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록테테스 속이려는 오디세우스…"성공을 위해 거짓말도 필요"

입력 2019-03-08 17:30  

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43) 거짓말




인간은 말하는 동물이다. 18세기 독일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소위 ‘존재의 대(大)사슬(Great Chain of Being)’이란 구조를 이용했다. 헤르더는 인간을 이 사슬의 최상위에 위치시키며,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근본적인 특징을 설명한다. 바로 ‘말’이다.

인간은 ‘호모 로쿠엔스(Homo Loquens)’ 즉 ‘말하는 동물’이다. 말은 외부의 자극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몸짓이나 울부짖음 이상이다. 혹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반복하는 지껄임도 아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마라톤전쟁에서 페르시아인들의 말소리를 듣고 이해할 수 없자, 인종차별적이자 오리엔탈리즘적인 용어를 만들어냈다. 의성어(擬聲語)인 ‘바르바로스(barbaros)’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어 소통할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바르바로스’ 즉 ‘야만인’이라고 불렀다.

말(言)

말이란 발화자의 의도가 청자에게 올바로 전달될 때 완성된다. 말이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말은 타인의 이해를 구하려는 시도다. 인간은 동료 인간과 말을 통해 자신의 섬세한 감정까지 전달한다.

기원전 2만8000년 전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유사하지만 정교한 말을 하지 못해 유럽 한복판에서 영원히 사라진 유인원이 있다. 네안데르탈인이다. 네안데르탈인의 구강구조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몇몇 소리밖에 낼 수 없는 구조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담은 음을 흥얼거릴 수는 있었지만, 정교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고고학자들은 최근 네안데르탈인들이 사용했다는 피리를 발견했다. 이 악기는 독수리 날개뼈로 만든 ‘오음계’ 피리다.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사라진 이유는 정교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말의 부재다. 호모 사피엔스만이 다른 호모 사피엔스와 말을 할 수 있었다. 구강구조가 특이해 목구멍에서 나는 후음, 입천장에서 나는 구개음, 혀에서 나는 순음, 치아에서 나는 치음 등 다양한 곳에서 무수한 독립적인 소리를 낼 수 있다. 말은 한 집단을 다른 집단으로부터 구별할 뿐만 아니라 그 집단의 정체성을 제공하는 체계다.

말의 기원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창세기》 11장에 등장한다. ‘바벨탑’ 이야기다. 《창세기》를 기록한 성서 저자는 역사적인 인물인 아브라함이 등장하기 전에 꼭 설명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언어의 다양성(多樣性)이다. 언어의 다양성은 신의 섭리(攝理)다. 인간이 아담과 이브의 자손이라면, 성서 저자가 만난 수많은 인종들의 언어를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바벨탑 이야기는 다양한 언어와 민족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다. 첫 구절이 ‘언어가 하나였고 사용하는 단어들이 하나였다’이다. ‘언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리숀(lishon)’이다. 리숀은 축자적(逐字的)으로 ‘혀’를 의미한다. ‘혀’가 입안의 여러 장소에서 ‘말들’을 만들어낸다. ‘말들’이란 히브리 단어는 ‘데바림(debarim)’인데 ‘다바르(dabar)’라는 단어의 복수형이다.

언행일치(言行一致)

다바르라는 히브리 단어는 우리가 보기에는 서로 상충하는 의미를 함께 지닌다. 다바르는 ‘말’이면서 동시에 ‘사건’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말이 말로 그치면, 그것은 말이 아니었다. 말은 행위를 통해 완성될 때 비로소 말이 된다. 다바르의 의미를 한 구절로 표현하자면 ‘언행일치(言行一致)’다. 사실 언행일치라는 표현은 다바르를 번역하기에 부적절하다. 다바르에는 말이면 반드시 행위로 완성돼야 한다는 의지가 포함돼 있다.

말과 행위가 분리된 상태가 ‘거짓’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창조신화 《에누마엘리시》에서 신들은 젊은 신인 마르둑(Marduk)이 최고신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지 시험한다. 신들은 하늘의 별들을 어지럽게 흩어 놓고 마르둑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한다. “이 무질서한 별들을 한데 모아 줄을 세우시오!” 그러자 마르둑이 외친다. “제자리로 나열하라!” 별들은 마르둑의 말대로, 자신들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신들은 이 광경을 보고 마르둑에게 말한다. “당신은 최고신이다!”

경계의 공간, 렘노스

오디세우스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무스는 ‘렘노스(Lemnos)’라는 섬을 찾아왔다. 이 섬의 한 동굴에 거주하는 필록테테스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들은 필록테테스가 가진 화살과 활이 있어야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신탁을 들었다. 렘노스는 에게해 북부에 있는 섬이다. ‘렘노스’란 그리스어는 ‘경계’를 의미하는 단어 ‘리멘(limen)’에서 유래했다. 이곳은 야만과 문명, 죽음과 삶, 패배와 승리가 공존하는 경계의 공간이자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의 땅이다. 오디세우스와 네옵톨레무스는 렘노스에 도착해 동굴로 향한다. 동굴은 경계의 장소다.

그들은 저 멀리 보이는 필록테테스의 동굴을 보며 대화를 시작한다. 오디세우스는 이 원초적이며 야만적인 경계로 들어온 이유를 네옵톨레무스에게 설명한다. “여기가 바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오랫동안 버려진, 바다에 의해 끊임없이 씻긴 렘노스의 해안이다. 그리스인 가운데 가장 숭고한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무스여! 나는 이곳에 오래전에 말리스 출신인 포이아스의 아들(필록테테스)을 두 장군(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명령으로 여기에 버려뒀다. 왜냐하면 그의 발이 썩어들어가며 고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진영 전체가 그의 사납고 불길한 비명소리로 가득 차, 누구도 평화롭게 제주도 번제도 바칠 수가 없었다.”(1~10행)

그리스인들은 오래전에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저버렸다. 위대한 용사 필록테테스를 이 외딴 섬에 버려뒀다가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그의 무기를 가져가기 위해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그가 가진 무기이지, 필록테테스라는 인간이 아니다. 오디세우스는 네옵톨레무스에게 동굴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그들은 먼저 필록테테스의 상태를 살피려 한다. 네옵톨레무스는 한 동굴을 발견한다. 그 동굴은 비어 있었지만, 그 안에 있는 나뭇잎 무더기는 누가 눕기라도 한 듯 눌려 있었다. 나무로 만든 투박한 잔과 불 피우는 도구도 발견한다. 네옵톨레무스는 햇빛에 말리고 있는 누더기와 심한 상처에서 나온 고름 흔적을 발견한다. 이곳이 필록테테스의 거주지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계략

오디세우스는 이곳이 필록테테스의 거주지란 사실이 확인되자 네옵톨레무스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그는 말한다. “당신은 필록테테스의 마음을 대화를 통해 말로써 혼미하게 만들어야 한다. (…) 당신(네옵톨레무스)은 아카이오이족(그리스 군인들)을 몹시 원망해서 그들의 함대를 떠나 고향으로 항해하는 중이라고 말하라.”(54~59행)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를 존경하는 필록테테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네옵톨레무스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종용한다. 네옵톨레무스는 오디세우스의 계략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라에르테스의 아들(오디세우스)이여! 듣기도 거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라니, 나는 싫습니다. 간계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나의 본성이 아니며, 사람들이 말하기를 내 아버지도 그렇지 않다고 들었습니다.”(86~89행)

네옵톨레무스의 마음에는 정의심이 남아있다. 그는 비열한 방법으로 이기느니, 차라리 옳은 일을 하다가 실패하고 싶다고 말한다. 오디세우스는 세상이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말이라고 주장한다. 즉 말과 행동은 하나가 아니라 별개이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을 해도 되는 것이 인생사라는 것이다.

네옵톨레무스는 화가 나 말한다. “당신은 거짓말하는 것이 창피하지 않다는 말입니까?”(108행) 오디세우스는 말한다. “그렇다! 거짓말이 우리를 살려준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겠다!” 오디세우스는 순진한 네옵톨레무스를 말로 설득한다. “만일 네가 거짓말을 통해, 그의 무기를 빼앗는 일에 성공한다면, 두 가지 상을 받게 될 것이다.”(117행) 그러자 네옵톨레무스는 마음이 움직여 말한다. “무슨 상입니까? 그것을 알면, 그대가 말한 것을 그대로 행할 것입니다.”(118행)

오디세우스의 다음의 말이 그를 움직였다. “당신은 지혜로우면서도 용감하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119행) 그는 용감하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지혜롭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는 이제 용맹스러운 영웅일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영웅이 될 것이다. 네옵톨레무스는 이 감언이설에 넘어간다. “좋습니다. 수치심을 모두 버리고 (거짓말을) 하겠습니다.”(120행)

배철현 < 작가 ·고전문헌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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