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엘리트 교육'의 명암

입력 2019-04-18 18:06   수정 2019-04-19 17:17

양준영 논설위원


프랑스는 ‘대학 평준화의 대명사’로 통한다.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만 합격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 대학 서열도 거의 없다. 하지만 ‘대학 위의 대학’이 존재한다. 국가 엘리트 양성을 위한 소수정예 특수대학인 ‘그랑제콜(Grandes Ecoles)’이다. 정치·행정 분야의 국립행정학교(ENA)를 비롯해 종합기술학교(에콜 폴리테크니크),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고등사범학교(ENS), 파리경영대학 등이 대표적이다.

ENA는 프랑스 정치·행정 분야 엘리트의 산실 역할을 맡고 있다. 한 해 입학생 수 100명이 조금 넘는 학교에서 지금까지 4명의 대통령과 7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해 프랑수아 올랑드, 자크 시라크,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과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가 ‘에나르크(enarque)’로 불리는 ENA 동문이다. 프레데릭 우데아 소시에테제네랄 최고경영자(CEO), 스테판 리샤르 오랑주 CEO 등 경제계의 동문 네트워크도 촘촘하다.

ENA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드골 당시 대통령 주도로 설립됐다. ENA는 상류층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도 고위 공직에 오를 수 있는 통로를 제공했다. 그러나 정·재계 고위직을 ENA 출신이 독점한다는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의 모교인 ENA 폐교를 추진하고 있다고 르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이 전했다. 직접적인 이유는 지난해 말 유류세 대폭 인상으로 촉발된 ‘노란 조끼’ 운동이다. 시민들 사이에서 분출하고 있는 엘리트 계층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려는 조치라고 한다.

하지만 ENA가 사라진다고 엘리트주의라는 구조적 문제가 해소될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설에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프랑스의 일반 대학과 그랑제콜의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ENA가 문을 닫더라도 다른 그랑제콜이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란 지적이다. 마크롱의 계획을 ‘제스처 정치’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ENA 폐교가 아니라 개혁을 주문했다. ENA 입학생 대다수는 다른 그랑제콜인 시앙스포 출신이다. 정원을 늘려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받아들이고, 정부도 ENA 졸업생을 우선 채용하는 관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엘리트주의는 극복해야 할 숙제다. 선거철만 되면 ‘서울대 폐지론’이 단골 공약이다. 정치인들은 서울대를 학벌주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서울대만 없어지면 입시 경쟁과 사교육, 대학 서열화 같은 난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서울대 대신 정점에 오를 사립대학은 어떻게 할 것인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정치인이 너무 많다.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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