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정치적 결투' 탓 파괴되는 청년 일자리

입력 2019-08-05 17:28  

표만 좇아 空約 남발하고
상대 헐뜯기로 泥田鬪狗 정치권
투자 말라붙고 나라 미래 '흔들'

감성팔이 선동 멈추고
대결구도 풀어
일본의 경제보복 극복해야

이만우 < 고려대 경영대 교수 >



근접사격으로 악명 높은 러시아 결투는 치사율이 매우 높다. 결투 신청을 받은 쪽이 먼저 쏘고 그 후에는 한 발씩 교대로 발사한다. 한 명이 치명상을 입거나 허공에 총을 쏴 포기의 뜻을 밝히면 끝난다. 네덜란드 대사의 양아들 단테스가 아내를 모욕했다며 결투를 신청한 푸시킨의 말로는 처참했다. 그가 쓴 단편소설 <그 한 발(The Shot)>의 주인공 실비오는 결투마다 폼 나게 끝내지만 현실에서 작가는 총에 맞아 비명횡사했다.

결투에서 상대편의 실수는 승리의 발판이다. 결투가 일상인 정치권에서 상대편 실수를 부풀리고 물어뜯는 이유다. 총알이 아니라 민심의 향배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말싸움이 치열하다. ‘토착왜구’와 ‘사케 대표’라는 말 폭탄이 난무한다. 민심을 얻으려는 정치적 술수의 결정체가 공약이다. 선심성 복지 확대와 편파적 세금 인상은 국가 미래를 흔드는 나쁜 공약이다. 대기업과 고소득자를 겨냥한 ‘핀셋 증세’는 기업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려 일자리를 고갈시킨다.

18대 대선의 지나친 복지공약이 박근혜 정권 실패의 화근이었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허구적 구호가 화근을 더 키웠다.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약속했다가 대상을 하위 70%로 축소하고 국민연금과 연계하도록 수정했다. 인수위원회 부위원장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았던 진영 의원이 공약 위반이라며 사표를 냈고, 작고한 노회찬 의원은 ‘세상을 바꾸는 약속’이라는 박근혜 공약은 ‘약속을 바꾸는 세상’의 실천이라며 조롱했다.

모순관계인 ‘복지 확대’와 ‘증세 불가’를 눈속임으로 넘길 수 있는 조세 전문가가 필요했다. 조원동 조세연구원장이 경제수석에 발탁됐으나 ‘거위 털 살짝 뽑기’ 발언으로 경질됐고, 조세연구원에서 잔뼈가 굵은 안종범 의원이 이어받았다. 세율은 고정했지만 공제 감면 축소 및 대기업 최저한세 인상 등 외곽을 흔드는 세금 쥐어짜기가 극심했다. 소득세의 소득공제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꾼 결과 중산층 근로소득세가 급증해 연말정산 파동으로 비화됐다. 헐레벌떡 세율 체계를 뜯어고치다 보니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큰 폭으로 늘어나 후진적 세제로 주저앉았다.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업소득 환류세’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도로 도입됐고 법인세 실질 부담은 크게 늘었다.

정권 교체와 총선이 맞물렸던 2017년에는 법인세 최고세율 3%포인트 인상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국제적 인하 추세에 역행하는 법인세 인상과 노동규제 확대에 깜짝 놀란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줄이고 사업장을 해외로 이전해 청년실업은 더욱 심화됐다. 올해 정부 세제개편안에는 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투자세액공제 확대가 끼어 있다. 고용효과 부족을 꼬집으며 계속 줄여왔는데 이번에는 확대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대기업은 최저한세 대폭 인상으로 감면효과를 얻을 틈이 없다. 공제 감면 확대보다는 법인세 인상분을 되돌리는 세율 인하가 최선인데, 여야 정치권이 함구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취업비자 축소로 한국 청년의 미국 취업도 매우 어렵다. 일본에 어렵게 취업한 청년은 징용배상금 갈등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제외는 부품을 수입하는 한국 기업이 신속한 경영전략으로 대응할 현안이다. 기업인이 경영환경 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의 규제 강도를 일시적으로라도 낮춰야 한다. 죽창가까지 들먹이며 일본을 이길 기회라고 과장하는 오버액션은 자제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도 지나친 대결구도를 풀고 국난 극복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톨스토이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에는 대재산가 백작의 혼외자 피에르와 군대 장교 돌로호프의 결투 장면이 등장한다. 행실이 나쁜 부인이지만 돌로호프가 모욕하자 권총을 잡아본 경험이 전혀 없는 피에르가 결투를 신청했다. 술에 취해 소극적으로 응대하던 돌로호프는 총상을 입었지만 결투를 중단해 서로의 목숨을 구한다. 나폴레옹 침입 당시 전장에서 조우한 두 사람은 서로 용서를 빌며 화해했고 나라를 위해 힘을 모았다. 소설과 실제 역사에서 나폴레옹 대군과 맞선 러시아인은 단결된 힘으로 미증유의 국난을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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