꽉꽉 들어서 있다. ‘한 달 살기’로 치앙마이를 찾은 20, 30대에겐 예술가가 만든 마을이 인기가 높다. 태국 공예가 나타웃이 만든 반캉왓, 치앙마이대 교수 수파차이 사트사라가 만든 럼펑 아트 스페이스, 치앙마이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건축집단이 세운 펭귄빌리지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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