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물음표] ‘왓칭’ 강예원, 충무로서 살아남다 (인터뷰)

입력 2019-05-02 13:00   수정 2019-05-08 15:18


[김영재 기자] 4월17일 개봉작 ‘왓칭’ 영우 役

‘왓칭(감독 김성기)’은 주차장에 감금된 영우(강예원)가 악으로 깡으로 그곳을 탈출하는 내용의 영화. 영우를 흠모하기에 살인마저 일삼는 준호(이학주)의 저지에도 불구, 다행히 그는 탈주에 성공한다. 곧 ‘왓칭’의 순리는 피해자가 생존자로 올라서는 데 있다.

한편, 생존자는 영우만이 아니다. 배우 강예원(39) 역시 생존자다. ‘해운대’ ‘하모니’ ‘헬로우 고스트’ ‘퀵’ ‘날 보러와요’ 등 그간 여러 영화에 출연해온 인기 배우이나, 그는 긴 시간 내내 버텨왔다고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 또 그것을 기적이라고 칭했다. “준호가 ‘와 영우 누나 진짜 대단하다. 거기서는 또 어떻게 나왔데?’ 하는 신이 있어요. 근데 저는 그 말이 저 강예원에게 하는 말 같더라고요.”  벡델 테스트 통과작이 아직 별종 취급받는 것이 업계의 현실. 이에 여성 배우의 말문이 되어준 ‘왓칭’에게 강예원은 “감사”를 전했다.

―영우가 선보이는 액션을 이유로 ‘진격의 강예원’이란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덧씌워진 엉뚱 이미지의 해소가 혹 출연 이유였을까요?

“그건 아니었어요. 물론 ‘엉뚱하더니 이런 모습도 있네?’ 싶은 새로운 모습이 ‘왓칭’엔 있죠. ‘날 보러와요’ 때는 배우를 매개로 전달 가능한 사회적 메시지에 관심을 뒀다면, 이번 영화는 시나리오 몰입도가 컸어요. 스토리가 재밌었습니다.”

총 27회차 촬영 중 27회차 모두에 출석 도장을 찍은 강예원은, 연이은 실내 촬영이 마치 그를 뱀파이어로 만드는 듯 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또한, 달리기 신이 영화에 채 반도 담기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그 달음질은 왜 준호가 영우를 택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아름답다. “제가 달리기가 빨라요. 카메라 감독님께서 천천히 달려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하셨죠. 그 답답한 공간에서 역동적 장면을 찍는 일은 제게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이자, 어떤 쾌감이었어요.”

―액션 신을 위해 ‘맨발 투혼’까지 선보였어요.

“저는 부러지는 게 아닌 이상, 사실 까지고 멍들고 박히고 이런 거는 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힘든 걸 참는 게 몸에 배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다만 추위는.(웃음)”

매사 열심히 하자.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자. 일과 삶에 있어 늘 열과 성을 다해온 강예원의 다짐이다. 하지만 ‘인내’ 강예원의 삶은 최근 그 방향이 바뀌었다. 촬영 후에야 몸의 이상을 깨닫고 병원에서 갑상선 항진증 판정을 받은 것이다. 약은 약 5개월 전부터 먹기 시작했다. “갑상선 항진증은 큰 증상이 없어요. 그게 가장 무서운 부분이죠. 다행히 지금은 괜찮아요. 쉴 때는 잘 쉬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무리하지 말아야죠.”

―또 어떤 역할로 배우 강예원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나요?

“여자 준호요. 재밌을 거 같아요. 피해자가 아닌 역할도 이제는 해보고 싶고, 옆에서 보니까 그런 준호를 연기하는 학주 씨의 쾌감을 엿볼 수 있더라고요. ‘어떤 감정으로 저렇게 연기할까?’란 생각을 했어요.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은 배우의 욕심인 셈이죠. 사람 죽이는 역을 희망하는 건 아니에요. 사람에 대한 집착이 제가 바라는 부분이죠.”

―반면 영우는 너무 착해서 문제죠. 그 영우가 준호에 의해 성향이 바뀌는 부분이 이 영화의 단점이자 또 관전 요소예요. 개인 강예원은 어때요?

“누가 절 건드리면요? 당연히 정색하죠. 사람이 착한 것과 정색하는 건 전혀 상관없는 거 같아요. 오히려 솔직한 거죠. 순수한 사람이 정색도 잘하고 반응도 바로 해요. 감정이 쉽게 요동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히려 배우는 그게 살아 있어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예전부터 그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아기처럼 반응 잘한다고.(웃음)”

사실이었다. 이날 강예원은 그 어떤 배우보다 인간적으로 반응했다.

‘해운대’ ‘하모니’ ‘퀵’까지 과거 JK필름 총아(寵兒)로 활동한 그가, 지금은 그곳과 어떤 인연을 맺고 있는가를 묻고 싶었다. 서두가 필요했다. 이에 기자는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다”는 말로 그의 첫 JK필름 영화 ‘1번가의 기적’ 이전을 잠시 언급했고, 그는 “너무 옛날 이야기”라며 의아함을 내비쳤다. 다음은 후배의 시선을 느끼는 선배의 책임감에 대해서였다. 이에 강예원은 “왜 자꾸 힘든 것만 물어보냐”고 해 일동을 웃게 한 뒤, 그가 지내온 어렵고 힘든 시절을 캐내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하다며 인터뷰어를 궁지에 몰았다.

후에 강예원은 과거 힘든 시절을 화두로 꺼내는 것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양해를 구한 뒤, 일련의 반응은 솔직한 강예원의 연장선임을 강조했다. “제가 아까 반응한다고 그랬잖아요. 솔직하게 반응하는 편이라서 지금까지 버틴 거 같아요. 뒤끝 없이 쿨하게.”

―과거 2017년 인터뷰에서 롤 모델이 없다고 했어요.

“주위 사람 말을 많이 듣는 편이에요. 그래서 질문을 많이 하고, 또 의견을 많이 묻죠. 아마 주위 사람과 같이 걸어가려고 하는 측면에서 롤 모델이 없다고 했을 거예요. 근데 존경할 사람은 엄청 많죠. 누구 하나만 고를 수 없어요. 개개의 여러 면이 다 부럽더라고요.”

―문소리 씨는 어때요?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로 새 지평을 열었죠.

“대단한 에너지를 가지셨죠. (기자-시나리오를 쓰거나 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은 없어요?) 저는 사실 이쪽 일은 배우만으로도 벅차요. 다른 영역을 감히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한 번도 생각했던 적 없어요. 그 얘기 되게 많이 들었어요. 김윤석 배우님처럼 연출해볼 생각 없냐고. 물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겠죠. 제가 바라보는 이상과 현실의 갭은 항상 있어요. 그럼에도 제 몫은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살아남았냐고 하는 준호의 말이 마치 배우 강예원을 향해 한 말 같았다고 말했어요. 또한, 지금은 롤 모델을 한 명으로 한정 지을 수 없는 이유로 개개가 서로 다 다른 장점을 갖고 있는 것을 꼽았죠. 그렇다면 지난 2001년에 데뷔한 19년 차 배우로서 후배 배우가 당신의 어떤 면을 지향할 수 있겠다는 책임감이 들 법도 합니다.

“‘행동을 잘해야겠다’는 항상 있죠.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고요. ‘나도 할 수 있어’란 좋은 영향이요. ‘와 저 사람이 저렇게 해냈네. 저 사람의 끝은 어디야?’까지 가고 싶은 바람은 항상 마음속에 있어요. 너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거든요. 근데 제가 지금 그 희망을 줄 수 있는 단계인가 싶어요. 아직 저는 갈 길이 멀어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이 있다. 상식을 역전시키는 파격에, 성실을 칭송하는 탈무드적 교훈까지. 이보다 멋진 말이 또 있을까. 허나 맹점도 있다. 생존자 중 몇몇은 운 좋은 약자일 수 있다는 폄하가 행간에 섞인 것이다. 그래서 또 어떤 이는 말한다. 강한 자로 생존하는 데는 ‘적응’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이와 관련 강예원은 그 적응에 성공한 몇 없는 충무로 여성 생존자다. 그의 키는 162cm이나, 스크린 속 그는 훨씬 더 커 보인다. 강예원은 그 이유를 “에너지”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에너지 그대로 더 열심히 살아달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생존자의 의의는 그 돌연변이성을 후세에 퍼뜨리는 것일 터. 그리고 이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부합되는 대목이다. 에너지로 대변되는 이 여성 배우는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적응해 나간다. 강예원을 지켜보고 있을 후배, 특히 여성 후배의 희망이 되기 위해,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은 강예원이 강한 자다.

(사진제공: 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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