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와서야 성추행이 범죄인 줄 알았다"…여성 인권 유린 심각한 北

입력 2019-06-18 16:36   수정 2019-06-18 16:44

강간죄 처벌 연간 고작 5건

한변 국내 첫 북한 여성 인권 토론회
24명 탈북자 실제 피해사례 공개
김정은 정권이후 오히려 성범죄 형량 완화



북한에서 성폭행 성추행 등 성범죄가 급증하고 있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 여성 인권이 심각한 상황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활성화되고 있는 장마당(시장)에서 권력형 성폭력이 급증하는 추세이며 북·중 접경지역에서 벌어지는 중국인들의 탈북 여성에 대한 인신매매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의 변화를 위해선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북한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대표적 보수성향 변호사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북한내 여성 인권 유린 사례를 모아 올 하반기 UN에 제출할 예정이다.

◆탈북 여성 “성추행·성폭행이 범죄라는 인식 없어”

한변은 1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 1층에서 ‘북한여성 성폭력 사례와 개선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탈북 여성 24명의 실제 성범죄 피해사례가 처음으로 국내에 공개됐고, 성폭력으로부터 북한 여성을 지키기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우리나라에서 북한 여성 인권만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피해사례에 따르면 30대 탈북 여성A씨는 “자신이 겪은 일이 ‘성추행’이었다는 사실을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서는 여자들의 몸을 만지는 일은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 그게 잘못된 일인지도 몰랐다”고 토로했다. 특히 “지나가는 남자가 가슴에 손을 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버스에서 남자가 성추행을 해도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20대 중반의 탈북 여성 B씨는 “북한 간부들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성폭력을 저지르는 데, 이러한 행위가 범죄이며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탈북해 중국에 머물면서 알게 됐다”고 했다.

성범죄에 따른 2차 피해 역시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50대 여성 탈북자 C씨는 “여성이 일방적으로 당해도 여자가 행실이 온전치 못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돈다”며 “북한에서 여성은 인간 취급도 못받는 존재”라고 말했다. 탈북 여성 상당수는 북한에서 겪은 많은 성범죄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탈북여성은 “남자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며 “밤마다 남자들한테 쫓기는 악몽을 꾸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 2010~2014년 통일연구원 면접조사 결과 응답자의 48.6%는 북한 여성에 대한 성폭행·성희롱이 ‘흔하다’고 답했다.

북한인권정보센터의 북한군 인권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서 군 생활 경험이 있는 탈북자 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상자 중 34.3%가 군사 복무 중 직접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보고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연간 성범죄 5건뿐이라는 北

이렇게 성범죄에 광범위하게 노출된 배경은 북한내 성범죄에 대한 처벌 조항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탈북민 출신 현인애 통일연구원 객원 연구위원은 “남한 형법에 성폭행관련 범죄 조항이 10개이고, 52개항의 특별법이 추가로 제정한 상태인 반면 북한 형법에는 유사강간, 강제추행에 관한 처벌조항이 없다”며 “성추행도 북한에서는 범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내에서는 성범죄 처벌 규정은 있지만 실제 적용 사례는 거의 없다. 2017년 7월 북한 정부가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서 강간죄로 처벌받은 건수는 2015년 5명에 불과하다. 같은해 한국에서 성범죄 발생건수가 3만건인 것과 비교하면 대부분 성범죄가 은폐되고 있는 것이다.

현 객원 연구위원은 “2017년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북한에 여성폭력 신고 및 처리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요청한 바 있으나, 공식 통계자료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북한정부가 성폭력에 대한 통제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탈북민 출신 채경희 총신대 교수는 “권력형 성범죄를 강하게 처벌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와 반대로 김정은 정권 이후 형량을 감소시켜 권력을 가진 자들을 비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 좌장을 맡은 왕미양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은 “북한 여성은 완전히 ‘무법천지’에 노출된 것”이라며 “여성의 활동에 대해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마당,접경지역서 인권 유린 심각

북한에서 가장 발생빈도가 높은 것은 권력형 성폭력이며 교화소 구금소 시장 등에서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객원 연구위원은 “최근 북한 여성의 생존 기반이 되는 장마당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남성 관리원, 관리소장 등에 의해 성폭행이 빈번하게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발생하는 중국인들의 인신매매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탈북 여성들이 중국 남자에게 팔려나가지 않으면 강제 북송을 당하기 때문에 성폭행을 당하고도 하소연할 때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객원 연구위원은 “접경지역과 구금소에서 탈북 여성에 대한 강제 결혼와 강제 낙태가 빈번하게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성행하고 있는 부패가 여성의 성폭행을 조장하는 조건이라고 분석한다. 현 객원 연구위원은 “간부들 속에서 부정부패는 법집행에서 공정성을 파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힘없는 여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여성의 인권 개선을 위해선 탈북여성과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채 교수는 “주민의 기본권 보장이 곧 체제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북한당국이 선진국형 성평등 관련 법들을 강하게 추진할리가 없다”며 “북한이탈 주민 여성이 2만명을 웃도는 만큼 이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성폭력 실태를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송현진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성폭력 문제해결 경험이 많은 한국 여성단체들이 탈북민 여성단체와 협력해 북한 여성 조직을 적극적으로 견인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내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경험을 교류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태훈 한변 회장은 오는 20일 오헤아 킨타나 UN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을 만나 북한 여성 인권 유린 실태와 탈북자 북송 문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또 10월 UN총회에서 북한의 인권유린실태에 대한 각국의 관심을 촉구할 예정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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