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몽환의 새벽에 눈을 뜨다…그 남자, 태초의 자연 속에 홀로 서다

입력 2019-03-10 15:39  

여행의 향기

그 남자 그 여자의 여행 (6) 스코틀랜드 고원지대 하이랜드

연녹색 평원·회색빛 하늘…볼수록 빠져드는 '아름다운 중독'



우리가 흔히 ‘영국’이라 부르는 국가의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연합’이라는 국명에서 알 수 있듯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가 속한 그레이트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 섬의 북동 지역인 북아일랜드가 모여 하나의 나라를 이뤘다.

필자 부부는 스코틀랜드 여행 중 재미있는 일을 겪었다. 스코틀랜드 여행 중 만난 이들에게 국적(Where are you from?)을 물으면 거의 모든 스코틀랜드인들이 난 ‘영국인이야’라고 답하는 대신 ‘난 스코틀랜드인이야(I’m from Scotland)”라고 답을 하는 것이었다. 이는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국적을 물었을 때 ‘한국인’이라는 답 대신 ‘제주도인’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그만큼 스코틀랜드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는 말이다.

그 여자,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를 달리다

대자연 앞에서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렌터카 여행

스코틀랜드는 글래스고와 에든버러 등이 있는 스코틀랜드 중부를 중심으로 남부와 북부 지역으로 나뉜다. 이 중 광활하고 웅장한 대자연을 마주할 수 있는 북부 고원 지대를 하이랜드라 부르는데, 대부분 여행객은 하이랜드를 여행하기 위해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투어 버스를 이용한다. 대중교통이 잘 발달하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여자가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하이랜드 여행의 이동 수단은 렌터카다. 우측 핸들을 잡고 좌측통행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살짝 있지만 도로 위 차량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 하이랜드 투어의 경우 목적지에 도착해 관광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동차(투어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자체가 투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즉 버스를 타고 가면서 멋진 풍경을 스쳐 지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눈과 가슴을 사로잡는 대자연 앞에서 마음껏 멈춰 바라볼 수 있는 렌터카 여행을 권한다.

여자 역시 스코틀랜드 여행을 위해 렌터카를 빌렸다. 여행지에서 렌터카를 이용할 때면 그녀는 늘 자동차에 이름을 붙여주곤 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한낱 스쳐 가는 빌린 차에 불과했던 녀석은 평생 잊지 못할 동료로 거듭났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공항에 도착해 만난 ‘스캇’. 스코틀랜드(Scotland)의 앞 스펠링 4개를 따서 스캇이다. 영국의 멋쟁이 신사 이름 같아서 여자는 스캇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스캇은 소형에서 중형 사이 승용차였다. 여행 중 늘 그래왔듯 여자는 차를 받자마자 어떻게 하면 최대한 편한 잠자리를 만들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했다. ‘동료인 스캇을 혼자 밖에 재우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기보다는 ‘숙박비를 아껴 보고자’하는 마음이 컸던 게 사실이다. 외국의 일부 자동차들은 뒷좌석을 앞으로 접으면 납작한 방석처럼 완전히 접히기 때문에 트렁크와 뒷좌석이 한 공간으로 연결된다. 평평하지 않은 곳에 옷들을 포개고 그 위에 이불을 깐 다음 침낭을 덮으면 잠자리가 만들어진다. 여자가 먼저 트렁크 아래쪽으로 기어들어가 운전석을 향해 다리를 쭉 뻗었다. 여자의 남편도 낮게 포복해 겨우 자리를 마련하고 몸을 누인다. 겨우 몸을 달싹달싹 움직일 만큼의 공간에서 그렇게 그 둘은 잠을 잤다. 스코틀랜드 여행 13일 중 9일 밤을 렌터카 ‘스캇’과 함께 보냈다.

하이랜드가 내뿜는 길 위의 매력에 중독

에든버러를 벗어나 북쪽으로 달리며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나자 풀색 대지와 회색빛 하늘만이 펼쳐진 야생의 하이랜드가 나타났다. 가장 스코틀랜드다운 풍경, 아담과 이브가 살고 있을 태초의 과거로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길 위에는 그와 그녀, 그리고 스캇만이 있었다. 어떤 날은 스캇의 기름이 다 떨어져 가는 데도 주유소가 안 나와 전전긍긍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지나가는 차 한 대도 못 만날 때도 있었다.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보기 힘든 드넓은 평원 위 그림 같은 양떼들이 아름다웠고, 광야의 말과 소가 마냥 반가웠다.


해가 저물면 도로변 적당한 곳에 스캇을 주차시키고 면 하나 호로록 끓여 먹고선 눈을 붙였다. 잠결에 들리는 바람 소리, 동물의 울음소리, 가끔은 빗소리….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 스코틀랜드의 완전한 어둠 속에서 그와 그녀를 지켜줄 녀석은 스캇밖에 없었다. 두려운 밤을 버티면 어김없이 물안개 피어오르는 몽환의 새벽이 찾아온다. 스코틀랜드의 낮과 밤을 온몸으로 느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처음엔 숙박비를 아껴보고자 시도했던 차에서 자는 밤. 여자는 점차 하이랜드가 내뿜는 길 위의 매력에 중독됐다. 여행하는 동안 스코틀랜드의 밤은 우리나라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정도로 쌀쌀했다. 밤새 서로를 부둥켜안고 자야만 추위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여행의 절반 이상 차에서 자는 걸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 늪 같은 자연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나 스위스에서 보았던 싱그러운 녹색도 아니었고,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보았던 맑고 푸른 하늘도 아니었지만 채도 낮은 녹색과 회색빛 하늘 속에는 꾸며지지 않은 솔직한 자연이 있었다.

극한의 고독과 쓸쓸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곳, 펑펑 울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 척하지 않고 완전히 내 안의 나만을 바라볼 수 있는 곳. 어쩌면 그건 세상 끝으로 혼자 달려가는 기분 같을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여자에게는 말없이 손잡아 주는 그(남편)와 스캇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엔들리스(Endless) 드라이브, 하루하루 숙소를 찾아 헤매기보단 발길 멈추는 곳에 그대로 잠시 머물 줄 아는 낭만을 알게 해준 여행이었다.


그 남자, 야생의 인생길을 걷다

영화 ‘007 스카이폴’ 촬영지로 유명한 글렌코

아서왕의 이야기에 밤새 흥분하며 뜬눈으로 지새운 적이 있는가? 깊고 진한 위스키의 향이 머무는 곳의 모습이 궁금한가? 끝도 없이 이어진 목초지 속 내면의 깊은 자신을 만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이 꿈꾸는 여행지는 바로 스코틀랜드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난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천성이 게으른 탓에 몸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거니와 다시 내려와야 할 꼭대기를 향해 숨 가쁘게 올라야 하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상에 도달하지 못하면 괜히 낙오자가 된 것 같은 느낌도 그리 유쾌하지 않았기에, 가능하다면 하이킹은 피하고 싶은 여행 종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에서의 하이킹은 힘들지만 해야만 하는, 여행자에겐 흡사 필수과목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그곳의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하이킹만 한 게 없다는 의견에 일언반구 반박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낮 12시가 지난 즈음 글렌코(Glencoe)에 다다랐다. 영화 ‘007 스카이폴’의 촬영지로 유명한, 거대한 협곡 지형의 글렌코. 거대한 산과 깎아지른 절벽들이 즐비한 이곳을 뒤덮고 있는 것은 넓디넓게 자리 잡은 풀과 바위뿐이다. 어딘가에서 가져와 심어놓은 것처럼 홀로 서 있는 몇 그루의 나무들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곳에서 촬영된 수많은 영화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가슴 벅찬 감동이 절로 느껴질 만큼 ‘글렌코’는 하이랜드 여행 루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감히 이곳을 오르겠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비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 유명한 스리 시스터즈. 각각의 봉우리가 해발 1000m나 된다. 이 거대한 세 자매 봉우리는 하이킹 초보인 남자를 한껏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걷기여행의 추억

“그래, 해보자! 앞만 보고 걷다 보면 언젠가 다다르겠지.” 해가 넘어가기 전에 오르려니 마음이 급해졌다. 트레킹화의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남자는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르고 또 올라 초원 지대로 들어서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당최 시간이 흐르고 있긴 한 건지 분간이 안 됐다. 워낙 망망한 풍경 탓에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인 것만 같았다. 산 입구에서 봤던 풍경들도 함께 걸어온 건지 주변 풍경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아차차! 앞만 보고 무작정 덤벼든 하이킹, 저 꼭대기를 오늘 반드시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무거운 욕심에서 시작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여행을 하며 남자가 배운 것 중 하나가 포기할 건 깨끗이 포기하자 아니었던가?

애초에 허락되지 않은 것을 부둥켜안고 걷는 인생길이 얼마나 힘든지 여행을 통해 간간이 깨우쳤는데도 한 인간의 습관적인 욕심이 여전히 멀지 않은 곳에서 서성이고 있었나 보다. ‘내려놓자. 가능한 곳까지만 가 보자!’라고 생각을 바꾸니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 앞으로만 고정돼 있던 시선을 옆으로 뒤로 돌리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루터기에 자리 잡은 촉촉한 풀잎들도, 그 위를 맴도는 작은 생명체들도 모두 대지를 함께 걷는 친구가 됐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걸터앉은 바위 하나도 단순히 시간을 허비하고 돌아서는 공간이 아닌, 내 체취가 남은 추억의 쉼터가 됐다. 아까부터 흩뿌리던 궂은 날씨 속 실비도 산행을 방해하는 훼방꾼이라기보다는 자연의 다채로움을 알려주는 조물주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오늘의 목표 지점은 그저 발길이 멈추는 곳….

자연의 일부분이 된 듯한 시간 속에서 걷다 보니 어느새 출발지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정상을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아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한구석을 뿌듯하게 채워주는 아름다운 하이킹이었다. 하늘을 향해 일어선 듯한 스리 시스터즈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웅장함과 몇 시간을 걸어도 크게 바뀌지 않는 자연의 거대함 속에서 남자는 자신의 작은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손에 쥔 멋진 기념사진 하나 남기지 못했지만, 스코틀랜드는 그렇게 남자의 가슴 위에 진하게 새겨졌다.

스코틀랜드=글 정민아 여행작가 jma7179@naver.com / 글·사진 오재철 여행작가 nixboy99@daum.net

여행메모

항공편 한국에서 스코틀랜드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인천에서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까지 직항으로 약 11~12시간 걸리며,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공항까지 약 1시간20분이 소요된다.

날씨 스코틀랜드는 1년 내내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가 잦다. 연평균 기온은 10도 안팎으로 계절에 따른 날씨 변화가 적다. 흐리고 비가 많이 와 습도가 60% 정도로 유지된다. 비교적 여행하기 좋은 계절은 5월과 9월이다.

민족 잉글랜드에 거주하는 앵글로색슨족과 스코틀랜드를 포함해 웨일스와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켈트족이 주를 이룬다. 두 민족이 한 국가를 이뤄 민족적, 역사적으로 대립 관계에 놓이기도 했다.

운전 한국과 반대쪽 운전석과 차선을 이용한다.

화폐 파운드 시차 우리나라보다 9시간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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