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선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과의 인터뷰 뒷이야기

입력 2019-04-18 09:30   수정 2019-04-18 18:43

선장의 용인술 ...바다에선 '주량'으로 승부
'김치운반선'까지 띄워 "뱃사람들에게 전하라"

"사람이 전부다" 인재교육에 집중
무역협회장 때 '대학생 해외견문단' 창설
자양아카데미 만들어 '전인교육'나서





(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을 만났다. 동원호의 선장으로서 50년의 항해를 끝마치기 하루 전이었다.

대한민국 산업사의 한 획을 그은 85세의 노장. 그는 묻는 질문마다 예측 밖의 답을 했다. 50년 경영사에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파도 위에서 싸워본 사람에게 육지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50년 뒤 동원그룹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냐고 묻자 “그건 다음 세대의 일이라 아무도 모른다”고도 했다.

그는 바다를 좋아했다. 바다는 거짓이 없고 평등해서 좋다고 했다. 바다에서 배운 것들로 사람을 대하고, 기업을 일궜다.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진정한 1세대 벤처 기업인 김재철 회장의 용인술과 그 일화를 정리했다.


○ ‘바다같은 주량’의 바다 사나이

그의 나이 23세에 첫 원양어선에 승선하고, 26세에 최연소 선장이 됐다. 1960년대 원양어선에는 별별 사람이 다 탔다. 원양어선을 한번 타면 목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에 동네 한량, 깡패, 악사까지 승선을 위한 로비를 할 정도였다. 짧게 수 개월에서 길게 1~2년까지 한 배를 타고 다니면 그야말로 ‘인간의 밑바닥까지 다 본다’는 게 김 회장의 말이다. 20대의 선장에게 삼촌, 아버지 연배의 선원들을 통솔한다는 건 큰 도전이었다.

김 회장은 “적도를 통과할 때가 기회였다”고 했다. 적도를 지날 때 원양어선들은 ‘적도제’를 지낸다. 일종의 고사인데 배 위에서 무사항해와 만선을 기원하며 술을 나눠 마시곤 했다. 그는 “우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주정 부리는 사람까지 다 나온다”며 “그때마다 주량과 정신력으로 일종의 ‘군기’를 잡았다”고 했다. 거친 장정들과 술싸움을 한 뒤에 모두가 취해 잠들면 그는 혼자 목욕통에 들어가 해가 뜰때까지 버텼다. 그 모습을 본 선원들은 백발백중 김 회장에게 꼬리를 내렸다고 한다. 그의 주량은 1999년 무역협회장을 할 때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 동원그룹엔 ‘김치선’이 있다

김 회장이 배를 타던 1960년대에는 세계 어느 항구에 가도 서러움을 겪어야 했다. 한국인은 당시 백인과 일본인만 가는 전용 호텔에 들어가지도 못하던 때였다. 일본이 쓰다 버린 낡은 배를 타야했다. 선원들은 못 돌아올 지 모르는 항해에서 고국과 가족을 한없이 그리워했다. 주머니에 고향 흙을 가득 가져온 사람도 있었고, 유서를 쓰고 오는 사람도 많았다. 선원의 가족들은 배가 뒤집어질 것을 걱정해 집에서 밥그릇도 엎어놓지 않는 풍습이 이때 생겼다.

배 타는 사람들의 바다 위 삶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 회장은 “뱃사람들 섭섭지 않게 하자”고 해왔다. 밥이 그리운 해상 직원을 위해 한 달에 1~2번은 한국 식재료를 실은 운반선을 띄운다. 이 배가 돌면서 전 세계 바다에서 조업하고 있는 배 40여 척, 선장과 선원 등 1000여 명에 전달된다.

7년 전부터는 매년 겨울 동원산업 임직원과 가족 약 100명이 김치를 직접 담궈 보내는 ‘행복김치’도 만든다. 충북 진천의 양반김치 공장에서 만들어 부산항 등을 통해 편지와 함께 실어나른다. 초저온 냉장 상태로 이동돼 1~2개월 뒤 도착하는데 다른 어선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동원만의 문화라고 한다. 정박돼 있는 다른 배들과도 나눠먹기도 한다고. 동원산업이 연간 해상 직원들의 식재료 구입과 운반 등에 쓰는 비용만 약 40억원을 넘는다.


○ 소설가를 원양어선에 태우다

소설 <설계자들>의 김언수 작가는 최근 원양어선을 6개월 함께 타고 오대양을 누비고 왔다. 김 회장이 원양어업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 소설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기획한 일이다. 그는 “독일 광부와 간호가 벌어들인 외화보다 당시 더 많은 외화를 원양어업이 벌어들였고, 수 많은 청춘들이 목숨을 잃기도 한 산업이어서 재조명되길 바란다”고 했다.

책벌레인 김 회장이 소설을 탄생시킨 건 처음이 아니다. 소설가 최인호의 <해신>도 그가 시작한 작품이다. 장보고를 모델로 소설을 집필해달라 의뢰했는데 처음엔 거절당했다고 한다. 3~4년간 장보고연구회 등을 만들어 지원해 소설이 나왔다. 책을 바탕으로 드라마까지 성공적으로 방영됐다. 이 기간만 5년이 걸렸다. 그는 “창의력의 원천을 상상력이다”면서 “책과 신문은 읽는 것은 지금도 나의 창의력의 근본이 된다”고 말한다. 김 회장은 문필가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다수의 교과서에 그의 글이 실렸고, 연설문도 직접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 사람이 전부다

김 회장은 “리더가 연출이고, 직원 모두가 주연이다”고 했다. 한 배를 탄 선장과 선원들처럼 다같이 협력하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다는 지론이다. 사람을 쓰면 오래 쓰는 것도 동원그룹이 50년 간 이어온 기업문화다. 신입사원 면접도 직접 보고, 신입사원 교육도 직접 했다. 신입사원을 뽑는 기준은 “거짓이 없는 지(정직성), 그리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인 지(인성)를 본다”고 했다. “50년 역사상 청탁 받고 뒷문으로 들어온 임직원이 단 1명도 없다”고도 자랑스럽게 말했다.

월 평균 20권 넘는 책을 읽기로 소문난 김 회장은 신입사원과 임원 교육도 강도 높게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력직 채용 시장에서 동원그룹 직원들의 몸값이 높은 것도 이 같은 이유다. 매주 강사를 초청해 수업을 듣는 사내 ‘목요세미나’가 1974년부터 이어져 2100회가 넘었고, 임원들에게는 여전히 ‘독후감’ 숙제를 내준다. 매달 아이들이 있는 집에 책을 보내주는 ‘책꾸러기’ 사업도 10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자양 라이프아카데미’를 매주 토요일 운영하고 있다. 대학생들을 학교와 상관 없이 뽑아 11개 대학에서 수업을 한다. 지식을 넘어선 통찰력을 기르고, 토론문화를 통해 인성 교육까지 할 수 있는 ‘제 3의 대학’인 셈이다. 그는 “요즘 사람과 사람과의 교류, 스승과 제자와 관계, 친구라는 의미마저 사라져가는 게 안타까웠다”며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전부 친구가 되고, 선생님들과도 끈끈한 사이가 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교육에 대한 열의는 1999년 무역협회장 시절에도 꽃을 피웠다. ‘대학생 해외견문단’을 만들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올 기회를 줬다. 이후 많은 대기업들이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동원도 별도의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끝) /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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