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아일랜드 파워'

입력 2019-03-19 18:26  

홍영식 논설위원


[ 홍영식 기자 ] “나는 쇠사슬에 감긴 흑인을 보고 인간이 이보다 비참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일랜드인들을 보고는 달라졌다.” 프랑스 사회학자 귀스타브 드 보몽은 감자 대기근(1845~1852)을 겪고 있던 아일랜드를 여행한 뒤 이렇게 썼다.

아일랜드는 그 어느 나라 못지 않게 한(恨)과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나라다. 12세기부터 1921년 독립할 때까지 약 800년 간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수탈과 가난 속에 살았다. 특히 감자 대기근은 아일랜드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다.

아일랜드 국민의 주식(主食)이었던 감자에 역병이 돈 7년간 인구 약 800만 명 중 110만여 명이 사망했다. 같은 기간 100만 명 이상이 살 길을 찾아 미국 등으로 이주했다. 전체 인구 중 25% 넘게 굶어 죽거나 나라를 등진 것이다. 영국을 출발해 아일랜드 코브항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다 침몰한 타이타닉호 맨 밑바닥 3등 칸은 아일랜드인들로 가득 찼었다. 당시 사랑하는 가족, 연인들이 부두에서 헤어질 때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불렀던 노래가 ‘오! 대니 보이(Oh! Danny Boy)’였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지만, 고난은 계속됐다. 먼저 자리잡은 영국계 이민자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흰 검둥이(white nigger)’로 불리며 힘든 일을 도맡다시피 했다. 그런 역경을 이겨내고 미국 사회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현재 미국 내 아일랜드계 인구는 3300여만 명(10.4%)에 달한다. 본국 인구(약 500만 명)보다 여섯 배 이상 많다.

아일랜드계는 미국 정계와 행정부에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다. 대통령을 지낸 앤드루 존슨, 해리 트루먼,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부시 부자(父子), 빌 클린턴 등이 아일랜드계로 알려져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 등도 아일랜드계 후손이다.

지난 17일 아일랜드에 가톨릭을 전파한 성(聖)패트릭(386~461)이 타계한 날을 맞아 미국 전역이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영국 출신인 패트릭은 16세 때 켈트족 해적에게 납치돼 아일랜드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 간신히 탈출해 사제가 돼 아일랜드로 돌아가 전도에 성공했다. 초록은 아일랜드 국기에 들어간 토끼풀 색이다. 패트릭은 세 잎으로 이뤄진 토끼풀을 이용해 아일랜드 동포들에게 가톨릭의 삼위일체 개념을 설명했다고 한다.

성패트릭 축제는 아일랜드보다 오히려 미국에서 더 성대하게 치러진다. 주미 아일랜드 대사가 미국 대통령에게 토끼풀을 전달하는 행사는 전통이 됐다. 고난을 딛고 일어선 아일랜드계의 ‘막강 파워’를 보여준다.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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