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가치를 찾는 '합의 후 합의'

입력 2019-06-13 16:58  

경영학 카페

골격을 바꾸는 재협상과 달리
조건 추가해 더 많은 가치 창출



충북 청주의 한 생명공학기업 대표는 개발 중인 신약의 판권을 글로벌 제약회사에 넘겼다. 두 달 동안 밤잠까지 설치면서 얻은 극적인 합의였다. 하지만 계약 이후에도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과연 이것이 최상의 결과일까’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는 제약회사에 전화해 선금을 더 받고 싶다고 했다. 제약회사 측은 깜짝 놀라며 거래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 물었다. 그는 후속 연구개발을 하고 현금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털어놓았다. 제약회사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향후 2년간 추가 연구개발에 대한 계약 우선권을 제약회사가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합의로 그는 회사 운영자금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게 됐고 제약회사는 계약우선권을 가지게 됐다. 둘 다 초기 계약서에는 없던 항목이었다. 이로써 양측 모두 더 많은 가치를 얻게 됐다. 이 같은 협상 방법을 ‘합의 후 합의’라고 한다. 초기 합의를 한 다음에 협상하는 합의다. 재협상과의 차이는 협상 조건을 전면적으로 재수술하지 않고 일부만 조정한다는 점이다. 이 방법은 당초 포함되지 않았던 쟁점들을 추가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합의 후 합의에 거부감을 가진다. 이미 하기로 한 거래인데 이제 와서 재협상하자는 것 같은 인상을 상대에게 주고 싶지 않아서다. 자칫 잘못하면 계약이 통째로 무산될 소지도 있다. 그런데도 왜 합의 후 합의를 고려해야 하는가.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디팩 맬호트라 교수와 맥스 베이저먼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합의 후 합의는 양측의 합의 이행을 더욱 공고하게 해 준다. 이미 계약서에 서명했다는 것은 서로 협력할 의사가 있음을 뜻한다. 여기에 약간의 조건을 추가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것은 향후 이행 과정에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불이익 가능성을 줄여준다. 이에 따라 계약의 불확실성도 줄어든다.

둘째, 상호 정보 공유가 활발해진다. 일단 계약서에 서명하면 양측은 서로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고 서서히 신뢰감이 형성된다. 신뢰하면 자신의 정보를 기꺼이 내놓는다. 협상 중간에 털어놓지 않았던 정보도 합의 후 합의 과정에서 공유하는 효과가 있다.

셋째, 양쪽은 또 하나의 ‘배트나(BATNA: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를 갖게 된다. 협상이 결렬됐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대안을 뜻한다. 여기서는 기존의 합의가 대안이 되는 셈이다. 새로운 조건이 제시되더라도 수락하지 않으면 기존 계약대로 하면 된다.

합의 후 합의가 성공하려면 필요한 요건이 있다. 거래를 취소하려고 한다든가 양보를 더 얻어내려는 의도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전달 방법이다. 말투는 부드럽고 태도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러면서 기존 합의보다 개선된 합의를 모색하는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이것이 협상의 파이를 키우고 서로 가질 수 있는 가치를 극대화하는 고수의 비법이다.

그런데도 합의 후 합의는 협상 도구로서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거나 알고 있더라도 행여 기존 합의를 깨뜨릴까 봐 또는 과연 이 방법이 이익을 가져다 줄까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태석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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