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한·일戰' 수학에 달렸다

입력 2019-08-18 17:46   수정 2019-08-19 00:53

수학이 세상을 바꾼다

日정부 "AI기술도 수학이 좌우
전공자 처우 획기적 개선할 것"

韓, 국가차원 전략 없이 '홀대'
수리硏 예산 5년간 30% 깎아



[ 이해성 기자 ]
‘수리자본주의의 시대: 수학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지난 3월 일본 경제산업성과 문부과학성이 공동으로 펴낸 보고서 제목이다. 이 보고서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승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도 수학, 둘째도 수학, 셋째도 수학”이라고 강조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지난달 4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고 강조한 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18일 한국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미국 수학 박사의 30% 이상이 산업계에서 활동하는 데 비해 일본은 1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일본도 수학 전공자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이 비율을 높여야 한다”며 “수학이 국부의 원천이 되는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다.

일본 정부의 엄중한 현실 인식에 비해 한국은 정부 차원의 수학 전략은 고사하고 관련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교육 정책, 예산 투입, 산업 활용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홀대받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응용수학 전담 연구기관인 국가수리과학연구소가 올해 배정받은 예산은 90억원으로 5년 전보다 30%나 깎였다. 또 2017년 기준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18조830억원 가운데 수학 분야 집행액은 810억원(0.44%)에 불과했다. 과학기술 표준분류 18개 항목(기계, 정보통신, 보건의료, 전기전자 등) 중 꼴찌였다. 수학 박사의 산업계 진출 비율은 1~2%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2일 문 대통령은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금종해 대한수학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극일(克日)은 수학 경쟁력을 키우는 데서 시작된다”며 “정부가 지금처럼 손을 놓고 있다가는 세계 경제의 큰 흐름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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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국부의 원천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수학이 4차 산업혁명의 심장이 됐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초학문인 수학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영국과 일본은 정부가 나서 수학 보고서까지 작성해 전략을 짤 정도다. 수학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고선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를 근간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파괴적 기술혁신의 도구”

일본 정부는 지난 3월 내놓은 경제산업성·문부과학성의 ‘수리자본주의의 시대: 수학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보고서를 통해 수학을 국부의 원천이라고 규정했다.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기 위한 가장 보편적이고 강력한 도구가 수학”이라고 단언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올 3월까지 7개월에 걸쳐 주요 산업군을 조사하고 각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끝에 이같이 결론내렸다. “머신러닝, 확률론, 선형계획법, 유체시뮬레이션 등 기술혁신을 위해 수학이 쓰이지 않는 분야가 없다”고 분석했다. 또 “AI, 컴퓨터그래픽(CG) 분야 엔지니어의 능력은 ‘수학’에 의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경제산업성과 문부과학성은 수학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10대 정책목표를 제시했다. 주목되는 것은 대학의 수학 교육 전면 쇄신이다. 6개 거점 대학(도쿄대, 교토대, 홋카이도대, 시가대, 오사카대, 규슈대)을 그 중심에 뒀다. 수학 및 데이터과학 교육과정을 새로 구성하고 다른 20개 대학으로 확산하기로 했다. 4개 대학(홋카이도대, 사이타마대, 나고야공대, 가나자와공대)에는 수학 및 통계학 부전공 신설 의무화를 검토하고 있다.

교육 커리큘럼은 기업 필요에 따라 세분화하기로 했다. 각종 기술자격 검증시험에서 확률과 통계, 선형대수(행렬·벡터) 출제비율도 높이기로 했다.

산·학 연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크게는 각 산업군에 수학 중장기 연구그룹을 결성한다는 전략이다. 기업별로는 대학과의 수학 인재 온라인 매칭 시스템을 마련하고, 수학 박사과정 진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구축을 유도하기로 했다. 수학 관련 직업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 주목”

19~20세기 1·2차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영국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수학을 주목했다. 영국 총리 직속 ‘공학 및 자연과학 연구위원회(EPSRC)’는 지난해 ‘수학의 시대(The Era of Mathematics)’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수학이 AI, 첨단 의학, 스마트시티, 자율주행자동차, 항공우주 등 4차 산업혁명의 ‘심장’이 됐다”며 “21세기 산업은 수학이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PSRC 보고서는 수학이 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제시하며 그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2008~2013년 수학이 영국에서 창출한 연평균 경제가치를 국내총생산(GDP)의 16%가량인 2080억파운드(약 308조원)로 계산했다.

수학의 투자액 대비 가치창출 효과는 588배로 물리학(31배), 공학(88배)보다 압도적이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산업 소재의 원천인 화학(246배)보다 2.4배 높았다. 보고서는 “영국이 다시 세계의 중심에 서려면 수학 인재 확보 및 관련 인프라 구축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중앙은행이 지난달 자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을 50파운드 지폐의 초상인물로 결정한 것은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 튜링은 0과 1로 연산하는 디지털컴퓨터의 개념을 처음 설계했다. ‘기계가 인간의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개념을 처음 고안해 ‘AI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는 독일군의 암호(에니그마)를 해독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인물로도 유명하다.

4차 산업혁명의 ‘꽃’ AI는 결국 수학

튜링의 개념에 뿌리를 둔 AI는 4차 산업혁명의 꽃으로 불린다. 1940년대 이미 ‘인공신경망(ANN)’ 개념이 등장했다. 1956년 미국 매사추세츠 다트머스대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AI’란 말이 처음 사용됐다. 초기 AI의 대표 알고리즘이 바로 ‘If-then(만약~하면~해라)’룰이다.

소수 전문가 영역에 갇혀 있던 AI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80~1990년대 수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결합하면서부터다. 딥러닝의 기본구조인 ANN은 무수한 뉴런과 시냅스로 연결된 뇌신경망 구조를 흉내냈다.

수많은 데이터(입력값)를 보고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씩 줄여나가 하나의 결론(출력값)을 도출하는 확률게임이다. 이 과정은 무수히 많은 변수로 구성된 함수로 만들 수 있다. 출력값과 실제값의 차이가 작을수록 좋은 AI다. 이때 함수의 극대·극소값을 구하는 미분이 사용된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쌓이고 컴퓨터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AI시대가 활짝 열렸다. 딥러닝 알고리즘의 양대 산맥인 컨볼루션신경망(CNN)과 재귀신경망(RNN)은 ANN이 진화한 것이다.

CNN은 이미지 인식, RNN은 시계열 데이터 또는 음성 인식에 강점을 보인다. 2012년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진이 내놓은 AI 알고리즘 ‘슈퍼비전’은 CNN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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