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잊혀진 '속초해전'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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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11-05 17:31   수정 2019-11-06 00:20

[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잊혀진 '속초해전' 영웅들

강원 속초시 장사항에서 북쪽 해안도로를 따라 2~3분 걷다 보면 가파른 동쪽 언덕에 세워진 위령탑이 보인다. 전사·순직한 해양경찰관 174명의 넋을 추모하기 위한 ‘해양경찰 충혼탑’이다. 전사·순직자 중 전사자(26명)는 모두 1974년 6월 28일 발생한 ‘863함(艦) 피격사건’ 승조원이다. 해경이 2013년 창설 60주년을 맞아 발간한 <피와 땀으로 지킨 바다-10대 해양 사건>에서 ‘속초해전’으로 명명한 그 사건 희생자들이다.

결사항전하다 격침된 863함

‘속초해전’은 1953년 7월 정전협정 이후 남북한 해군 간 첫 교전인 1999년 6월 ‘연평대첩(제1차 연평해전)’보다 25년이나 앞서 치러진 대규모 해상 전투다. 어선 보호를 위해 출항했던 181t급 해경 경비정(863함)이 레이더 고장과 기상 악화로 귀항일을 하루 앞당겨 복귀하다가 강원 고성군 앞바다에서 중무장한 북한 함정 세 척에 포위됐다.

나포될 위기에 처한 863함 승조원들은 절대적 화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투항을 거부하고 결사항전했다. 100분 남짓한 치열한 전투 끝에 863함은 격침됐다. 승조원 28명 중 바다에 떠 오른 8명의 시신만이 수습됐다. 북한이 그해 7월 열린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납치한 해경 2명의 육성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공개해 이 사건 전사자(사망·실종자)는 최종 26명으로 집계됐다.

해경 사상 최악의 참사였지만 이 사건은 지금도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 군이 아닌 경찰(해경)과 북한군의 교전인 데다 당시 우리 측 피해가 너무 커 ‘패전’으로 인식하는 일각의 기류도 있었다. 당시 선체 발견 및 인양 기술이 부족한 것도 사건이 묻힌 원인이 됐다. 그렇게 45년이 흘러 863함과 속초해전 영웅 18명(실종자)은 아직도 어두운 바다에 잠들어 있다. 침몰한 서해 페리호(1993년)와 세월호(2014년), 북한 어뢰에 폭침된 천안함(2010년) 등이 국민적 관심 속에 인양된 것과 대조적이다.

863함은 늘 관심 밖이었다. 한 언론사가 2013년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이던 관련 문서를 보도해 863함이 잠시 주목받았고, 정부는 침몰 추정 위치(동해 북방한계선 북측 4마일 해저)도 확인했다. 교전 과정에서 북 함정들이 863함을 밀고 북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863함 인양은 세월호 등 잇단 대형 사건·사고에 금방 뒷전으로 밀렸다. 문재인 정부는 유족 등의 요구에 2017년 6월 유족들과 인양을 위한 비공개 간담회를 했지만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북측 해저에 침몰한 것으로 추정돼 남북 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가 유족에게 전한 인양 노력의 거의 전부였다. 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진상 조사에 이어 재조사가 진행 중인 세월호와 비교하면 너무 소홀히 처리됐다는 지적을 피해가기 어렵다.

'45년 유족 恨' 풀어줘야

정부는 남북 화해를 내세워 비무장지대(DMZ) 6·25 전사자 유골 발굴에 적극적이다. 중국에 있는 항일(抗日) 유적지 재단장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보훈(報勳)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소중한 책임감”이라는 정부가 863함 승조원들의 고귀한 희생에 대한 보답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의 희생을 외면한다면 어떻게 국민에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나라를 위한 일에 헛된 죽음은 없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마지막 한 분까지 찾는 것이 국가의 마땅한 책무입니다. 정부가 최선을 다해 가족을 찾아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대통령의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 863함 유족들의 45년 맺힌 한이 풀어지길 고대한다.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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