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빈낙도는 허상"…조선 선비가 말하는 '부자의 미덕'

입력 2019-08-15 18:29   수정 2019-08-16 00:57

해동화식전

이재운 지음 / 안대회 옮김
휴머니스트 / 260쪽 / 1만5000원



[ 윤정현 기자 ]
“부(富)란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맛 좋은 생선회나 구운 고기와 같은 것이다.” “부유하면 덕이 모여들고 가난하면 악함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고개를 끄덕일 만한 얘기지만 배경이 270여 년 전 조선시대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한 조선시대엔 물욕을 좇는 것을 천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양반들이 상업을 무시하고 청빈한 생활을 자랑스러워하던 1750년 무렵, 이재운(1721~1782)은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에 앞의 문장들을 담았다. 20대 중반 생원시에 합격한 것 외엔 행적이 거의 알려진 바 없는 그의 저작을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발굴해 한글로 옮겼다.

안 교수가 입수한 ‘해동화식전’은 경진년(1820년) 필사본과 정조 때 뛰어난 학자였던 일몽(一夢) 이규상(1727~1799)의 수택본(手澤本)이다. ‘해동화식전’에 대한 기존 흔적은 이규상이 18세기 다양한 분야의 명사(名士)를 기록한 ‘병세재언록’에 “변화가 무궁하며 붓끝이 굉장하고 빛이 나서 근세 100년 사이에 이런 작품이 없다”고 남긴 평가가 전부였다.

존재조차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해동화식전’이 품고 있는 깊은 통찰력과 과감한 주장, 명료한 문장이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안빈낙도(安貧樂道)’라며 빈곤을 미화하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이재운은 “군자는 재물을 이용하여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소인은 재물을 얻으려고 자신을 희생한다”며 “부유하다고 누구나 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가난하다고 누구나 악을 쌓는 것은 아니나, 이런 처신의 뿌리와 근원을 깊이 살펴보면 그렇다”고 서술한다. 군자는 의로움을, 소인은 이익을 따른다는 유학의 경제관을 대놓고 뒤집어 놓은 것이다. 안 교수는 ‘해동화식전’에 대해 “재테크 서적의 성격도 있고 경제사상서나 상인 열전의 성격도 있으며 실학의 핵심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며 “조선왕조의 분위기에서 나오기는 힘든 거의 유일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이재운의 글은 부의 축적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부분과 이에 대한 근거로 아홉 명의 부자를 소개한 열전 부분으로 나뉜다.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과 부자가 될 권리를 강조하고 부자의 자격과 부의 경영에 대해서도 설파한다. ‘부자의 미덕’을 나열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부자는 위로는 나라가 부과한 세금을 거부하지 않으니 이는 충성됨이고 아래로는 향촌의 이웃 사람에게 금전을 빌리지 않으니 이는 청렴함이다. (…) 재물을 써서 관직에 진출하여 문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몸은 높고 현달한 지위에 이르니 이는 귀함이다.” 이어진 ‘빈자의 악덕’은 이와 대조를 이룬다. “부유하면 인색하더라도 이웃을 보살필 수 있지만 가난하면 어질더라도 가까운 가족조차 지키지 못한다. 재물을 가진 뒤에야 예절을 갖추게 마련이다”라는 문장도 같은 맥락이다. 안정 자산의 품목, 시장과 환경의 예측 능력, 소규모 사업의 성공 사례, 자수성가 방법, 부자의 재물 운용 등은 오늘날 재테크 서적 목록에 넣어도 어색하지 않을 소제목들이다.

부자들의 삶과 행적을 서술한 열전엔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 일부에 나오는 자린고비도 등장한다. 충주 사람인 자린급은 소금 한 되를 보자기에 싸 매달아 놓고 다섯 숟가락에 한 번 쳐다보는 것으로 반찬을 대신했다. 누군가 생선을 선물해 아내가 밥상에 올려놓자 ‘밥도둑’이라며 밖으로 던져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지내 부자가 됐다. 이재운은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베풀기나 좋아하는 사람은 처자식도 보전하지 못한다”며 “그런 사람은 인색한 자보다 훨씬 못하다”고 평한다. 그는 열전을 통해 아끼고 절약하는 방법뿐 아니라 변화를 일으켜 형통하는 방법, 고생을 참고 근면하게 일하는 방법 등을 알려준다. 그중에서도 치산(治産)을 잘해 재물을 불리는 것을 가장 나은 경영법으로 꼽는다. “부자는 돈을 모을 때는 악착같지만 일단 이룬 다음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선행을 베푼다”는 대목에서는 오늘날에도 통할 부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안 교수는 이중환의 ‘택리지’와 함께 18세기를 전후해 남인학자들이 큰 관심을 둔 허목의 ‘땅의 역사’, 이웅징의 ‘동방식화지’,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 권8 인사문에 실려 있는 ‘재물의 생성’을 <해동화식전>에 함께 실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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