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머지않다'는 시간, '멀지 않다'는 거리에 써야죠

입력 2019-06-24 09:00  

특히 '머지않다'(시간적으로 멀지 않다는 뜻)는
'멀지 않다'(공간적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와
구별되는 말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가 아가 우지마라, 비야 비야 오지 마라, 저기 가서 노자….’ 1930년대 암울하던 일제치하에서 우리 국민을 일깨운 것은 브나로드운동이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주도한 이 계몽운동으로 비로소 한글의 대량 보급이 가능해졌다. 당시 문자보급 교재로 쓰인 <한글공부>(1933년 동아일보사)를 보면 우리말의 변천 과정에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많다. 위의 구절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머지않아’는 한자어 ‘불원간’과 같은 뜻

우선 눈에 띄는 게 ‘우지마라, 오지 마라, 노자’ 같은 말이다. 각각 ‘울다, 말다, 놀다’가 활용한 모습이다. 모두 ‘ㄹ탈락 용언’인데 현행 맞춤법에 따른 표기와는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ㄹ탈락 용언은 활용할 때 어미 ‘-네, -세, -오, -ㅂ니다’ 앞에서 ㄹ받침이 탈락하는 게 원칙이다(한글맞춤법 제18항). 뒤집어 말하면 ‘울다’ ‘놀다’는 어미 ‘-지/-자’ 앞에서 어간이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울지’ ‘놀자’가 현행 표기 규범인데, 당시만 해도 이를 ‘우지’ ‘노자’로 적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예전부터 ‘ㄹ받침 용언’이 ‘ㅈ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ㄹ받침이 탈락하기도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널리 알려진 대중가요 “홍도야 우지마라~”의 표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규범상으론 ‘울지 마라’가 바른 표기다.

이런 ㄹ탈락 현상이 예외적으로 굳어져 단어로 인정된 게 있다. ‘마지못하다(←말+지+못하다)’ ‘마다하다(←말+다+하다)’ ‘머지않다(←멀+지+않다)’가 그런 사례다. 특히 ‘머지않다’(시간적으로 멀지 않다는 뜻)는 ‘멀지 않다’(공간적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와 구별되는 말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머지않다’가 분화돼 굳어진 까닭을 한자어 ‘불원간(不遠間)’에서 찾았다. 즉 ‘(시간적으로) 멀지 않아’란 뜻인 ‘불원간’ 자리에 ‘멀지 않아’가 대신 들어가 쓰이다가 ㄹ받침이 탈락하면서 아예 한 단어로 인식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말아라/마라’는 직접명령, ‘말라’는 간접명령형

‘우지마라’ ‘오지 마라’에서 보이는 ‘마라’는 동사 ‘말다’가 활용한 꼴이다. 이 말은 명령형으로 쓸 때 ‘마라/말아라/말라’가 함께 쓰이기 때문에 헷갈리기 십상이다. 예전에는 ‘말아라’는 비표준형이었다. ‘말아라’는 ‘말다’에 명령형 종결어미 ‘-아라(어라)’가 붙은 형태다. 본래 용언의 어간 끝 받침 ‘ㄹ’은 어미 ‘-아라(어라)’ 앞에서 줄지 않는다. ‘울어라, 말아라, 놀아라’ 식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이 ‘말다’란 단어는 관행적으로 ‘ㄹ’이 줄어진 형태로 쓰였다. “~하지 마”가 전형적인 용례다. 이는 ‘말아라→마라’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전에는 “늦지 말아라”라고 하면 틀리고 “늦지 마라”라고 해야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말아라’도 워낙 많이 써서 2015년 12월 국립국어원은 이 역시 표준형으로 인정했다. 지금은 ‘말아라’와 ‘마라’가 모두 맞는 표기다.

그러면 ‘말아라/마라’와 ‘말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말아라/마라’는 직접명령형이고, ‘말라’는 간접명령형이다. ‘말라’는 신문 등에서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상대로 쓸 때, 또는 시험문제 등 간접적인 명령형을 취할 때 쓰는 ‘하라’체다. 이는 직접명령형인 ‘해라’체와 달리 어간에 ‘-라’가 바로 붙는다. 가령 ‘보고서를 만들라/분산 투자하라/전문가가 되라’처럼 쓰는 특수한 명령꼴이다. 직접명령형인 ‘만들어라/투자해라/돼라(←되어라)’와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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