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전망] 한·일 갈등, 不買 아닌 協商으로 풀어야

입력 2019-08-20 17:43   수정 2019-08-21 00:14

21세기는 우울하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 지도자들이 자국 이익을 노골적, 이기적으로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외생적 위기의 본질을 무시한 채 우물 안 개구리식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구한말 위기를 방불케 하는 현 국제정세 속에서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미래지향, 실리추구가 아닌 과거청산 명분싸움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올 들어 경기후퇴, 고용침체, 기업활동 쇠퇴 현상이 발등의 불이 됐음에도 정치는 이를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과거 책임론으로 반격한다. 책임의식이 결여된 소인배 정치라 아니할 수 없다. 최근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 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배제도 그 원인을 먼저 따져본 후에 반일이든, 불매든 논의를 했어야 했다.

정부 간 협상·협약·조약을 맺으면 성립 과정에 중대한 하자가 없는 한 이를 지키는 것이 맞다. 2015년 미국의 실질적 중재로 한·일 정부 간 어렵사리 이뤄진 위안부협상은 논란의 여지는 있었지만 양국 정부 책임자가 서울에서 기자회견까지 한 정식 외교협상이었다. 또 일제 징용자 개별배상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누가 배상할 책임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양국 간 다툼이 있다. 1965년 한·일협정 세부사항에 대한 국가 간 다툼이 있다면 국제심판을 통해 해결하는 데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한·일협정은 현 정권의 책임에 속하지도 않으며, 후쿠시마 수산물 승소사례처럼 우리가 반드시 합리적으로 대응해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에 대해 그 원인과 과정을 꼼꼼히 따지기에 앞서 반일 프레임부터 씌우는 것은 득이 되지 않는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경제침략’으로 단순화하고 반격하기 전에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심모원계(深謀遠計)해 협상을 성공시키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비난하기보다는 예의를 차리고 장점을 추켜세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잃을 것이 많은 협상자가 상대를 비난하면 그 협상은 깨지게 돼 있다. 상대방이 잃을 것이 많은 협상자의 약점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가기 위해 일본에 상응조치와 불매운동을 한다고 하지만, 일본으로서는 아쉬울 게 없다는 지적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섣부른 불매운동은 일본 기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합작회사 직원, 항공사·여행사 직원, 음식업자, 수입업자의 일자리만 빼앗게 된다. 일본 맥주는 한국 업자가 수입해서 파는 것이고, 한국유니클로의 직원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게다가 재일동포와 일본 취업 한국인의 고충은 모른 척해야 하는가. 한국이 일본에 수출을 금지할 수 있는 물품은 대부분 일본이 대체할 수 있는 물품이어서 실제 수출금지 시에는 한국 기업에 타격을 줄 것이다. 일부 언론이 전하는 ‘일본 타격’ 뉴스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이 강경하게 대응할수록 일본의 실질적 수출통제 명분이 축적되고 우리 기업이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벌써 엔화가치가 20% 올랐다. 일본 부품 사용업체는 이익을 내기 어려워졌고, 일본에 수출하는 업체는 수출길이 막히게 생겼다.

명분보다는 실리, 감정보다는 이성에 기반한 전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누구보다도 대통령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덩샤오핑은 흑묘백묘(黑猫白猫)론으로 약한 중국을 크게 키웠다. 우리에게 큰소리치는 지금의 중국은 수십 년간 한국에 기술이전과 투자를 애원하다시피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더욱 공감 가는 요즘이다. 방법은 하나다. 결투가 아니라 협상을 하고, 한·일이 동아시아의 우방임을 재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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