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의 미소' 창령사터 나한상, 첫 서울 나들이

입력 2019-04-29 17:27  

국립중앙박물관, 88점 특별 전시


[ 서화동 기자 ]
칠흑 같은 입구를 지나 들어선 전시실. 검은색 좌대 위에 조그만 좌상들이 놓였다. 화강암으로 투박하게 깎은 얼굴과 신체. 은은한 조명 아래 놓인 좌상의 얼굴과 포즈가 제각각이다. 합장하거나 수행하는 모습, 선정에 든 얼굴, 생각에 잠기거나 바위 뒤에 앉은 모습,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기쁨에 찬 모습….

강원 영월군 창령사터에서 나온 나한상들이 첫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29일 개막한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전을 위해서다.

창령사터 오백나한은 2001년 주민의 신고로 존재가 알려졌고, 강원문화재연구소가 이듬해까지 발굴 조사를 통해 형태가 완전한 64점을 포함해 나한상과 보살상 317점을 찾았다. 발굴 과정에서 ‘蒼嶺寺(창령사)’라는 글자를 새긴 기와가 발견돼 사찰 이름이 확인됐고, 창건 시기는 12세기 고려시대임이 밝혀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으로 볼 때 창령사는 조선 중기까진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라한(阿羅漢)의 준말인 나한(羅漢)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불교의 성자를 말한다. 치열한 수행정진으로 깨달음을 얻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났지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 머무는 존재다. 그래서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이 복을 누리도록 돕는 존재인 나한을 모시는 나한신상이 널리 유행했고, 나한상에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 국립춘천박물관에서 특별전을 통해 선보인 창령사터 나한상 88점을 가져왔다. 설치작가 김승영 씨가 참여해 문화재와 현대미술의 결합을 시도한 점이 돋보인다.

1부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나한의 얼굴들’에는 1만4000여 장의 붉은 벽돌로 바닥을 채운 뒤 그 위에 검은색 좌대를 놓고 높이 40㎝ 안팎의 나한상들을 배치했다. 전시장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전시를 통해 어떤 정보를 얻는다기보다 내면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다. 전시실에는 나한상 없이 좌대만 덩그러니 놓인 곳도 있다. 여기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당신 마음속의 나한을 보세요.”

2부 ‘일상 속 성찰의 나한’ 전시실은 파격적이다. 700여 개의 좁고 기다란 스피커를 도심의 빌딩 숲처럼 쌓아올려 둥근 벽을 만들고 스피커 중간에 나한상을 배치했다. 스피커와 나한상으로 둘러싼 원형 공간에 들어서면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종소리, 잡음이 섞여 들려온다. 1부가 자연에서 명상수행하는 나한이라면 2부는 온갖 정보와 소음, 번뇌가 넘쳐나는 도시의 나한이다. 김승영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사색의 공간에서 잠시나마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6월 13일까지.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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