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대중의 얼굴에 내던져진' 그림이 현대미술 탄생시켰다

입력 2019-05-02 17:43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

전영백 지음 / 한길사
560쪽 / 3만2000원



[ 서화동 기자 ] 미술가의 작품이 대중을 만나는 곳이 전시장이다. 프랑스 정부가 주최하는 관전(官展) 살롱은 18~19세기 약 150년 동안 서구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미술 전시회였다. 살롱의 대중적 인기도 엄청났다. 보통 8주간의 전시에 50만 명이 관람할 정도였다. 살롱에는 각양각층의 사람이 몰려들었고, 날선 비평과 평가가 이뤄졌다.

서양의 현대미술이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것도 이런 전시 체제가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야수주의와 입체주의가 현대미술의 선두 주자로 나선 것은 관전 살롱의 보수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민간 주도의 진보적 미술전인 ‘살롱 데 장데팡당’(앙데팡당)과 ‘살롱도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수적인 관학의 전통과 편견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르의 작품을 제한 없이 출품할 수 있었기에 입체주의는 앙데팡당에서, 야수주의는 살롱도톤에서 처음 소개됐고, 하나의 ‘이즘(ism)’을 형성했다.

전영백 홍익대 교수는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에서 “미술의 역사에서 새로운 창작을 선보이고 집단적인 움직임을 형성해 공론을 이끈 장은 전시였다”며 하나의 새로운 조류, 즉 이즘을 형성한 결정적인 순간은 선구적 작품이 대중과 만나게 한 ‘첫 전시’였다고 강조한다. ‘전시의 역사’를 중심으로 20세기 미술사를 다룬 이 책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20세기의 다양한 이즘을 등장시킨 전시를 중심으로 당시 이를 이끈 작가와 비평가, 아트딜러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그런 이름이 지어지고, 세상에 알려졌는지를 흥미롭게 복원한다.

당대 주류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조는 언제나 칭찬보다 비난 세례부터 받아야 했다. 1905년 야수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처음 전시한 살롱도톤에서 비평가 루이 보셀은 알베르 마르크의 청동조각상을 보고 “야수의 우리 속에 갇힌 도나텔로”라고 혹평했고, 야수주의란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특히 논란의 중심에 선 작품이 야수주의의 리더였던 앙리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이었다. 당시 관객은 이 작품의 거친 기법이 미개하다고 느꼈고, “대중의 얼굴에 내던져진 색채 덩어리”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현대의 아방가르드를 알아보는 소수의 감식안이 있었기에 새로운 이즘이 탄생할 수 있었다. 예술가들의 후원자였던 레오 스타인과 거트루드 스타인 남매는 가공하지 않고 강렬하게 여성성을 표현한 데 주목했고, 전시 마감 1주일 전 500프랑의 큰돈으로 작품을 구입했다.

세 아이를 둔 35세의 가난한 작가 마티스는 이들 덕분에 살림이 폈을 뿐만 아니라 파리 예술계의 중심 네트워크에 발을 들였다. ‘세기의 아트딜러’였던 앙브루아즈 볼라르, 베르트 베이유가 다른 야수파 작가들을 후원한 것도 아방가르드 미술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는 입체주의를 형성한 주역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술 체제와 경제구조가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이에 빠르게 동조한 작가가 피카소와 브라크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는 개인 갤러리가 전통적인 살롱 체제보다 우위를 점하게 됐고, 전문 화상 칸바일러와 독점 계약한 덕분에 피카소와 브라크가 입체주의를 이끌 수 있었다고 한다. 피카소의 첫 입체주의 작품으로 알려진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1907년 완성 당시에는 동료 화가와 화상들의 부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1930년대 말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되면서 걸작으로 인정받게 됐다.

20세기는 숱한 이즘의 시대였다. 야수주의와 입체주의가 파리에서 현대미술의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독일에선 표현주의가 등장했다. 스위스에선 뒤샹이 이끈 다다이즘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13년 뉴욕에서 열린 ‘아모리쇼’는 유럽의 아방가르드를 미국 무대에 올리는 계기가 됐다. 3주일 만에 8만8000명이 관람한 이 전시는 유럽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던 미국을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했다. 아모리쇼를 계기로 미국에 유명 수집가들이 등장했고, 새 갤러리와 시장도 생겨났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미술의 터전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전되면서 추상표현주의, 누보레알리즘, 미니멀리즘, 팝아트 등 다양한 미술사조가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야수주의부터 개념미술까지 현대미술의 다양한 사조와 작가, 전시와 흐름을 다 짚고 난 저자는 “더 이상 새로운 이즘은 없다”고 단언한다. 역사의 교훈을 통해 이제는 제한적 범주로 미술을 분리하는 방식의 이즘을 지양하게 됐다는 것. 그럼에도 이즘은 미술을 이해하는 유효한 방식이다.

저자는 “이즘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라며 사람의 성격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듯 야수주의, 큐비즘부터 앵포르멜,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누보레알리즘, 개념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즐기라고 제안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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