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행보 vs 시장 혼선…靑도 못 말리는 윤석헌의 '직진'

입력 2019-06-11 18:06   수정 2019-06-12 17:29

금융위·금감원 묘한 기류에
중간에 낀 금융사들만 난감



[ 임현우 기자 ] “조정 결과를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후폭풍을 어떻게 합니까. 결정을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을 만나 키코(KIKO) 분쟁 조정 문제의 처리 방안을 전해들은 뒤 이런 ‘우려’를 강하게 전달했다고 한다. 키코는 2008년 환율 급등기에 수출 중소기업의 줄도산을 불러온 외환파생상품이다. 윤 원장은 교수 시절부터 “키코는 사기”라고 비판해왔다. 대법원은 “불공정 계약이 아니다”고 판결했지만, 윤 원장은 취임 후 은행의 불완전판매 소지를 따져야 한다며 재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은행들이 조정을 수용할 의무가 없어 피해 기업들만 ‘희망고문’에 시달릴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강력한 금융개혁 강조하는 ‘소신파’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지난 10일 “키코가 분쟁 조정 대상인지 의문”이라며 회의적 시각을 내비쳤다. 윤 원장은 11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키코는 분쟁 조정 대상”이라고 맞받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강제성에 한계가 있다고 해도 감독기관으로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게 윤 원장의 생각”이라고 했다.

경영학 교수 출신인 윤 원장은 강력한 금융개혁을 강조하는 ‘소신파’로 유명하다. 윤 원장이 추진한 역점 과제를 놓고 금융당국 안에서 이견이 표출된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윤 원장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폐지된 금감원 종합검사를 4년 만에 부활시켰다. 상급기관인 금융위가 부정적 반응을 보였음에도 밀어붙여 지금 국민은행, 한화생명, 메리츠화재 등이 검사를 받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 때는 금감원의 감리 결과에 금융위가 재감리를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출범을 앞둔 특별사법경찰을 놓고도 자체 인지수사권을 요구하는 금감원과 제동을 걸려는 금융위가 정면 충돌했다. 금감원은 현행 10억원인 회계 부정행위 신고 포상금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금융위는 2년 만에 포상금을 또 올릴 필요가 없다고 ‘불가’ 입장을 못 박았다.

“경청 잘하지만, 소신은 잘 안 바꿔”

윤 원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스타일을 ‘외유내강’이란 말로 요약한다. 수행비서 없이 백팩(배낭)을 메고 출근하고, 금감원 직원들에게 늘 존댓말을 쓰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다. 사내방송 일일 DJ를 맡아 방탄소년단 노래를 소개하는가 하면 ‘주말 출근 자제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부드러운 리더십은 지난해 두 전직 원장(최흥식·김기식)의 연이은 사퇴로 뒤숭숭해진 금감원 내부 조직을 빠르게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는 ‘직진 스타일’이라는 평도 공존한다. 금감원이 금융위에 끌려다니지 않고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학자로서의 지론이 더해져 과감한 행보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감원의 한 팀장은 “우리가 봐도 조마조마할 때가 있지만 수장이 세게 나가니 직원들이 힘을 받고 일하는 면도 있다”고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윤 원장이 과거 금융행정혁신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어떤 의견을 전달하든 매우 진지하게 경청했지만 결론은 본인의 소신대로만 내리더라”고 전했다.

정책 엇박자에 금융사 난감

금융위와 금감원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에 가장 불안해하는 건 중간에 낀 금융사들이다. ‘정책 엇박자’가 계속되면서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한 보험사 임원은 “금융위와 금감원의 힘겨루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지금은 유독 심한 편”이라며 “양쪽 눈치를 동시에 봐야 하니 힘들다”고 했다. “금융사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표현까지 공개적으로 써온 윤 원장이 민간 금융사를 지나치게 압박한다는 볼멘소리도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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