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거짓이란 현상, 침묵이란 본질

입력 2019-06-18 18:09  

최연호 < 성균관대 의대 학장·소아청소년과 i101016@skku.edu >


본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외부 공공기관 실습을 수행하던 첫날, A조 학생들이 B조의 실습 장소로 갔다는 것을 깨닫고 몰래 B조 학생들과 실습을 바꿨다. 그리고 마지막 발표 때에는 실습도 안 했으면서 원래의 조로 발표를 했다. 실습 장소 직원의 제보로 모든 것이 밝혀졌고 긴급학장단회의가 소집됐다. 진실을 추구해야 할 예비의료인으로서 품격을 훼손하고 학교 명예를 실추시킨 탓이다.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면담해보니 거짓된 행동은 잘못됐지만 효율성을 위해서였다는 변명이 대부분이었다. 학생들의 잘못은 무엇일까? 거짓 행동의 주동자를 벌하는 것이 처방책일까?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출발 73초 만에 공중 폭발해 7명의 우주인이 사망했다. 미국 정부는 바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먼을 위원으로 선임했다. 조사 결과 연료탱크의 고무패킹 결함으로 연료가 새면서 폭발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나온 현상일 뿐 사고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 강추위에 고무링이 파손될 확률이 상당히 높아 실무진에서는 발사 연기를 계속 요청했다. 하지만 윗선에서 정부 지원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PR 문제 등으로 이를 무시한 채 발사를 강행했다. 파인먼은 이를 토대로 NASA를 비판하며 사고의 가장 근본적 원인은 조직이 보여준 ‘침묵’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모든 학생을 모아 학장단회의 결과를 설명했다. 이번 일이 일부 학생의 거짓된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의대 교육 과정이 성적이라는 결과만을 중시한 탓에 성적을 위해선 과정을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우리가 하는 교육 시스템의 잘못을 인정했다. 하지만 더 깊은 본질이 숨어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학생들은 가끔 출석을 체크하고 몰래 나가버린다. 여러 명이 없어지자 교수는 모두 다시 출석할 때까지 수업을 중지하고 일장 훈계를 한다. 정작 ‘출튀’ 학생은 자리에 없고 정상적인 학생만 혼난다.

본질은 우리의 침묵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조직에서 그들에게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리고 중지시켜야 했다. 침묵으로만 바라본 결과가 나에게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과연 계속 침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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