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마다 숨은 '보석'…예술인들이 가꾼 문래·성북로 함께 걸어요

입력 2019-02-24 15:07  

여행의 향기

서울 관광재단과 함께 하는 숨겨진 서울이야기 (9)

문화예술 명소



번화한 도시 서울에는 예술가의 흔적이 담긴 역사적인 장소가 많다. 빌딩 숲에 가려진 동네 작은 골목에는 예술가의 혼이 담긴 다양한 이야기가 새어 나온다. 오래전부터 알던 길이지만 이 길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소박한 풍경 속에 풍성한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의 골목 뒤안길,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길을 걸어보자.

철강단지로 모여든 예술가, 문래 예술촌

철강산업의 메카였던 영등포구 문래동은 일제강점기 방적공장이 들어서면서 방적기계 ‘물레’의 이름을 따서 문래동이라 불렀다. 공장이 많아 이 지역의 대기오염이 심각해지자 철공소를 하나둘 외곽으로 옮겼고 문을 닫은 공장의 빈자리에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철공소 사이사이에 공방과 카페가 들어섰다. 미로를 탐험하듯 들어선 좁은 골목 담장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철공소 골목은 낮에는 기계가 돌아가고 용접 불꽃이 튀지만 공장 문을 닫는 저녁과 주말에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셔터가 내려지면 셔터에 그림이 예술작품처럼 피어나고 골목은 갤러리가 된다. 철강단지답게 철을 소재로 한 작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골목의 작은 카페에서는 작가들의 개인전이 열리기도 한다. 철공과 예술의 독특한 만남이 문래창작촌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예술가들의 혼이 깃든 성북로

수려한 북악산 자락에 있는 성북동은 한양도성의 북쪽 마을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동네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을 나오면 산을 오르는 언덕길까지 예술가의 흔적이 이어진다. 가장 먼저 만난 곳은 ‘최순우 옛집’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4대 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인 혜곡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생을 마친 1984년까지 살던 집이다. 최순우 옛집은 1930년대 초에 지어진 한옥으로 시민들의 후원과 기증으로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시민문화유산 1호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최순우 선생의 옛집에는 선생의 유품, 친필 원고 등을 전시하고 있다. 고즈넉한 한옥을 나와 산을 향해 걸어가면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나온다.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에 해외로 유출될 위기에 있는 한국 문화유산을 수집했다. 이를 보관하고자 한국 최초의 근대 건축가 박길룡에게 설계를 맡겨 1938년 미술관을 완공했다. ‘아름다운 문화재를 지키는 건물’이라는 뜻의 보화각(保華閣)에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해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소장하고 있다.

성북동 길을 따라가면 아름다운 한옥 ‘수연산방’이라는 전통찻집이 있다. 소설가 상허 이태준이 1933~1946년 월북할 때까지 살던 집이다. 벼루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글을 쓰겠다는 소설가의 의지를 담아 ‘수연산방’이라 이름 지은 곳에서 ‘달밤’ ‘돌다리’ ‘가마귀’ ‘황진이’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다.

성북동 언덕의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만해 한용운이 살던 심우장이 있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자 ‘님의 침묵’의 시인이며 승려였던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서 11년을 머물렀다. 전체 규모가 5칸에 불과한 작고 소박한 집은 한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북향집이다. “남향하면 바로 돌집(조선총독부)을 바라보는 게 될 터이니 차라리 볕이 좀 덜 들고 여름에 덥더라도 북향하는 게 낫겠다”며 북쪽으로 향한 기와집을 지었다.

예술인의 마을 원서동길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이어진 원서동은 일제강점기 왕이 머물렀던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하고 그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명의 유래는 가슴 아픈 일이나 지금 원서동에는 화가와 예술인이 모여 살고 있다. 전통 공방과 붉은 벽돌로 지은 미술관을 따라 걷다 보면 길모퉁이에서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였던 고희동 선생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1915년 그가 그린 ‘부채를 든 자화상’은 한국 최초의 유화 작품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고희동 선생이 살았던 가옥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18년 직접 설계해 지은 목조 한옥이다. 이 집에서 학생들에게 서양화를 가르치면서 41년을 거주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당대 문화예술인과 교류한 공간이다.

한옥은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어 있다. 사랑방 옆에는 그림을 그리는 화실을 따로 뒀다. 안채와 사랑채를 오가기 편하도록 긴 복도를 이어 창을 냈다. 한옥을 둘러싼 붉은 벽돌담과 푸른 철대문이 인상적이다. 개량 한옥은 일제강점기 한옥 살림집의 변화를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근대건축문화유산이다.

오랜 역사를 이어온 예술가들의 터전, 옥인길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옥인길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수백 년을 이어온 문화와 예술이 만나는 곳이다. 조선시대 중인과 서민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세종대왕 생가터, 백사 이항복의 집터가 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추사 김정희의 명필이 탄생한 마을이기도 하다. 근대와 현대에는 이중섭, 윤동주, 이상, 박노수 같은 예술가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종로구 누상동 9번지에는 민족시인 윤동주 하숙집터가 있다. 1941년 당시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윤동주는 자신이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다. 하숙집 근처 인왕산 자락을 거닐며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의 명작을 남겼다.

윤동주 하숙집터 근처 옥인동에 있는 박노수 가옥은 1930년대 지어진 한옥, 양옥, 중국 건축 양식이 조합된 화려한 집이다. 서양의 입식 생활과 전통적인 온돌이 조합된 주택은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됐다. 한국 화단의 거장 박노수 화백의 40년 동안의 삶과 작품세계가 주택과 정원 곳곳에 남아 있다. 1층 벽돌조 구조와 2층 목구조가 어우러진 독특한 주택 현관의 바닥과 벽타일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황소’의 화가 이중섭은 누상동에서 6개월 동안 거주하면서 일생 최초의 개인전이던 미도파 화랑 전시회를 준비했다. 삶의 고뇌를 진솔하게 화폭에 담았던 이중섭은 이곳에서 ‘도원’ ‘길 떠나는 가족’ 등을 그렸다. 힘겨웠던 그의 삶처럼 누상동 가옥에 이르는 골목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통인동에는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이상이 세 살부터 20여 년간 머물렀던 집터도 남아 있다.

소극장이 모여 있는 혜화동 로터리길

예전에 서울대 문리대와 법대가 자리했던 혜화동은 서울대 학생들과 주변의 대학생이 모이면서 대학로라는 개성 넘치는 거리로 변했다. 서울대는 1975년 관악산 아래로 이전했고, 그 자리에 1929년 경성제국대학 시절에 심은 마로니에 나무가 있어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됐다.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등록된 마로니에 공원 주변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미술관과 크고 작은 공연장이 모여 있다. 공원 내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인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윤선도는 근처 이화동에서 태어났지만 오랜 귀양 생활을 했다. 시비에는 유배지에서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과 벗 삼았던 외로운 선비의 마음이 담겨 있다.

공원 옆에는 1931년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본관으로 지은 벽돌 건물이 있다. 광복 이후부터 1972년까지 27년간 서울대 본관으로 사용됐다. 아치 모양의 중앙현관이 있는 3층 건물에 특별한 장식은 없지만 1930년대 근대 건축 양식이 잘 드러난다.

글·사진=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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