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길 따라 광활한 갈대밭…벌교 갯벌의 끝, 꼬막 캐는 섬마을

입력 2019-07-21 15:26  

여행의 향기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37) 전남 보성 장도



소설 태백산맥에 ‘외서댁과 꼬막’이 등장한 이후 벌교 꼬막은 꼬막의 대명사가 됐다. 꼬막이 나오는 벌교 갯벌 중에서도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이자 벌교읍의 부속 섬인 장도는 벌교 꼬막의 최대 산지다. 장도행 뱃길의 시발점인 벌교는 꼬막의 고장이자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동시에, 노래 부용산이 탄생한 곳이다. 또 구한말에는 담살이(머슴) 의병장 안규홍이 이끌던 의병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벌교의 상징은 갯벌이다. 벌교란 지명 자체가 뻘개 즉 갯벌이 있는 바다에서 유래했다. 갯벌이 있어서 벌교가 있고 벌교의 삶과 역사가 있다.

오염물질 걸러주고 자연재해 막는 갯벌

서남해안과 섬사람들의 삶은 이 갯벌이 있어서 지속가능했다. 많은 사람들은 갯벌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인이 박이게 듣고 있지만 정작 관심은 크지 않다. 농업 생산성의 10배 이상이나 되는 갯벌은 어민들의 생활 터전이다. 갯벌은 어류나 조개류의 산란장이자 서식지이고 양식장이기도 하다. 갯벌에는 내륙의 하천을 따라 내려온 영양염류가 많고 탁한 물빛 때문에 어류들이 포식자를 피해 서식하기 좋다. 4000㎢당 10t의 어류를 길러낼 정도로 생산성이 높다. 갯벌은 또 오염물질을 걸러내주는 정화조 역할을 한다. 갯벌의 가치를 제대로 안다면 갯벌을 매립하는 행위가 얼마나 큰 손실이고 위험천만하며 멍청한 짓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지금은 보성군에 속해 있지만 벌교는 오랜 세월 보성과는 다른 행정구역이었다. 본래는 장흥도호부 산하 낙안군 소속이었다. 근교의 보성, 장흥, 순천 등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권이었던 것이다. 1908년 낙안군이 해체돼 낙안의 땅들은 보성과 순천으로 갈라졌다. 한때는 벌교가 보성보다 규모가 더 컸다. 1935년 벌교면의 인구는 2만4254명으로 보성면(1만2260명)은 물론 인근의 순천읍(2만1938명)보다도 많았다. 그래서 같은 행정구역이지만 차 문화권인 보성과 갯벌 문화권인 벌교는 여전히 그 색깔의 차이가 확연하다. 벌교 갯벌은 여자만 갯벌의 일부다. 여자만은 고흥반도와 여수 화양반도를 양대 축으로 하는 큰 규모의 만이다. 여자만은 남쪽으로 그 이름의 유래가 되는 여자도부터 북쪽으로는 내만 깊숙이 벌교와 순천까지 포괄하는 광대한 영역이다. 여자만 갯벌은 벌교를 관통해 흐르는 벌교천과 순천의 동천에서 내려온 토사물들이 이룩한 뻘밭이다. 모래가 섞이지 않은 결 고운 이 갯벌을 사람들은 참뻘이라 부른다. 7.5㎢의 여자만 갯벌은 2006년 1월 20일 연안습지로는 국내 최초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여자만 갯벌의 일부인 벌교 갯벌에서는 200여 종의 어류와 250여 종의 갑각류, 200여 종의 연체동물, 갯지렁이류 100여 종과 바닷새 5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 이 벌교 갯벌의 끝에 장도가 있다.

광활한 갈대밭, 물새들의 군무 생태 학습장

장도를 오가는 여객선은 두 곳에서 뜬다. 한 척은 장암에서 떠나는 차도선이고 또 한 척은 사람만 탈 수 있는 여객선인데 벌교 읍내 벌교천 다리 아래 포구에서 떠난다. 2010년 37t급 차도선 장도사랑호가 운항을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주민과 외지인들은 시간이 덜 걸리는 차도선을 이용하고 있다. 반면에 수십 년 동안 장도와 벌교 읍내를 오가던 여객선 수미호는 승객이 줄었다. 장도사랑호로는 30분이면 족한데 수미호로는 1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여행자들에게 장도로 들어가는 뱃길은 장암보다 벌교읍내에서 떠나는 수미호의 뱃길이 몇십 배 더 매력적이다. 여객선은 바다로 나가기 전 벌교천 하구 수로를 4㎞ 정도 지나간다. 여객선이 순천만 갈대밭 같은 습지와 갯골을 지나면 그 이국적인 풍경에 여행자들은 내내 탄성을 지른다. 수로 양옆으로 펼쳐진 광활한 갈대밭과 갯벌에 나와 먹이를 찾는 물새들의 군무. 바로 눈앞에 생태 학습장이 펼쳐진다. 수로 주변에 건물이 많이 들어선 것이 다를 뿐 벌교천 뱃길은 순천만 갈대밭 뱃길에 못지않다. 수로 뱃길의 길이는 순천만 수로보다 오히려 더 길다. 하굿둑을 막으면서 강과 바다를 연결해주던 대부분의 뱃길은 사라져버렸다. 둑으로 막혀 있지 않은 몇몇 수로도 어선들이나 오가고 순천만 수로로는 관광선이나 드나들 뿐이다. 그래서 강의 하구 수로를 지나 바다로 나가고 섬까지 이르는 여객선은 수미호가 유일하다. 벌교 수로는 여전히 섬과 내륙을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한 번 타보면 결코 잊지 못할 낭만적인 뱃길.

장도는 면적 2.203㎢, 해안선 길이 15.9㎞의 아담한 섬이다. 섬의 가장 높은 곳이라 해봐야 76m에 불과하다. 섬은 전체적으로 평지와 구릉으로 이어져 있다. 섬의 모습이 노루처럼 생겼다 해서 장도란 이름을 얻었다고 하지만 섬의 형태가 길쭉한 것을 보면 길어서 장도라 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장도에는 191가구 347명이 살고 있다. 대촌리, 부수리 등의 큰 마을과 신경, 신개 등 작은 마을 두 개가 더 있다. 장도는 주변의 섬들과 함께 군도를 이루는데 장도군도는 장도, 해도, 지주도 등 3개의 유인도와 18개의 무인도로 이뤄져 있다. 여수 쪽으로는 여자도, 고흥 쪽으로는 백일도와 인접해 있다.

뻘배를 타고 꼬막을 캐는 여인들의 모습

장도는 꼬막 섬이다. 꼬막의 대명사인 벌교에서는 전국 꼬막 생산량의 70%가 산출되는데 그중 80%가 장도 인근 갯벌에서 나온다. 벌교읍내 꼬막 전문 식당 30여 곳은 모두 이 갯벌에서 나는 꼬막으로 요리를 만든다고 보면 된다. 장도에서는 참꼬막, 새꼬막, 바지락, 게, 맛조개, 낙지 등이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짱뚱어의 최대 산지이기도 하다. 꼬막은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피조개)이 있는데 참꼬막은 껍질 표면의 골이 깊고 새꼬막은 골이 얕다. 피꼬막은 대형 종이다. 참꼬막이 새꼬막보다 더 깊고 찰진 맛이 난다. 참꼬막이 값도 두 배 정도 비싸다. 그래서 참꼬막은 제사상에도 오르는 반면 새꼬막은 제사상에 오르지 못한다고 똥고막이란 비칭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는 상대적인 구분일 뿐 새꼬막 또한 달고 쫄깃한 맛은 일품이다.


자연생태가 잘 보존된 갯벌에서 좋은 꼬막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늪처럼 빠지는 뻘에서의 유일한 이동수단은 뻘배다. 뻘배를 타고 나가 꼬막을 캐는 이들은 섬의 여자들이다. 배라고는 하지만 한 조각 판자다. 벌교의 여인들은 한 조각 판자에 생을 의지한 채 평생 갯벌을 누비고 다녔다. 한 조각의 판자로 자식들 키우고 교육시키고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뻘배는 참으로 성스러운 판자다. 남자들도 더러 꼬막을 캐지만 대다수는 여자다. 남자들은 주로 꼬막을 깨끗이 씻어 자루에 담는 일을 한다. 남자들은 더러 뻘배를 타고 나가 짱뚱어와 낙지를 잡거나 갯벌에 쳐둔 그물에서 고기를 잡는다. 일종의 분업이다.

1년 평균 3000t 생산돼 100억원 소득

꼬막을 캐는 일은 공동 작업이다. 어촌계원들은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공동 작업에서 빠지면 벌금도 내고 일당도 받지 못하니 큰 손해다. 꼬막 작업이 결정되면 뭍에 나갔던 이들도 모두 돌아와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의 규약이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갯벌을 일인들에게 빼앗겨 장도 사람들이 일본인들 밑에서 날

팔이로 일해야 했다. 일제가 패망하자 일인의 하수인으로 일하던 마름이 주인 노릇을 했다. 긴 싸움 끝에 장도 주민들은 1960년대 후반에야 꼬막 밭의 권리를 되찾았다.

벌교 갯벌에서는 14개 어촌계에서 꼬막 양식을 하는데 1년 평균 3000t이 생산돼 100억원이 넘는 소득이 나온다. 벌교 지역의 꼬막 밭은 개인 소유인 방천과 마을 공동 양식장이 있는데 장도 꼬막 밭은 모두 마을 공동어장이다. 꼬막과 관련한 국가 지원은 마을 공동어장에만 주어진다. 장도 꼬막이 좋은 품질과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어장을 살뜰히 지키고 가꿔온 덕이다. 하지만 요즈음 장도 갯벌은 위기에 처해 있다. 꼬막의 폐사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참꼬막은 아주 씨가 말라버릴 지경이다. 주민들은 여수 등 인근 도시에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 폐사가 늘었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으니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 노력이 이뤄져야 마땅하다. 갯벌과 꼬막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장도와 벌교 사람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장도가 코끼리 유배지라는 설은 근거 없는 낭설

장도는 조선시대 코끼리의 유배지란 설이 있고 여행기자나 여행작가들 대부분은 별 생각 없이 이를 기사화한다. 하지만 코끼리 유배지설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필자가 그 근거를 밝혀냈다. 조선 태종시대 일본의 왕이 선물한 코끼리가 공조전서 이우를 밟아 죽이자 코끼리를 전라도의 해도(海島)로 귀양 보냈는데 그 해도가 보성 장도란 것이 주장의 요체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당시 코끼리가 귀양 간 곳이 순천부 장도로 나온다. 율촌 산업단지 조성으로 파괴돼 버린 여수의 장도가 당시 순천부 소속이었다.

반면 보성의 장도는 장흥도호부의 낙안군 소속이었다. 당시 낙안군은 현재 순천시의 외서, 낙안, 별량과 보성군의 벌교, 고흥군의 동강, 대서 지역이었다. 심지어 세종실록 기사(121권, 세종 30년 8월 27일)에는 순천부의 섬들과 장흥도호부 낙안군 소속 섬들이 동시에 등장한다. 여기에도 장도는 순천부가 아니라 낙안군 소속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보성의 장도가 순천부 소속이 아니었다는 명확한 증거다. 장도에 코끼리를 방목했다는 구전이 전해지는 무인도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문헌상으로 보성 장도는 코끼리 유배지와 무관하다. 국가 기록으로 낙안군 장도는 순천부 소속이 아니었으니 당연히 코끼리 유배지 또한 현재의 보성군 장도가 아닌 것이다.

꼬막이 아니더라도 장도의 특산물은 또 있다. 피굴이라는 굴요리다. 피굴은 보성, 고흥 지방의 별미였는데 요즘은 장도 같은 섬이 아니면 좀처럼 맛볼 수 없는 귀한 음식이 됐다. 굴을 껍데기째 삶으면 굴 껍데기 안에 국물이 고이는데 그 국물을 흘려버리지 않고 그대로 모아서 식힌 뒤 그 물에 삶은 굴을 담아서 낸 음식이 피굴이다. 깐 알굴에 민물을 부어 끓여내는 굴탕은 삶아지면서 굴 속의 즙이 빠져나가 굴이 약간 퍼석하고 밋밋해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피굴은 굴 속의 진액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굴 또한 찰지고 쫄깃하다. 피굴의 국물은 단 한 방울도 남기기 아까운 굴의 엑기스다. 우리 바다 섬들은 맛의 보물섬이기도 하다.

■강제윤 시인은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이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 《섬을 걷다》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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