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성현 "영업은 정직…많이 만날수록 신뢰 쌓여…빅딜은 그다음부터 나오는 것"

입력 2019-05-10 18:08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성현 "영업은 정직…많이 만날수록 신뢰 쌓여…빅딜은 그다음부터 나오는 것"

김성현 KB증권 사장

승부 즐기는 30년 '기업금융의 달인'
7년째 채권발행 시장 1위 안 놓쳐



[ 김진성/이태호 기자 ]
김성현 KB증권 사장(56)은 ‘승부사’다.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힘을 집중해 승기를 잡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쟁터 같은 국내 투자은행(IB)업계에서 꾸준히 큰 거래를 따내며 승승장구한 비결이다. 수더분한 외모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서 느껴지는 편안한 인상과는 딴판이다.

철쭉이 만발한 이달 초 서울 통의동에 있는 한식당 곰솔에서 김 사장을 만났다. 그가 고객사나 국민은행 대기업영업부 직원들과 자주 찾는 곳이다. 제철 식재료로 조리한 전라도식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낸다.

지난 1월 박정림 사장과 함께 KB증권 각자대표로 취임한 김 사장은 이날 회사 로고와 같은 색인 노란 넥타이를 매고 왔다. 사장 취임 직후 부인이 선물했다고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30년차 IB맨도 인생사를 풀어내는 것은 쑥스러워했다. 그가 “일단 한 잔 하라”며 먼저 술잔을 권했다. 술이 한 잔 넘어가자 오랜 영업생활을 통해 쌓은 능수능란한 입담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승부 즐긴 광양 촌놈

김 사장의 고향은 전남 광양이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나고 자랐다. 김 사장은 “계절에 맞춰 나오는 삼삼한 고향 음식이 좋아 이곳에 자주 온다”며 밥상 한복판에 있는 열무 바구니로 손을 뻗었다. 백운산 인근에서 샐러드용으로 재배한 것이라고 했다. 함께 나온 된장소스가 맛을 더했다. 열무 잎이 된장에 두부와 양파 등을 섞은 소스와 만나자 고소함과 아삭한 식감이 어우러졌다.

2남3녀 중 장남인 그는 일찍 고향을 떠났다. 중학교 졸업 후 전남 지역 인재들이 몰려드는 순천고에 입학했다. 1학년까지는 통학하다가 2학년부터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했다. 통학시간을 아껴 공부에 열을 올렸다.

대학 시절엔 웨이트트레이닝에 빠졌다. 입학하자마자 서울 신촌로터리에 있는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수업에는 지각해도 운동은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교내 보디빌딩대회인 ‘미스터 연세’에 출전해 결선까지 오르며 ‘조각 몸매’를 인정받았다. 김 사장은 당시 사진을 보여주며 “한껏 땀 흘리고 난 뒤 느끼는 개운함과 노력한 만큼 몸이 바뀌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증권맨, IB에 꽂히다

김 사장이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엔 증권 붐이 한창이었다. 증권사 직원들이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받은 회사 주식이 뛰면서 거금을 쥐는 일이 많았다. 증권업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다. 졸업을 앞둔 그는 증권사 문을 두드렸다. “은행도 인기가 많았지만 승부를 즐기는 내 스타일상 역동적인 증권사 업무가 적성에 맞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서울올림픽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1988년 11월, 김 사장은 대신증권 명동지점에서 증권맨으로서 첫발을 뗀다. 당시 명동은 압구정동과 더불어 자산가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혔다. 이곳에서 수탁업무를 하던 그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직장 선배로부터 솔깃한 말을 듣는다. 증권 인수업무가 미국 증권사의 두둑한 수익원이고, 향후 국내 증권사에서도 중심 사업이 될 것이란 얘기였다. 입사 2년차에 과감히 인사부를 찾아가 IB맨으로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경력계획서를 내밀었다. 인수공모부로 자리를 옮겼다. 채권 발행과 기업공개(IPO) 등을 도맡던 부서다.

돼지고기 두루치기와 파전이 테이블에 올랐다. 도톰한 목살을 고추장 고춧가루 양념을 해 센 불에 볶아낸 두루치기는 풍성한 육즙이 매콤함과 어우러져 감칠맛을 냈다. 뒤따라 나온 시금치된장국의 구수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김 사장의 주특기는 IPO였다.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국내 굴지 기업을 줄줄이 증시에 입성시켰다. 대표적인 기업이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이다. 호남석유화학은 1991년 공모가 주당 9200원에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 28년 동안 기업가치를 30배가량 높였다.

“교육체계가 안 잡혀 있던 시기였죠. 선배들의 영업방식과 기업분석 자료를 보면서 스스로 깨쳐야 했습니다. 당시 부장이던 임용택 전북은행장이 쓴 분석보고서가 논리정연해 특히 많은 도움이 됐죠.”

김 사장은 실적을 쌓으며 초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2000년, 입사한 지 12년 만에 기업금융팀장 자리를 꿰찼다. 당시 나이는 37세였다.

40대에 중소 증권사에서 새 도전

이야기꽃이 한창 필 때 돼지고기 수육과 삭힌 홍어, 잘 익은 배추김치가 함께 나왔다. 삼합 아래 정갈하게 깔린 쪽파가 눈에 띄었다. 함께 먹으니 쪽파의 알싸한 맛이 삼합의 풍미와 잘 어울렸다. 이어서 나온 낙지숙회와 조개젓도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을 뽐냈다.

김 사장은 팀장으로 승진한 지 3년 만에 대신증권을 나왔다. 금세 임원이 될 것이라고 평가받던 시기였기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보였다. 새 출발지가 중소 증권사인 한누리투자증권이란 점에서 더 그랬다.

김 사장은 “먹거리로 떠오른 회사채시장에서 제대로 벌어보자는 생각에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대규모 차입을 통해 몸집을 불린 기업들이 대거 무너지자 자본시장에선 기업이 보증 없이 자기 신용만으로 채권을 찍는 게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한누리투자증권은 당시 국내 IB시장에서 20위 정도에 불과했지만 거래를 많이 따오면 그만큼 성과급을 많이 주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는 국고채를 사고파는 일이 주업무인 채권영업부서에 회사채 판매를 맡기는 대신 직접 기관투자가들을 만나 영업을 했다.

“세일즈(판매)의 힘이 한창 강해지던 때라 한누리투자증권에서 충분히 승부를 볼 수 있다고 봤습니다. 10년 안에 채권발행시장 1위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일 5~6개 기업을 만나며 영업에 사활을 걸었죠.”

김 사장의 다짐은 현실이 됐다. 한누리투자증권은 2008년 국민은행에 인수돼 KB투자증권으로 이름을 바꾼 뒤 매년 순위를 높이며 2011년 채권발행시장 1위에 올랐다. 이후 2012년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실패도 맛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부동산 금융사업에서만 700억~800억원의 손실을 봤다. 2014년엔 금융사 최초 영구채(신종자본증권)인 JB금융지주의 상각형조건부자본증권의 투자 수요를 모으는 데 실패하기도 했다.

“이젠 완전체 IB로 도약할 때”

김 사장이 30년간 IB시장을 누비며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영업은 정직하다’이다. 일단 만나야 하고, 많이 만날수록 신뢰관계는 더 단단히 형성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거래는 그다음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또 다른 노하우는 없느냐”는 물음엔 “절제”라는 의외의 답을 내놨다. 김 사장은 “내실을 갖추기도 전에 돈부터 빌려 사업을 키우는 회사는 꼭 문제가 터진다는 걸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배웠다”며 “이런 기업이 자금 조달을 자주 하기 때문에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참아야 한다”고 했다.

그가 그린 IB사업의 청사진 역시 균형 잡힌 성장으로 꽉 차 있다. 주특기인 채권 발행 주관 외에도 주식 발행, 인수합병(M&A) 자문, 구조화금융 시장 등 전 영역에서 정상권에 오르는 것이 목표다. 김 사장은 “올해 주식발행시장에서 3위 안에 들어 성과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중소·중견기업을 상대로 한 영업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KB증권은 올초 IB부문에 별도 본부로 있던 중소·중견기업(SME) 조직을 확대해 기업금융2본부 산하에 편입시켰다. 대기업을 상대로 쌓은 자금 조달 기법을 SME 조직에 이식하자는 취지다. 기업금융본부와 신기술사업금융 및 프라이빗에쿼티(PE) 등을 맡은 성장투자본부와의 협력관계도 더 강화할 방침이다.

“기존 경제성장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그 축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갖춘 중소·중견기업으로 옮겨갈 겁니다. 이들이 성장해 본격적으로 자본시장을 활용할 때가 되면 그동안 우리가 부지런히 다진 신뢰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보게 될 겁니다.”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로 KB증권의 이 같은 전략은 날개를 달게 됐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8일 정례회의에서 KB증권의 단기금융업 인가 안건을 통과시켰다.

KB증권은…

KB금융그룹 계열 증권회사다. 지난해 말 기준 자기자본 4조3770억원으로 업계 5위다. 2016년 현대증권을 인수한 뒤 2017년 1월 통합법인이 출범하면서 단숨에 업계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를 받으며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도약했다. 2013년부터 6년 연속 채권발행시장 1위를 기록하는 등 기업금융 분야 강자로 평가받는다. 2017년 통합법인 출범 이후 각자대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박정림 사장이 자산관리(WM)와 세일즈앤드트레이딩(S&T) 및 경영관리 부문을, 김성현 사장이 IB와 홀세일, 글로벌 사업, 리서치센터를 맡고 있다.

■약력

△1963년 전남 광양 출생
△1982년 전남 순천고 졸업
△1989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88년 대신증권 입사
△2000년 대신증권 기업금융팀장
△2003년 한누리투자증권 기업금융팀 이사
△2005년 한누리투자증권 상무
△2006년 한누리투자증권 전무
△2008년 KB투자증권 기업금융본부장(전무)
△2015년 KB투자증권 투자은행(IB) 총괄
△2016년 KB투자증권 IB총괄 부사장
△2017년 KB증권 IB총괄 부사장
△2019년 KB증권 대표이사 사장


김성현 사장의 단골집 곰솔

싱싱한 열무에 돼지고기 싸 먹는 맛 일품

서울 통의동(서촌)에 있는 곰솔은 광화문에 근무하는 은행원과 공무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오래된 한옥에서 전통 음식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한정식집으로 유명하다.

메뉴는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수시로 바뀐다. 전채 요리부터 디저트까지 코스로 제공한다. 점심은 1만9000원, 2만3000원, 3만원 등 일반 한정식집과 비교해 합리적인 편이다. 저녁은 3만원부터 5만5000원까지 다양하다.

열무에 된장을 바른 돼지고기를 싸 먹는 맛의 조화가 일품이다. 사포닌과 칼슘이 풍부한 열무는 입맛을 돋우는 효과가 있어 전채 요리로 제공하고 있다. 무청 시래기를 비롯해 부추전 생선구이 등 푸짐한 밑반찬이 나온다. 깔끔한 맛의 두부김치와 쪽파에 올려진 삼합도 즐길 수 있다.

식단과 조리는 김남 사장이 16년째 관장하고 있다. 한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집들이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준비하고 편안한 식사 자리를 제공해 단골들과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진성/이태호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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