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꽃밭처럼 꾸미고 싶었는데…팬들 사랑만 생각하며 전진"

입력 2019-05-23 17:36  

폐관 앞둔 극장 정미소의 마지막 무대 오르는 윤석화

2002년 목욕탕을 무대로 개조
결국 경영난으로 문 닫기로



[ 김희경 기자 ]
1975년 열아홉 살에 연극 무대에 처음 올랐다. 민중극단의 ‘꿀맛’이란 작품이었다. 앳된 모습이지만 깊이 있는 표정과 강렬한 모습이 많은 사람을 사로잡았다. ‘배우 윤석화’는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윤씨는 꾸준히 무대에 오른다. 이제 편히 지낼 법도 하지만 더 치열해졌다. 대담한 도전도 계속된다. 내년에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모노 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연한다. 일본 홍콩 등 아시아 무대에 오른 적은 있지만 연극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공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씨는 다음달 11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도 이 작품을 올린다. 그가 17년간 운영해온 정미소의 폐관을 앞두고 올리는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 22일 정미소에서 만난 윤씨의 얼굴엔 다양한 표정이 스쳤다. 새로운 무대를 향해 전진하는 설렘과 함께 정든 무대를 떠나야 하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났다. 윤씨는 “무대는 허구의 공간이지만 선 하나라도 잘못 그으면 다시 그려야 하는 완성도 높은 ‘동양화’ 같다”며 “그래서 더 외로운 작업이지만 관객들과 끊임없이 호흡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1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 공연

그가 1인극인 이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두 번째다. 1992년 영국 작가 아널드 웨스커(1932~2016)의 원작을 임영웅 연출로 초연한 무대에 섰다. 10개월에 걸쳐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당시 원작자 웨스커가 쓴 가사에 곡을 붙인 음악감독 최재광이 이번 공연에도 참여했다. 연출은 연극 ‘레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등을 올린 김태훈이 맡았다. 이번 공연도 큰 화제를 모으며 관람권 판매 1주일 만에 예매율이 60%를 넘었다.

작품은 가수이자 미혼모인 주인공이 열두 살 딸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구성된다. 영국 공연을 앞두고 ‘오픈 리허설’ 방식으로 이뤄지는 이번 공연에선 대사는 한국어, 노래는 영어로 한다. 영국에선 대사도 영어로 한다. 그는 현지 스피치 코치의 도움을 받아 발음 교정에 힘썼다. “밤새 컴퓨터를 켜놓고 혼자 연습을 했어요. 미국식 발음에 익숙해져 있는데 일일이 영국식으로 바꾸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웨스커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일부 장면 리딩을 보고 ‘넌 이미 충분하다’고 해서 그제서야 안심했죠.”

무대에선 모두 다섯 곡의 노래를 열정적으로 불러야 한다. 그는 “워낙 에너지가 강한 역할이다 보니 노래를 부를 때도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며 “매일 네다섯 시간씩 연습하며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7년 전에도 이 작품을 런던 무대에 올리려 했지만 불발됐다. 시간이 흘러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뭘까. “동시대를 살며 함께 울고 웃었던 여배우가 세계 무대에 우뚝 선다면 ‘저 배우를 사랑하길 참 잘했다’고 관객들이 생각하지 않을까요? 어렵고 힘들지만 팬들의 이런 마음만 생각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경영난으로 문 닫는 정미소

정미소 폐관작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윤씨는 2002년 건축가 장운규와 함께 오래된 3층짜리 목욕탕 건물을 매입해 새롭게 꾸몄다. 박정자 주연의 ‘19 그리고 80’부터 ‘서안화차’ ‘사춘기’ 등 50여 편의 연극을 올렸다. 그는 정미소 얘기가 나오자 눈물을 연신 글썽였다. “저와 후배들이 의미있는 공연을 올릴 수 있도록 폐허의 공간을 꽃밭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열심히 했지만 운영난으로 문을 닫게 돼 많이 아쉽습니다.”

최근 대학로엔 정미소처럼 문을 닫는 극장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윤씨는 “나처럼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무대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며 “예술이 발전하는 과도기적 단계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분들이 너무 지치지 않도록 지원 방안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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