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대한민국, 무서워서 못살겠다"

입력 2019-08-13 17:46  

"졸지에 친일로 몰린 극일 윤동한
내 편, 네 편 갈라 공격하는 사회
생각의 다양성, 독립성 인정 안해"

조일훈 편집국 부국장



[ 조일훈 기자 ] 윤동한 전 한국콜마 회장은 극일(克日)을 이룬 대표적 기업인이다. 그는 1990년 창업 때 일본콜마를 합작사로 끌어들였다. 부족한 자본과 기술력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이제 한국콜마는 일본콜마의 10배가 넘는 매출을 올리며 세계 최고의 화장품 ODM(제조업자개발생산) 회사로 올라섰다. 기술 독립도 진작에 이뤘다. 한국콜마의 직접수출 비중은 5% 안팎이지만 이 회사가 만든 화장품은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을 통해 전 세계로 팔려나가고 있다. 삼성 현대자동차 같은 1세대 기업을 제외하고 이처럼 드라마틱하게 일본을 넘어선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윤 전 회장이 지난 주말에 경영일선 퇴진을 발표했다. 직원 조회에서 방영한 한 유튜브 영상이 친일·극우·여성비하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일본콜마와의 관계를 끄집어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문제의 영상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일 외교정책을 거칠게 비판하면서 경제가 망하면 우리나라 여성들도 베네수엘라처럼 길거리에서 몸을 팔 것이라는 자극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동영상 수준이 떨어지고 표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직원 조회에 이런 영상을 튼 것도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윤 전 회장의 불명예 퇴진을 지켜보면서 한국 사회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떡하다 이 지경이 됐느냐”는 탄식이 나온다. 보수와 진보, 친일과 반일, 내 편과 네 편으로 완전히 갈라진 사회에서 숙려라는 과정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다. 말과 글의 진의를 깊이 헤아리려는 사람들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윤 전 회장은 친일파가 아니다. 그는 국난을 이겨낸 충무공 이순신의 정신을 평생 추앙하며 산 기업인이다. 일본으로 유출된 우리 문화유산을 되찾아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불매운동도 말이 안 된다. 국산 화장품을 사지 말라는 것과 같은 얘기다. 한국콜마 제품을 받는 화장품 회사들에 거래 단절을 압박하는 것이라면 비열하다. 3000명이 넘는 사원들이 일자리를 잃어도 좋다는 것인가. 이미 사죄하고 엎드린 마당인데도 끝까지 쫓아가서 밟아버리겠다는 잔혹성이 묻어난다.

윤 전 회장이 자신의 실수에 비해 사회적으로 훨씬 가혹한 ‘처벌’을 받는 이유는 자명하다. 동영상을 통해 문 대통령을 비판하고 반일 전선에 재를 뿌렸기 때문이다. 이 정부의 열정적 지지자들은 SNS 등을 통해 무지막지한 비난을 퍼부었다.

기업인이라서 더 야멸찬 공격이 가해졌다. “기업이나 하는 주제에 감히…”라는 식이었다. 윤 전 회장이 사전에 이런 부분을 경계하지 않은 점도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많은 기업인은 오래전부터 정치적 문제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해 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도의 문제다. 설사 윤 전 회장이 의도적으로 반정부·친일 성향을 보였다고 하더라도 친정부 지지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특정 기업과 기업인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무서워서 못살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우리 사회의 분열과 대립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있다. 개인이 마땅히 가져야 할 다양한 생각과 독립적 판단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진중한 사색은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주장에 간단히 밀려버린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 때마다 다른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대화를 시작하면 “저 사람은 누구 편일까”를 살펴야 하는 지경이다. 한국은 점점 품격 낮은 사회가 돼 가고 있다. 국민들의 눈과 귀는 밖이 아니라 안으로,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향하고 있다. 이런 나라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할수록 서글퍼진다.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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