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탈원전보다 전력수요 전망이 문제다

입력 2019-08-18 17:42   수정 2019-08-19 00:15

"주목받지 못한 전력예비율 급락
大정전 사태는 경제에 치명타
수요전망, 원점에서 다시 해야"

박주헌 <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



지난 9일 영국에서 대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런던을 비롯한 남동부 광범위한 지역에 갑자기 전기 공급이 끊겨 지하철은 멈춰서고 교통신호등이 꺼지며 저녁 퇴근길이 아수라장이 됐다. 공항은 암흑천지로 빠져들고 수술 후 이동 중인 환자가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등 수백만 영국인이 일순간 대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이번 영국 대정전은 세계 최대 규모의 혼시 풍력발전소가 불시 고장으로 멈춰서면서 발생한 것으로 일단 추정되고 있다.

영국 정전 사고 나흘 뒤인 지난 13일, 국내에서는 전력 수요가 9000만㎾를 넘어서면서 전력예비율이 6.7%까지 곤두박질쳤다. 전력수급 위험 기준인 5%에 육박하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영국 대정전과 마찬가지로 대형 화력발전소 하나만 불시에 정지돼도 전력수급 위기 단계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전력예비율 6.7%는 역대급 폭염인 작년 7월 24일 기록했던 7.7%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작년엔 탈원전 이슈와 관련해 많은 관심이 모아졌던 것과 달리, 올해는 반일, 평화경제 등 정치적 이슈에 함몰돼 그냥 지나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정전은 예고 없이 일순간에 경제 전체를 멈춰 세운다. 소나기 펀치에도 끄떡없는 맷집 좋은 권투선수도 순간의 방심을 틈타 날아드는 펀치 한 방에 쓰러지는 것처럼, 갑자기 발생하는 대정전은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는 한 방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장기적 전력수급안정에 힘쓴다. 전력수급계획의 핵심은 향후 전력수요를 전망하고,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발전설비 계획을 짜는 일이다. 따라서 계획의 출발점인 전력수요 전망의 정확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대 전망은 과도한 발전설비로 이어져 낭비를 초래하고, 과소 전망은 향후 발전설비 부족으로 블랙아웃(대정전)의 위험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전력수요 전망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지난 13일 오후 5시에 기록한 전력수요는 9031만㎾였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2019년 하절기 최대수요 전망치는 8710만㎾였다. 작년은 더욱 심각했다. 작년 7월 24일 기록한 전력수요는 9248만㎾인 데 비해, 8차 계획의 2018년 전망치는 8610만㎾로 오차가 무려 638만㎾였다. 거의 원전 6기에 해당하는 엄청난 오차였다. 물론 정부가 매년 수급관리를 위해 마련하는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의 오차는 훨씬 작다. 그러나 우리나라 향후 전체 발전설비 규모를 결정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전망치는 장기적 수급 안정을 가늠하는 기준이라는 점에서 훨씬 중요하다.

애초부터 8차 전력수급계획의 수요전망을 둘러싸고 많은 의혹과 논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탈원전을 위해 지나치게 전망치를 낮췄다는 의혹도 그중 하나다. 물론 정부는 저성장 기조를 반영한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을 수요 전망치를 낮춘 가장 큰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올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2%에도 미치지 못 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당장 장기 전력수요전망을 다시 해야 한다. 마침 올해는 9차 계획을 짜는 해다. 엉터리 전망에 더 이상 매이지 말고, 원점에서 다시 전력수요를 전망해주기 바란다. 전력수요는 탈원전, 에너지전환 등과 같은 정책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천만 수요자들이 자신의 편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정해지는 경제활동의 결과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모든 전망에는 오차가 따르기 마련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수도 매번 과녁의 중앙을 명중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영점 조준이 잘못되면 항상 엉뚱한 곳으로 빗나간다. 현재 전력수요전망은 영점 조준이 잘못된 총으로 사격하는 것과 같다. 유탄에 사람 잡을까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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