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왜 독일 유통업체는 영국서 잘나갈까

입력 2019-04-08 17:29  

브렉시트 결정 후 '가성비' 인정받아
유럽서 조달하는 테스코는 타격 전망

정인설 런던 특파원



[ 정인설 기자 ] 요즘 영국 유통업계에선 독일 업체들이 단연 화제다. 알디(Aldi)와 리들(Lidl)이란 저가형 슈퍼마켓이다. 영국 백화점과 온라인 쇼핑몰이 뒷걸음질치는 와중에 두 업체만 예외여서다.

두 곳이 처음부터 잘나갔던 건 아니다. 자동화로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을 쓰며 다른 유럽 국가에선 승승장구했지만 유독 영국에선 고전했다. 1990년대 초반 영국에 진출한 알디와 리들은 20년간 1%대 시장 점유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곳보다 한 푼이라도 싸게”라는 구호만으로는 영국인들의 환심을 사기에 부족했기 때문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상품만 선별해 판다”고 홍보했지만, 허름한 매장에 싼 물건을 내놓는 것만으론 다양한 브랜드 보는 재미에 길들여진 영국인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 이민자들이나 빈민층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만 관심받는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급변했다. 서민 동네에 몰려 있던 알디와 리들이 런던 중심가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 영국 중산층까지 알디와 리들을 찾으면서 생긴 현상이다. 단점이었던 적은 품목 수는 ‘뭘 살까 고민 안 해도 된다’는 장점으로 바뀌었다. ‘안 이쁘다’는 혹평 일색이었던 커다란 바코드 포장도 ‘스캐너가 가격표를 잘 인식해 빨리 계산할 수 있다’는 호평으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알디와 리들에서 쇼핑하면 돈과 시간을 모두 아낄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 1~2%대였던 리들의 영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5.6%로 높아졌다. 알디는 7.6%의 점유율로 영국 진출 30년 만에 영국 5대 유통업체 반열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독일 업체들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반사이익을 얻었다고 분석한다. 경기침체 속에 브렉시트까지 겹쳐 불확실성이 더 커지자 기업 개인 할 것 없이 모두 돈을 덜 쓰려 해 알디와 리들 같은 곳이 잘나간다는 설명이다. 영국은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뒤 3년이 다 되도록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무런 합의 없이 유럽연합(EU)과 결별하는 ‘노딜 브렉시트’ 우려도 여전하다.

브렉시트가 결정될 때만 해도 유통시장에선 테스코와 세인즈베리 같은 기존 영국 업체들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브렉시트로 유럽 대륙과 영국 사이에 무역 장벽이 높아지면 아무래도 독일에 본사가 있는 알디와 리들이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 예상이 빗나갈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 수년 전부터 알디와 리들의 영국 법인은 현지화에 힘쓰면서 유럽 대륙에서 거의 물건을 들여오지 않고 있다. 반면 영국 유통업체들의 수입 의존도는 50%가 넘는다. 판매하는 물건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영국 현지 조달로만은 한계가 있어서다. 수입품의 상당 부분은 유럽 대륙에서 들여온다. 브렉시트가 시행되면 관세 때문에 영국 업체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영국 기업들의 특성상 일자리도 줄어들 전망이다.

영국 유통시장만 놓고 보면 브렉시트의 본래 취지는 무색하게 됐다. 브렉시트를 통해 EU의 정책 개입과 유럽에서의 이민 유입을 줄여 영국 기업의 자율성을 높이고 영국민의 일자리를 보호하자고 했지만 정반대 상황이다. “알디와 리들의 성장은 브렉시트의 여러 아이러니 중 하나”(영국 인디펜던트)라는 지적은 곱씹어 볼 만하다.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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