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전의 秋色에 반하고, 소정의 금강산 萬古絶色에 홀리고…

입력 2019-04-07 17:30   수정 2019-04-08 18:26

한국 근대 진경산수의 거장
'청전과 소정을 만나다'展
갤러리 현대에서 10일 개막



[ 김경갑 기자 ]
중국 근대미술의 대가 치바이스(1864~1957) 작품 ‘산수십이조병’은 2017년 베이징 경매회사 폴리의 추계 경매에서 무려 9억3150만위안(약 1570억원)에 낙찰되며 세계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근대 중국화 그림값이 파죽지세로 1500억원 가까이 치솟는 동안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전통 한국 화가들의 작품 가격은 국제 화단의 시선이 민망할 정도로 맥을 못 추고 있다. 근대 한국화의 거장 청전 이상범(1897~1972)의 ‘영막모연’(3억4000만원)과 소정 변관식(1899~1976)의 ‘금강산 사계’(2억5500만원) 등이 그나마 억대 낙찰 작품 대열에 올라 있다.

지난해 국내 경매 작가별 낙찰총액 상위 30위권에서도 근대 한국화 작가는 단 한 명도 없다. 대부분 국내외 서양 화가에게 자리를 내줬다. 한국 고유의 전통미학이 시장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내 최대 화랑 갤러리 현대가 개관 50주년을 기념해 처음 여는 기획전 ‘한국화의 두 거장-청전과 소정을 만나다’는 이런 한국화의 위기 속에서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를 독특한 예술세계로 승화시킨 두 대가의 미의식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오는 10일 개막해 6월 16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 미술 애호가들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80여 점이 걸린다.

청전이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을 녹여낸 ‘효천귀로(曉天歸路)’는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박명자 갤러리 현대 회장은 “최근 한국화가 대접을 받지 못하면서 기성 작가조차 의욕을 잃고 작업을 기피하고 있다”며 “그 원인을 찾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전시회”라고 설명했다.


두 거장의 요산요수 정신

청전과 소정은 이당 김은호, 의재 허백련, 심향 박승무, 심산 노수현 등과 함께 근대 한국화 6대 작가로 불린다. 조선 말기 화가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운 두 사람은 선인들의 이념, 즉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정신을 기치로 조선 회화와 근대 한국화의 가교 역할을 한 맞수로 꼽힌다.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미감과 정서를 현대화하고자 애썼다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표현기법 면에선 많이 달랐다.

청전은 물기 없는 붓에 먹을 묻혀 그리는 ‘갈필법(渴筆法)’과 점을 찍는 듯한 ‘미점법(米點法)’을 활용해 화면을 근경·중경·원경으로 구성한 이른바 ‘청전 양식’이라는 새 화법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심전이나 소림의 남종화풍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소정은 붓에 먹을 엷게 찍어 그림 윤곽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먹을 칠해나가는 ‘적묵법(積墨法)’과 진한 먹을 튀기듯 찍는 ‘파선법(破線法)’의 독특한 화법을 활용해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했다.

붓끝에서 태어난 秋色

신관에는 소정의 작품, 본관(현대화랑)에는 청전의 작품이 주로 전시된다. 전통 수묵채색화를 근대적인 양식으로 재창조한 청전과 강렬한 준법으로 독특한 수묵화 세계를 구축한 소정의 작품이 전시장을 달리하며 묘한 기운을 뿜어낸다.

청전은 주로 가을 정취를 많이 그렸다. 아마도 나무와 잡풀을 속필로 처리하는 특유의 준법에 효과적일 거라고 판단한 듯하다. 1952년 대구 피란 시절 그린 ‘추강묘연(秋江暮煙)’은 안개 낀 가을 기운을 마음껏 펼쳐 보이는 득의작(得意作)이다. 늦가을 잡목들과 갈대숲 사이로 거룻배가 강가에 기대고 있고, 허리를 굽힌 촌노는 한가로이 강을 바라본다. 안개는 간접조명처럼 사람과 배를 환하게 껴안는다. 제1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출품작 ‘고원무림(高遠霧林)’, 설악산의 깊고 웅장한 모습을 그려낸 ‘설악산’, 금강산 명승을 사계로 재구성한 ‘금강산 12승경’도 한국의 자연을 굵은 삼베발처럼 가식 없이 녹여낸 역작이다.

금강산 작가 소정의 야성

소림 조석진의 외손주인 소정은 금강산에 들어가 살다시피 하며 그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화폭에 담았다. ‘외금강 삼선암 추색’은 소정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수직 구도나 사선 구도에서는 불쑥불쑥 필묵을 쓰면서 분방(奔放)을 추구한 야성이 넘친다. 1973년 작 ‘내금강 단발령’도 단발령 고개에서 멀리 솟아오른 금강산 봉우리를 둔중하게 담아냈다. 하늘로 솟아오른 산세와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대조를 이루며 대가다운 솜씨를 드러낸다.

수직으로 뻗은 금강산의 연봉과 단풍 든 활엽수를 강한 질감으로 표현한 ‘내금강 보덕굴’과 ‘내금강 진주담’도 자연을 품격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한국적 회화를 정립하기 위해 분투했던 소정의 보폭만큼 넓고도 깊다. 갤러리 현대는 전시 기간에 송희경 이화여대 교수(4월 18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5월 10일), 이주현 명지대 교수(5월 24일)를 초빙해 ‘청전과 소정의 미학’을 주제로 강의를 열 예정이다. 관람료 5000원.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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